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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대선사비명(전액)
월출산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대선사비명 병서(幷序)
무릇 금산에 사찰을 건립함으로써 번뇌를 털고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수행처로 이름을 길이
남겼으며, 강물에 뜬 잔은 도선국사의 이름을 널리 전하게 하였다. 하물며 묘한 이치의 법문을
열어 그 조화로 신묘함에 통하였으며, 사원을 장엄하고 도장을 개신하니 아름답고 상서로운
복이 흐르도다. 이와 같은 업적은 마땅히 고운 옥돌에 새겨서 후대에 전하여 알게 하여야
하므로 감히 기존에 있던 마멸된 비를 다시 세우게 되었다.
국사의 휘는 도선이니 신라의 낭주 사람이며 어머니는 최씨이다. 영암의 성기산 벽촌에서
진덕왕의 말년에 태어났다. 어머니가 푸른 오이를 먹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마치 (중국)
후직의 어머니 강원이 거인의 발자취를 밟고, 깊이 마음에 느껴 임신한 후 태어난 것 같다. 또
동진의 백족이 산천의 정기를 받고 숙기를 모아 태어났으므로 모든 세속을 벗어난 것과 같았다.
신비하게도 대나무숲에 갖다 버린 아이를 비둘기가 보호하였고, 신령스러운 독수리가 날개를
펼쳐 아이를 덮어 보호하였다. 일찍이 월남사로 가서 불경을 배웠다. 그리고 무상하는 나이가
되기 전에 사신을 따라 중국으로 가서 호위가 지은 우공의 산천설에 따라 두루 살펴보고
당나라의 문물을 익혔다. 정영(廷英)에서 스님을 영접하고 황제의 꿈에 나타난 금인이 대해
논하다. 대행(大行)의 새로운 능을 점지하라며 신비한 백마를 주었다. 이것은 하늘이 내리신
특이한 일이요, 어찌 다만 땅에 대한 풍수설이 능한 까닭이겠는가. 황제는 도선에게 국사의
호를 내렸으며, 하늘이 내린 사람이 나타났다 하였다. 국사는 금으로 만든 상자와 옥으로
만든 책을 두루 연구하여 꿰뚫었으며, 적현의 황도를 탐구하여 깊이 통달하였다. 국사는
동쪽으로 돌아가도록 요청하며 그동안 이곳에서 연마한 학문으로 어려운 때를 구제하겠다
하였다. 고향 지형을 살펴보니 배의 형국이었다. 배의 머리와 꼬리를 진압하기 위해서 절을
짓고 탑을 설립하게 하였다. 멀고 가까운 곳을 두루 둘러보고 하늘 아래 단 하나의 인연이 있는
명당을 잡아서, 악송(嶽松)이 오백 년의 업을 얻을 곳이라 하였다. 오직 이 월출산 도갑사는
일관봉의 기경일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산이 거듭하여 천불상이 나열하고 있는 것 같았으며,
기암괴석과 흔들바위가 있어 전국에 그 이름이 알려졌다. 물고기 입은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
문수를 생각하게 하고, 용 연못은 찾아와 머무는 보현을 듣게 한다. 구름으로 창을 삼고, 안개로
문을 삼아, 어렴풋이 나타나는 열두 누각이 있고, 물소리에 염불소리, 바람에 깃발 소리에는
광명이 흘러 나와 삼천 세계를 비추었다. 국사의 뜻은 국리민복과 왕도의 공고에 있었으며
고상하여 세상 사람을 멀리하고, 석장을 걸어두고 수행방에 머물렀다. 육진인 객관이 모두
사라지고, 묘한 도를 건축인 불경에서 탐구하고, 삼매가 성취되어 진실한 교법을 사원에
드러냈다. 금강산과 태백산은 자항의 수미와 같이 땅은 누렇고 하늘은 푸르렀다. 높이 보경을
매달았으니 부처님과의 간격이 없어서 과거의 여래가 현세에 계셔서 한결같이 법우(法雨)를
뿌려 적셔주니, 병화(兵火)가 다시 일어나도 저절로 소멸되었다.
아득한 세월 지나 점차 사그라드는 용궁처럼 구름 위에 홀로 솟아 있고, 오래된 비석의
떨어져나간 거북 머리에는 이끼가 끼어들었다. 가사에는 눈물이 흐르고 탄식이 커지니, 푸른
산에 수심이 가득하였다. 세월 따라 전해지는 신령한 발자취를 찾더라도 만약 그것을 전해
주는 행적비가 부서져 없어지면 어찌 전날과 다름없는 것을 후세에 보여줄 수 있겠는가.
새의 날개가 자라서 멀리 날아가듯이, 일찍이 옛 승려의 건물 보수에 힘입어, 난새와 봉새가
날아드는 듯하였다. 가히 옛 비석을 다시 세워 남길 만하다. 이때 옥습(玉習)이 일찍이 알려
각 사찰의 찬조를 구하는 한편, 신도들로부터 모금하여 무려 3년이 동안 지성을 다하여 더욱
견고히 하였다. 중간에 서울로 찾아와서 비문을 재촉함이 더욱 간절하였다. 비록 전설적인
문장력이 부족하지만, 찾아오신 귀한 분의 간곡한 소원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명(銘)에 이르기를, 훌륭하신 스님만의 신비한 경지, 어느 누가 그 경지를 따르겠는가.
분별지해 그대로는 생각도 말라, 식심분별 쉬지 않곤 알수가 없다. 글자새긴 비문이야 있든
없든간에, 도선국사 크신 업적 손익이 없네. 무상광음 흐를수록 더욱 높아서, 천만겁이
지나가도 옛이 아니네.
숭정 병자년 4월 일에 시작하여 계사년 4월 일 세움
대광보국 승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 세자사 이경석 지음
정헌대부 예조판서 겸 지경연춘추관사홍문관제학 세자우빈객 오준 씀
자헌대부 형조판서 겸 지의금부춘추관사예문관제학 세자우빈객 오위도총부도총관 김광욱
전액
[좌기]
영암과 강진 두 읍 중간에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이 월출산이다. 산의 서쪽에 큰
가람이 있으니 세상 사람들이 전하기를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절 뒤쪽에 옛날 비석이 있는데, 세운지 오래 되어 돌이 떨어지고 글자가 마멸되어
거의 글자를 판독할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 이에 옥습이라는 스님이 개탄한 나머지
분발하여 육환장을 짚고 멀리 서울에 올라가 글을 지어줄 덕망있는 사람에게
부탁하니 백헌 이상국은 비문을 짓고, 상서인 오준은 비문을 썼으며, 한성부윤인
김광욱은 전액을 썼으니 국내에 제일가는 대가들이므로 더 이상 훌륭한 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어느 해 9월, 여산 동쪽에서 채석하였다. 이때 호남도백이 여산, 익산, 용안현 등의
수령들에게 부탁하니, 한결같이 농번기를 피하여 인력을 동원하여 협조하였다.
총림의 스님들도 시골 어려운 집을 돌아다니면서 불사에 동참할 것을 권장하였다.
비록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주머니를 털고, 곡식 전대를 비우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듬해 초 여름에 여산에서 채석한 비석 돌을 황산 선박장까지 인력으로 끌어서
운반하고, 거기서 배에 싣고 가람군 남당포와 군산 칠산포를 거쳐 서호 앞바다에서
하산하였다. 그로부터 7개월 만에 석공일이 끝났는데, 구부와 이수가 각각 그
정묘함을 드러내어 절 뒤쪽 북편 언덕에 세워졌다.
천순년간에 명승 수미화상이 도갑사 법당을 중창하였으나, 도선국사의 비는
다시 세울 겨를이 없었다. 그 때 한 젊은 스님이 수년 동안 계획하여 수백 년 동안
이룩하지 못하였던 전비를 빛내기 위하여 다시 후비를 세움으로써 영원무국토록
후세에 보여주게 되었으니, 이 어찌 그와 같이 빠르게 이루어졌는가!
깊이 생각해보니, 국사께서는 동국의 신인이시다. 스님께서는 그 태어난 과정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 부모가 거두지 않고 버렸으니, 많은 비둘기가 날개로 덮어서
보호한 적이 있다. 지금도 바위 위에 옛 자취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완연하게 남아
있어, 마을 이름을 구림이라 하고, 바위를 국사암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이때
비롯되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월남사에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당나라에
들어가 일행선사를 친견하고 지술에 대한 그의 법을 모두 전해 받았다.
그 후 곧 귀국하여 일구 일수의 명사와 거탑이 국사가 점복하여 창건한 곳이 아님이
없을 정 도였다. 이미 지나간 천백 년의 일과 아직 다가오지 아니한 천백 년의 일을
소상하게 마치 눈 앞에 나열된 것을 보듯이 미리 알았으니, 어찌 석가의 제자라 하지
않겠는가!
신라와 백제 이후로 신승이라는 호칭을 받은 이는 원효와 의상같은 스님이 실로
한두 분이 아 니지만, 걸연하다고 청할만한 스님은 손가락을 다시 구부릴 정도가
못된다고 하였다. 늙어서 백운산 영주장에서 입적하였는데, 시체를 석감중에
봉안하였다. 평소 스님에 대한 행적은 최유정이 지은 광양 옥룡사 선각국사비에
자세히 실려 있다.
통훈대부 홍문관 부수찬 이수인 지음
성균진사 김시간 씀
도선국사묘갈명(전액)
유명조선국 전라도 영암군 월출산 도갑사 국사도선비 음명 병서
영암군에 월출산이 있는데, 산이 매우 기이하고 수려하다. 일도국사 도선스님은 영암군
출신이다. 산속에 절이 있는데, 이름은 도갑사이니 세인들이 전해 오기를 도선국사의
창건이라고 한다. 명나라 천순원년 정축년에 신미와 수미 두 스님이 합심하여 중창하고,
예문제학 윤사균이 중창기를 지었다. 천순 정축년은 금년 임진년과는 일백구십년의 상거가
된다. 사중에 도선국사의 비가 있으나, 언제 처음으로 세웠는지는 상고할 수가 없다. 비가 이미
마멸되어 옥습대사가 다시 세웠는데, 백헌 이상국으로부터 비명을 받고, 옥습대사가 또 나(
정두경))에게 비음(음기)을 지어달라고 청탁하였다. 나는 항상 천중기를 보는데, 그 내용은
구림에 대한 것으로 천하의 사실들을 들은지 이미 오래되었다. 도선국사의 출생과정이 이미
기이함을 보였으며 또 그의 이름이 천하에 두루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지혜가 명민하여 미래에
고려 태조가 통일하여 오백 년간 사직이 공고할 터 임을 알았으니, 이른바 천안을 통득한
스님을 어찌 지술 일면만을 정통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한 기이하시다.
명(銘)에 이르기를,
월출산 바위마다 신이 깃들어 있으니,
강신으로 말하자면 살아있는 도선선사이네.
국사가 처음 태어날 때 일반 사람과 같지 않았으니,
어머니가 오이를 먹고 임신하여 태어나셨네.
낳자마자 버려지니 비둘기가 날개로 덮으니,
이를 보곤 이상히 여겨 거두어 양육하였네.
국사께서 신라 때 태어났지만 그 일은 지금도 전해지고,
바위는 국사암이고 마을은 구림이라 부르네.
후직(주나라 시조)의 새는 추위를 막아주었으니,
구림의 이야기와 그 인연을 비교하면 다름이 없네.
옛날 신승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도선국사이니,
아 위대한 선사는 용상을 지닌 걸출한 인물일세.
학술에 통달하니 청조(靑鳥, 전설의 새)의 경지라네
당황제가 현몽을 꾸고 초대하여 오게 하니,
중국에 들어가서 일행이 받들어 모시다.
스님께서 신묘한 경지를 배우고 고국으로 돌아왔네.
오늘길에 송악의 형상이 오백 년 도읍터라 보았네.
길하고 흥하고 커지고 망하고를 미리 예측하시니,
스님이 말씀이 우리나라 지형은 배 모양이라 하시네.
진(해상요새 또는 진압추)없는 배는 항해할 수 없으니,
지형이란 자연히 정하여지니 그에 맞춰 진압함이라네
우리나라 땅은 수천 리에 달하니,
멀지도 가깝지도 않으니 스님이 두루두루 살펴보고,
절을 짓고 탑을 세워 높은 산 낮은 강을 진압하였네.
월출산에 절이 있으니 그 이름 도갑사라네.
월출이 산이므로 스님이 비로서 태어나시고,
도갑이 절이니 스님이 비로소 다스리시네.
스님이 마침내 떠나셨지만 그 마음은 가실 수 없네.
절에 비를 세워서 스님의 업적 새겨두었네.
오늘에 이르러 비가 박락되니 문도들이 힘을 모아 다시 세웠네.
이상국이 찬술한 내용은 격조 높은 명문이로다.
거듭 비워서 그것을 청하니 이어서 비에 명문을 짓다.
통훈대부 홍문관교리 겸지제교 정두경 지음
성균 진사 김비 씀
성균 진사 김시간 전서
숭정 병자년 4월 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계사년 4월 일에 세움
비의 높이는 18자이고 너비는 9자이다.
인평대군
수록대부영안위홍주원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김상헌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이경여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정태화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김육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좌의정이시백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구인후 자헌대부이조판서김집
보국숭록대부병조판서원두표 자헌대부이조판서심지원 자헌대부이조판서임담
정헌대부호조판서이시방 자헌대부이조판서□□□
자헌대부병조판서박서 자헌대부형조판서남선 숭정대부공조판서이해
자헌대부형조판서윤리지 가선대부이조참판윤순지 가선대부대사헌이일상
희선대부대사간홍명하 가선대부대제학채유후 가선대부개성류수오정일
가선대부평안순찰사허□ 가선대부경상순찰사조계원 통정대부전라순찰사심□택
가선대부전라순찰사이만 통정대부홍문관부제학신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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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정대부병조참의이행진 통정대부나주목사유석 통훈대부나주목사정지호
통훈대부경기도사이상진 통훈대부정언박승건 통훈대부선주목사곽성구
가선대부훈련대장이완 자헌대부훈련대장신준 가선대부통제사구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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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충장군전라병사허동립 절충장군전라우수사정즙 통훈대부익산군수김수창
통훈대부군기첨정조행립 통훈대부영암군수이□ 통훈대부영암군수이행원
통훈대부영암군수박정시 통훈대부영암군수이유석 문과장원박세모
통훈대부행호조좌랑이유 선종대선사태능 선종대선사태호 선종대선사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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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조쌍평 자위문승남 절충장군김대례 원비선사도안 용양위부사과이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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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균 유극 수응 처묵 천선 도행 덕유 현익 충신 설호 의정 의인 석초 석민 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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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임청항 사과김례용 사과박현창 사과천청운 사과변인득 나주인이남 한량김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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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과임제원 한량이효하 첨지김금종
첨지판사각명 첨지판사덕인 첨지판사인잠 시임주지상전 지사선열 삼강성일
지전지즙 수승옥심 간사여명
가선최응진 사과남순립 사과전대축 사과이대술 사과이충남 사과김황연 사과허량
사과장익 사과장철 동지장례봉 한량김장운 사과김계선 사과천승추 거사주춘학
한량강사남 사과이인용 참봉서효립 한량조연수 한량김상윤 김성호
성용 칠룡 봉립 이운 승준 철원 선경 철휘
별좌보선 별좌희상 남평성림 영암여환 영암처원 나주태상 남평신년
상유 대십 도일 상령 태경 사민 방순 상눌 의겸 성오 혜희 찬협 석매 문익 선제
래왕승종윤 조만석 변편금 여산인박시준 차말남 차만립 박응이 조고공 조씨근개
이덕전 박춘양 전주인황천 김천립 김돌시 김수명 이신양 최제길 김인 최한동 김선익
김담 주득현 주득인 김자근복 이축의 진대균 류제복 오말생
치장 김말생 황청운 전해봉 한구금
석공 조계홍 조계황 김상경
판각 절충장군석공 조만룡
청음신독재량선생 성휘하 허부도자박멸 무진 십월 김기창 개간
月出山道岬寺道詵國師守眉大禪師碑銘(전액)
月出山道岬寺道詵國師守眉大禪師碑銘 幷序
夫以金山建刹永埀頭陀之名河水浮盃猶傳和尙之號矧乎玄關啓鍵忝
造化而通神紺宇開場擁休祥而流福寔合貞珉之
昭揭敢緩顯刻之重新國師法諱道詵新羅朗州人也母曰崔氏家于聖起
山之僻村生於眞德王之季歲靑瓜孕秀同巨跡之
感心白足禀精鍾淑氣而拔俗神鳩護持於叢竹靈鷲覆翼於平林傳貝葉
於月南年未舞象隨使槎於海內運際攀龍歷踐禹
貢之山川親覩唐家之文物接延英之溫諭帝夢金人卜大行之新陵神授
白馬斯盖天賦之特異豈但地術之偏能萬乘加國
師之稱一行有天人之許金箱玉笈究幽經而貫穿赤縣黃圖窮法眼而纖
悉乞東還而振策演北學以濟時察地形之類舟鎭
其首尾創伽藍而設塔遍於邇遐天花絶一點之緣嶽松基半千之業惟兹
月出之道岬不啻日觀之奇峯山疊巒重宛千佛之
列像巖危石動知一同之著名魚口想文殊之遠尋龍淵聞普渡之來住雲
窓霧戶依俙十二之樓潮梵風幡輝暎三千之界意
在利益民物期使鞏固邦基高謝世人之塡門逈臨方丈而掛錫六塵旣息
探玅道於竺乾三昧斯臻闡眞乘於祇樹金剛太白
擧屬慈航黃壞穹蒼遙懸寶鏡如來不隔過去猶存法雨一施而普霑兵火
再逼而自滅浩刼雲衞獨龍宮之巍然古碑烟侵致
龜頭之剝落緇流興歎碧嶂含愁縱靈蹟之流傳赫若前日倘銘辭之缺闕
曷示後人鳥革翬飛曾賴老宿之改搆鸞翔鳳翥可
廢舊鑱之更修其徒玉習夙奮禪林廣募檀越三經歲籥罄至誠而愈堅重
到京都索拙文而彌切雖乏幼婦之語寧孤上人之
祈銘曰獨神乎神孰覺其覺 難以知知難以識識 碑無碑有何損何益 久
而愈尊今復如昔
崇禎丙子四月日始癸巳四月日立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
監事 世子師李景奭撰
正憲大夫禮曹判書兼知 經筵春秋館事弘文館提學 世子右賓客吳
竣書
資憲大夫刑曹判書兼知義禁府春秋館事藝文館提學 世子右賓客五
衞都摠府都摠管金光煜篆
[左記]
介於靈康兩邑之間有一山焉其名曰月生山之西有大伽藍世傳新羅國師
所創建之地也寺後古有碑世久剝刓殆不能識字有僧玉習者慨然發奮携
一錫杖遠走京師辯造縉紳而請焉白軒李相國修其辭尙書吳公書其碑漢
城尹金公篆其額選一國宗匠鉅筆而無以尙矣某歲九月遂伐石於礪山之
東於是湖南伯曁礪益龍安數邑守宰咸以農隙出民力以助之叢林釋徒窮
鄕虽氓之募善緣者莫不傾資虛橐奔走趍事翌年初夏那運於黃山船泊所
舟于加林郡南塘浦歷群山七山浦而泊于西湖前洋閱七月而工吿斷手龜
跌螭首各臻其妙而屹立於寺後之北塘天順年間有名僧守眉和尙重建寺
之法宇而碑則未遑焉眇爾一小禪擘畫於數載之間克擧數百年所未遑之
事而光前耀後垂眎無極則何其捷歟窃念國師東國之神人也其生也非人
道而家人棄而不擧則有群鳩覆翼之異至今巖石上舊迹宛然如昨村之號
以鳩林巖之名以國師自兹始焉年未成童落髮于月南寺入唐尋叅一行禪
師盡傳其法焉及其還而東也名寺鉅塔一丘一水無非國師剏建指點之所
前乎千百歲之己往後乎千百歲之方來昭然森列眼前則豈非釋氏所謂超
上乘而神乎神者邪羅濟以來號以神僧者如元曉義相輩固非一二而稱其
傑然者指不可以再屈焉老而示寂于白雲山靈珠莊在石龕中而平日行蹟
具載崔惟淸所撰碑文云
通訓大夫弘文館副修撰 李壽仁撰
成均進士 金時暕書
[음기]
國師道詵墓碣銘(전액)
有明朝鮮國全羅道靈巖郡月出山道岬寺國師道詵碑陰銘幷序
靈巖郡有月出山山之奇秀盖一道國師道詵郡人也山有寺曰道岬世傳師
所創大明天順元年
丁丑有信眉守眉兩師者重剏焉藝文提學尹公士呁爲之記天順丁丑去今
壬辰一百九十有餘
年矣寺有詵師碑不知立始何代碑已磨滅有玉習師者重刻焉白軒李相國
爲之銘習師又請余
志碑陰余常見天中記記鳩林鳩林志天中聞天下久矣詵師厥生旣異又名
聞天下智知未來成
麗祖一統五百載之基所謂通釋氏天眼者豈可以一術稱哉亦異矣銘曰月
出巖巖惟嶽降神降
神伊何生師道詵師之始生異諸常人母漂食瓜歆而有身及生棄之鳩覆翼
之見而異之收之育
之師生新羅事傳至今巖曰國師里曰鳩林鳥覆后稷寒氷之寘惟此鳩林厥
異何異古有神僧詵
師非是猗歟詵師龍象之傑術無不通靑鳥其一感 夢唐帝有詔來徵入于
中國一行是承師得
妙訣複還東國爰相松嶽載祀五百師有法眼通觀百千吉凶隆替知于未然
師曰東國地形如舟
舟不有鎭其無漂流地形亦然鎭其可已東國之土數千餘里無遠無邇師無
不歷創寺建塔以
鎭嶽瀆月出有寺寺名道岬月出之山師之所生道岬之寺師之所營師雖去
矣烏得無情寺有
片石記師之跡今已剝落其徒復刻相國是譔 絶妙之辭重虛其請續銘于
碑
通訓大夫行弘文館校理兼知製敎 鄭斗卿撰
成均進士 金棐書
成均進士 金時暕篆
崇禎丙子四月日 始 癸巳四月日立長十八尺廣九尺
麟坪大君
綏祿大夫永安尉洪柱元 大匡辅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金尚憲 大匡辅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李敬輿 大匡辅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鄭太和 大匡輔國崇祿大夫議
政府領議政金堉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李時白 大匡辅国崇禄大夫議政府
右議政具仁垕 資憲大夫吏曹判書金集 輔國崇祿大夫兵曹判書元斗杓 資憲大夫吏
曹判書沈之源 資憲大夫吏曹判書林墰 正憲大夫戶曹判書李時昉 資憲大夫吏曹判書
□□□
資憲大夫兵曹判書朴遾 資憲大夫刑曹判書南銑 崇政大夫工曹判書李澥 資憲大夫刑
曹判書尹履之 嘉善大夫吏曹參判尹順之 嘉善大夫大司憲李一相 喜善大夫大司諫洪
命夏 嘉善大夫大提學蔡裕後 嘉善大夫開城留守吳挺一 嘉善大夫平安巡察使許□ 嘉
善大夫慶尚巡察使趙啓遠 通政大夫全羅巡察使沈□澤 嘉善大夫全羅巡察使李曼 通
政大夫弘文館副提學愼天翊
通政大夫吏曹參議南老星 通政大夫戶曹參議鄭知和 通政大夫戶曹參議金佐明 通政
大夫兵曹參議李行進 通政大夫羅州牧使柳碩 通訓大夫羅州牧使鄭之虎 通訓大夫京
畿都事李尙眞 通訓大夫正言朴承健 通訓大夫綫州牧使郭聖龜 嘉善大夫訓練大將李
浣 資憲大夫訓練大將申浚 嘉善大夫統制使具仁旣 嘉善大夫海城君金汝水 嘉善大夫
全羅兵使柳廷益
嘉善大夫平安兵使朴省吾 嘉善大夫慶尙兵使李元老 嘉善大夫都總官南斗柄 折衝將
軍全羅兵使許東岦 折衝將軍全羅右水使鄭檝 通訓大夫益山郡守金壽昌 通訓大夫軍
器僉正曹行立 通訓大夫靈巖郡守李□ 通訓大夫靈巖郡守李行源 通訓大夫靈巖郡守
朴廷蓍 通訓大夫靈巖郡守李惟碩 文科壯元朴世模 通訓大夫行戶曹佐郎李秞 禪宗大
禪師太能 禪宗大禪師太浩 禪宗大禪師覺性 禪宗大禪師明照
碩德戒環 大功德住一俊 禪師敬悅 京內人禪師守初 嘉善丁允博子振岌 折衝將軍龍
驤尉副司果金義孝 折衝將軍咸應元 折衝將軍李應已 同知趙雙平 子尉文承南 折衝
將軍金大禮 願碑禪師道安 龍驤尉副司果李德一 晋州後人姜承業
參奉盧俊 司果鄭應信 禪師行元 應全 克澄 妙兼 金秀東
本寺禪師學厚
應均 唯克 修應 處黙 天仙 道行 德裕 玄益 忠信 雪湖 義正 義人 釋超 釋敏 性熙
司果李千立 司果周香南 司果金望泰 司果安孝悌 司果蔡得南 司果金大海 司果林青
亢 司果金禮龍 司果朴顯昌 司果千青雲 司果卞仁得 羅州人李南 閑良金麗成 副司果
文千進 副司果文元立 副司果金鐵鼎 司果李夢龍 淑夫人愛環 副司果林孝元 副司果
林悌元 閑良李孝夏 僉知金琴從
僉知判事覺明 僉知判事德仁 僉知判事印岑 時任住持尙全 持寺仙㤠 三綱性一 持殿
智楫 首僧玉心 看事呂明
嘉善崔應眞 司果南順立 司果全大祝 司果李大述 司果李忠南 司果金皝延 司果許
良 司果張翼 司果張徹 同知張禮奉 閑良金長云 司果金季先 司果千承秋 㞐士周春鶴
閑良姜士南 司果李仁龍 參奉徐孝立 閑良趙年守 閑良金商潤 金成虎
成龍 七龍 奉立 已云 勝峻 哲元 善敬 哲輝
別座普宣 別座熙尙 南平性林 靈巖呂環 靈巖處元 羅州太尙 南平愼年
上有 大什 道一 尙玲 太冏 思敏 邦淳 尙訥 儀兼 性悟 惠熙 贊冾 釋梅 文益 禪提 來
往僧宗允 趙萬石 卞片金 礪山人 朴時峻 車末南 車萬立 朴應隶 趙古公 曹氏近介 李
德全朴春陽 全州人黃千 金千立 金乭屎 金水命 李信楊 崔悌吉 金仁 崔汗同 金善益
金淡 朱得玄 朱得仁 金者斤卜李丑矣 陳大均 劉悌復 吳唜生
治匠 金唜生 黃青雲 全海奉 韓仇金
石工 曹繼洪 曹繼黃 金尙卿
判刻 折衝將軍石工 曹萬龍
清陰慎獨齋兩先生姓諱何許不道者剝滅戊辰十月金箕昶 改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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