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의 금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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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의 금석문 군서면

효자 김상윤 비갈명

주  소
군서면 도갑리 395
건립연대
임오 3월(1942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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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김해김씨 농은 비갈명

낭성(朗城) 서쪽에 효자 김해김공이 있으니, 집안은 가락국 수로왕의 후예요, 네 임금을
모신 공신의 후예가 되는 집안이다. 대남(大男)은 현손이니 통훈대부(通訓大夫)로
깨끗함이 있었고, 증손은 통훈대부 석하(錫河)이며, 손자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영태(永
泰)의 아들이다. 공의 휘는 상윤(相奫)으로 자는 장선(長善)이며, 농은(農隱)은 그 호이다.
가문의 명성을 이어서 오랜 후대에까지 더욱 이름이 있게 하였다. 아아! 공은 7~8세부터
온화하고 유순한 기색이었고, 아침저녁으로 부모를 수발드는 범절은 전해 내려온 학문에
힘입은 것이고, 문장의 탁월함은 공의 여가에 달린 일이었다.
집이 가난하였으므로 늘 받들어 모시는 것이 실정에 맞지 않을까 탄식하였다. 나무하고
고기잡이하여 어버이의 밥상을 살폈으며, 사철마다 새로 물건을 얻으면 먼저 입에 대지
않았다. 언제나 어버이의 뜻을 기쁘게 하였으며 궁리하고 수신하였으니, 세간에서
군자라고 칭하였다. 어버이에게 병이 생기자 의대도 벗어놓지 않은 채 직접 시탕(侍湯)
하며, 하늘에 끊이지 않고 빌었으나 상을 당하자, 감정에 몸을 상하여 여러 번 거꾸러지고
슬픔으로 근심하였으니, 비록 길을 가다가 우연히 사람을 만나도 탄식하게 되었다. 상을
끝내고 장례를 치를 때에는 한결같이 예제를 준행하였으며, 조석으로 묘소에 배알하기를
한결같이 살아 계신 것처럼 하였으니, 무릎을 꿇는 곳의 풀이 말라서 자라지 않았다. 사람
중에 이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일어나 공경하면서 ‘이
효자는 김공의 아버지이다’라고 할 것이다.
삼물과 육행에 대해서는 거의 부끄러움이 없었다. 탈상하고 난 뒤에도 늘 기일이 되면
재계하고, 고기와 술을 먹지 않았으며, 마음에 애석함이 있었으니, 종신토록 효도를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또 고종 황제가 승하한 소식을 듣자 사흘간 마실 것을
끊었으니, 충효의 순수하고 독실함이 하늘의 뜻을 감응시킨 것이 아니었다면 어찌 이러한
경지에 이르겠는가? 자식 된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가 이 효에 대한 마음이 없겠는가?
그러나 이 도를 행하는 사람은 고금을 다 따져도 겨우 한두 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감응하면 사람도 그 이름을 듣고 장차 급급해져서 오히려 자기가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여, 보고 느끼는데 이르는 것도 또한 같고 다름이 없으면 곧
유림의 추천을 받게 되니 바로 이것이다.
정려를 두어 칭찬하고 비갈을 세워 격려하는 것이 어찌 공이 바라는 것이겠는가? 자손이
하나의 도를 사모하는 것이 바로 효가(孝家)의 효자(孝子)이다. 옥현이 원대한 계획을 세워
그 일을 시행하던 중에 나에게 와서 문장을 어탁하였다. 내가 비록 문장이 아니지만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감응하였다. 그러므로 이 글과 명(銘) 짓는다.
동방의 큰 씨족, 조상이 있고 자손이 있네.
천성이 순수하고 한결같아 효도하고 봉양하기를 아침저녁으로 하였노라.
오륜의 첫머리요, 백행의 근원이 효이니,
사림이 논의를 발하여 떳떳함을 보존하리.
무진년 가을 9월 하순, 가선대부 전 이조참판 동지경연 춘추관 성균관사 규장각 직제학
여흥 후손 민병승 지음
해는 임오년 3월, 경주 후인(后人) 이상성(李相性) 삼가 씀

孝子金海金公農隱碑碣銘
朗城之西有孝子金海金公家以駕洛國王之後功臣四君之裔也大男
玄孫通訓有淡曾孫通訓錫河孫通政大夫永泰子也公諱相奫字長善
農隱其號也承襲家聲尤有名於百世者也鳴乎公自在齠齡和柔之色
定省之節賴有傳來之學而文章之發越在公餘事也家貧每歎奉供之
自不稱情樵山漁水以供親饌四時新物不先於口每侍和悅親意窮理
修身世稱君子親有疾衣帶不觧侍湯親執祝天不巳丁憂任情哀毁累
顚之形繭梅之慼雖行路愚夫爲之嗟嘆居喪葬祭一遵禮制朝夕拜墓
一如事生跪膝處草枯不生人有過此者必指點起敬曰是孝子金公親
山也其於三物之六行殆無愧焉服關后每當忌日齊戒不食酒肉心有
怵惕可謂終身不忘之孝轉聞 高宗皇帝昇遐絶飮三日忠孝純篤非
天意所感烏能至此哉夫孝爲人子者孰無是心行是道者古往今來千
萬中之僅一二人也故天有所感人亦聞其名者若將汲汲焉猶愧己嘗
不及而至於觀感亦無異同則迺者僉章甫聯薦是也有旌閭而褒揚有
碑碣而獎勵者豈公所企哉子孫之思慕一道乃孝家之孝子也久君玉
炫爲久遠計以其實行之事請余而文余雖不文不敢辭者乃感發也故
遂爲之書銘東方大姓有祖有孫天性純一孝養晨昏五倫之首百行之
源士林發論秉彛所存歲舍戊辰菊秋下浣嘉義大夫前吏曹參判經筵
同知春秋館成均館奎章閣直提學驪興后人閔丙承撰
歲壬午季春慶州后人李相性謹書

효자김해김공농은비갈명
낭성지서유효자김해김공가이가락국왕지후공신사군지예야대남
현손통훈유담증손통훈석하손통정대부영태자야공휘상윤자장선
농은기호야승습가성우유명어백세자야명호공자재초령화유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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