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의 금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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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의 금석문 학산면

난곡 박우상 혜적비

주  소
학산면 용소리 500-1
건립연대
기묘 10월(1939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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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 함양박씨 박우상 혜적비

그가 묻힌 곳이 아니며, 그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 아니며, 또 그가 벼슬한 일이
없음에도 그 자리에 비석을 세우고 큰 글자로 깊이 새기는 것은 장차 이어질
세상에 잊지 않으려 함이다. 기이하도다! 영주(靈州)의 천해(泉海)요, 인사(人
士)의 난곡(蘭谷)은 박공이 바로 그러할 뿐이다. 비석이 만들어지자 나에게 글을
지어달라는 청이 들어왔다. 내가 그 사실을 받아보고서 간략히 기술한 것이
다음과 같다.
공은 출중하고 호방하며 굳건한 자질이었다. 사람을 아끼고 베풀기를 좋아하여
곳집이 가득하면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도랑을 치우고 밭갈이를 하며 부지런히
일할 때와 잠시 쉴 때도 절약하였으니, 마침내 큰 자산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동리에 궁핍하게 사는 이들에게 모곡(耗穀)을 나누기를 바랐다. 그때 집들은
텅 비고, 송곳 세울 땅 하나도 없어서, 사고 팔리는 신세가 되는 일이 온 마을에
만연하였다. 공이 텅 빈 집안을 측은히 여기고 자금을 내어 구조하였고, 높은 이자
받는 것을 금지하였으며, 그중 농토 가진 자와 모의하여, 한 지역을 감화시켜
경작과 길쌈에 힘쓰게 하고, 나오지 않는 것은 떨쳐내 버릴 수 있게 하니, 10여 년
만에 동리의 가호가 모두 넉넉하게 되었다. 공이 이미 세상을 뜬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공덕을 노래하는 자들이 이에 비석을 세우고자 하였다. 또 “이미 남다른
행동이 기록할 만한 것이다”고 말하였다.
내가 성동이 되어서 《논어》를 읽었을 때, ‘그러지 말고 네 이웃에 나누어주어라’
라는 구절에 이르러서, 매우 탄식하며 걱정하였는데 대부(大夫)가 이것을 담당한
것이다. “인성(仁性)을 베푼 것이 오래되었고, 효성과 우애는 처음의 예로
하였으니, 우리가 보고 감탄하여 기쁘게 따르지 않겠는가?”고 하였다. 이어서
비의 내용을 정하여 그 선대의 계보를 물으니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은 함양
사람으로 휘는 우상(祐相), 자는 형환(亨煥)이며 난곡(蘭谷)이 그 호이다. 오한(五
恨), 고광(孤狂) 선생은 감사, 병사들이 살펴 징소하였다. 그 현달한 조상은 후영
(厚榮), 예진(禮鎭), 한철(漢哲)이 있으니 그 3대조이다. 이 역사를 시작한 것은
임양모(任良模), 조기환(曺奇煥), 최익돈(崔益敦)이다. 저 비(碑)라는 것은 비(悲)
이니, 군자들이 슬프지 않을 수 있으랴? 산하가 바뀌매 전형(典型)이 아득하도다.
이미 사모할 곳이 없더라도 그대로 잊을 수 없으니, 한 조각 비석을 세움이
어떠하겠는가?
이에 지은 명(銘) 이 다음과 같다.
아아, 난곡이어! 오랜 뒤에도 남아 드러나리라.
나태함을 움직이게 하였고, 풍속을 아름답게 하였도다.
사는 곳 윤택하고 땅은 비옥하니, 바로 이것으로 힘이 되어 그 향리를 아름답게
하였노라.
아직 나라에 전해지지 않았으나 그 공이 떨어지게 해서는 아니 되리.
먼저 걱정하여 뒷날에 살게 하니, 거친 보답으로나마 비석을 세우노라.
가선대부 장례원 소경 규장각 부제학 연안(延安) 이병관 지음
승훈랑 외부 원외랑 한산(韓山) 이긍복 씀
해는 기묘 10월 일, 천해 일동

蘭谷咸陽朴公祐相惠積碑
非其衣舃之藏也非其籩豆之所也又非有旂常之債而碑於其而居大
書深刻若將嗣世而不忘異矣哉靈州之泉海人士之於蘭谷朴公是己
碑成徵文於余余淂以叩其實焉曰公英邁豪健之資愛人好施予乃曰
倉廩實可有爲掇瀆淉耕勤勞節儉晷刻節儉竟致鉅貳願念里中敝耗
室如懸磬地無立錐胥徒之催祖錢買之習債閭里爲之蕭家惻然悶憐
捐金救助禁其高利謀其有田一里感化力耕織得振奧不出十餘年戶
皆殷饒公旣歾而愈久彊歌功德是受以碑之也又旣異行之可紀者歟
曰成童時讀魯論之曰母與爾隣里鄕黨乎之旬探味慨歎以爲大夫當
以是矣施惠仁性厥惟久矣且孝友初禮夙非吾輩觀感悅服也曰是定
以碑矣間其派系曰公咸陽人諱祐相字亨煥蘭谷其號五恨孤狂兩先
生監兵使省召其顯祖曰厚榮曰禮鎭曰漢哲其三世也剏是役者任良
模曺奇煥崔益敦也夫碑者悲也薨君子能母悲乎河山貿矣典型邈手
旣旡所於寓慕則仍不可忘母寧一片之石乎乃銘曰
于嗟蘭谷百世遺著成懶趍動俗美化行屋潤土肥是雖之力獨善其鄕
未展于國母墜厥㣱美憂後穀粗劾涓報有屹於石
嘉善大夫掌禮院少卿奎章閣副提學 延安李炳觀 撰
承訓郎外部員外郎 韓山李肯馥 書
歲己卯之十月 日 泉海一同

난곡함양박공우상혜적비
비기의석지장야비기변두지소야우비유기상지채이비어기이거대
서심각약장사세이불망이의재영주지천해인사지어난곡박공시기
비성징문어여여득이고기실언왈공영매호건지자애인호시여내왈
창름실가유위철독과경근노절검귀각절검경치거이원념리중폐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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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소어우모칙잉불가망모녕일편지석호내명왈
우차난곡백세유저성나추동속미화행옥윤토비시수지력독선기향
미전우국모추궐채미우후곡조핵연보유흘어석
가선대부장례원소경규장각부제학연안이병관 찬
승훈랑외부원외랑 한산이긍복 서
세기묘지십월 일 천해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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