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의 금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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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의 금석문 학산면

처정 박광년 신단

주  소
학산면 금계리 산 26-1
건립연대
공자탄강 2473년 임술 11월(1922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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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정 박광년 신단(神壇)

숙부인 청주김씨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하다 순국(殉國)[立殣]하여 절개를 지킨
자가 많았고, 운을 보존하여 공을 이룬자도 있었다. 첨정(僉正) 박광년(朴光年) 공이 바로
이러하였던 것이다. 공의 자는 여중(汝仲)으로 밀성(密城, 밀양)이 그 본관이다. 공은 가정
(嘉靖) 임자년(壬子年, 1552)에 태어났다. 타고난 자질이 영민(穎敏)하였고, 담력(膽力)
이 대단하였으며 효성(孝性)은 하늘에 근본하여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고기 한 마리를 얻으면 먼저 자기가 먹지 않고 어머니께 받들어 올렸다.
15세가 되어서는 오직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어머니의 뜻을 잘 받들어 모시는 것을 임무
(任務)로 삼았다. 큰 형인 영장(營將) 공(公)이 항상 그 효를 칭찬하면 스스로 부끄럽다고
한 것이 많았다. 점점 장성하자 몸가짐과 용모가 단정하고 엄숙하였고, 총명함이
남달라서 무경칠서(武經七書)의 여러 편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외웠다. 옛날 명장(名將)
의 지모(智謀)가 어떠했는가, 그 용병(用兵)의 우열(優劣)이 어떠했는가를 역대로 세세히
논하였으니 듣는 자들이 모두 훌륭하게 여겼다. 유사로 조정에 천거되어 선전관(宣傳官)
에 제수되었으며 이어 훈련원(訓鍊院) 주부(主簿), 첨정(僉正), 도총부(都摠府) 도사(都
司)에 제수되어 천은(天恩)을 두텁게 입었으니 그 영광이 컸다. 임진년에 왜란이 일어나
어가가 평안도로 파천하였는데 공은 무기를 쥐고 평양으로 가서 왕을 지켰다. 선조 임금이
기특하게 여기고 곧 군기시(軍器寺) 첨정(僉正)에 제수하였다. 이때 적의 형세가 더욱
번성해서 아래로 내려와 범하려 하자, 공이 명을 받들고 원수인 권공(權公)의 진으로
가다가 도중에 적 수천을 만나 안개와 구름이 자욱하게 끼자마자, 공은 말을 달려 상하지
않고 진에 도착해 명을 전했다.
권공이 칭찬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금환(錦釻)으로 상을 주었다. 공의 조카 계원(繼元)이
그때 좌막(佐幕)에 있었으므로 위로하여 말하기를 “숙부가 단신으로 적진을 함락하고
참벌(斬伐)하여 이 상황을 면해야 하는데, 그것은 정말이지 하늘의 뜻이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 하였다. 명을 마치고 보고하자 임금이 크게 기뻐하며
치하하였고, 곧 훈련첨정(訓鍊僉正)에 제수하고, 자주색 말을 하사하니 금환을 여기에
묶었다. 어가가 의주에 머무르자, 공이 칼을 치며 시를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군부는
몽진하는 중인데 어찌 순국하는 마음이 없을까? 산하는 길게 분기로 띠 두른 듯하건만
밤중에 슬픔이 일어 읊조리노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또한 그 충의가 얼마나 격정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난이 평정되어 어가가 돌아오는 날 공의 형제와 조카가 모두 전장에서 성명(性命)을
보전하여 공신에 책훈(策勳)되기에 이르렀으나 벼슬살이할 뜻이 없어, 끝내 거리낌 없이
남쪽으로 내려와 호수가에서 노닐며 계곡에서 번갈아 노래하여 그 아취를 고상하게
하였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신유년 10월 1일 졸하니 골미(骨尾)의 부유(負酉)
방향으로 장사지냈다.
공은 밀성군(密城君) 척(陟)을 먼 조상으로 하는 집안 태생으로, 이 집안은 우리 조정에
들어서 부마(駙馬) 갱(賡)을 배출하였으니, 그가 공의 8대조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현령을
지낸 휘 종(宗) 공이 그의 조부이다. 한성좌윤(漢城左尹)에 증직된 휘 유(裕) 공은 경주
김씨로 참봉을 지낸 김국창(金國昌)의 따님을 맞이하였으니, 각기 공의 부친과 모친이다.
공의 배위는 영인(令人) 청주김씨로 생원을 지낸 수일(守一)의 따님이다. 아들 진원(進元)
을 두었는데 무예가 있었고 부사과를 지냈다. 손자 중에 남자는 홍균(弘杓)이고, 증손자는
동빈(東彬)이며, 현손인 민현은 통정대부이다. 그 나머지는 기록하지 않는다. 그리고 잘
알려진 7세손 태선(泰善)은 낙안군수(樂安郡守)를 지냈고, 8세손 중하(重夏), 중언(重彦)은
참봉을 지냈으며, 중국(重國)이 있다. 12세손으로는 일영(日泳)이 도사를 지냈고, 민영(民
泳)이 선전관을 지냈으며, 한영(漢泳)이 감역관(監役官)을 지냈다.
아아! 공은 기질이 정직하고 무예를 익혀 천거에 오르기도 하였다. 창의군을 일으켜
충성을 다하였소. 성총을 두텁게 입었으나 권세를 가까이하지 않고, 몸을 깨끗이 하여
치욕을 멀리하였고 물고기, 새와 더불어 노닐다가 죽었으니 훌륭하도다! 공의 후세에 공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물러나 쉬는 것을 높이 쳐서 공신에 책봉되는 영광보다 낫다고 여길
것이다. 환경이 바뀌는 동안 묘가 이미 실전되어 제사를 지낼 수 없으니, 그 후손으로
제사를 이어받은 입장에서는 슬픔을 이루 다할 수 없다. 이에 제단을 세우고, 세상에 공의
무덤 자리를 지시하는 지점으로 삼고 장차 비석을 세우기 위하여 그 후손인 선식(琁植),
성식(性植)이 왔다. 나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으나 감읍하는 바가 있으므로, 삼가 만사를
임술년[玄黓閹茂] 5월 5일, 성균진사 덕은 송철헌 지은 글을 따라 남긴다.
13대손 상식 삼가 씀
공자탄생 2473년 임술 11월 11일 세움

僉正朴公光年神壇
淑夫人淸州金氏
粵昔龍蛇之亂擧義討賊立殣樹節者多保命成功者亦有之僉正朴公光年是
已公字汝仲密城其貫
也公生於 嘉靖壬子禀質穎敏膽力絶倫孝性根天早孤而事偏母得一魚果
不先入口而供進之成
童惟以怡愉承順爲務伯兄營將公常稱其孝曰自愧者多云漸長儀容端莊聰
明卓異武經諸編誦無
一漏自古名將智謀淺深用兵優劣歷歷細論聞者皆偉之也有司薦于 朝拜
宣傳官連除訓鍊院主
簿僉正都摠府都司厚蒙 天恩榮耀大矣壬辰猖獗 大駕西巡 公杖劒跋涉
勤王於平壤 宣廟
奇之卽除軍器寺僉正時賊勢逾熾犯於洛下公奉 命徃于元帥權公之陣途
遇賊數千適雲霧漲暗
公走馬衝擊無傷抵陣傅 命權公稱歎不己以錦釻賞之公之姪繼元時在佐
幕慰勞曰叔父以單身
陷賊陣而斬伐脕免此固天也非人力也復 命上大加嘉賞即拜訓鍊僉正 賜
紫馬錦紈焉 淸蹕
駐于龍灣公擊釰題詩曰 君父蒙塵日孰無殉國心山河猶帶憤中夜起悲吟
觀此亦可知其忠義所
激也亂靖回 鑾之日公之兄弟及侄俱全性命於干戈之中至蒙策勳而無意
於仕遂浩然南下逍遙
湖上篔籧秩唱高尙其趣烏不休哉卒于辛酉十月一日葬於骨尾負酉之原公
以密城君陟爲遠祖八
我 朝駙馬賡其八世祖也文科縣令諱宗其祖也 贈漢城左尹諱裕慶州金氏
叅奉國昌女其考妣
也配令人淸州金氏生員守一女擧一男進元有武藝副司果孫男弘杓曾孫東
彬玄孫敏玄通政餘不
盡錄而其著則七世孫泰善樂安郡守八世孫重夏重彦叅奉重國十二世孫日
泳都事民泳宣傳漢泳
監役官嗚呼公氣宇正直習武登薦仗義竭忠厚被寵見不近權門潔身遠辱與
魚鳥徜徉而沒善哉公
之後世知公者必以退逸之高爲勝於封勳之榮也谷遷陵移墓旣失傳不得薦
祼爲其後承者不勝悽
愴設壝壇於世傳公窆指點處將伐石竪碑謁余以文者其後孫琁植性植也余
非其人湥有所感按狀
叙述如此六峕亥黓閹茂端陽日成均進士德殷宋哲憲撰
十三代孫祥植謹書
孔子誕降二千四百七十三年壬戌十一月十一日 立

첨정박공광년신단
숙부인청주김씨
월석룡사지란거의토적입근수절자다보명성공자역유지첨정박공광년시
이공자여중밀성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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