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의 금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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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의 금석문 신북면

정부인 나주나씨 의행비

주  소
신북면 갈곡리 225-5
건립연대
기축 4월(1889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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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인 나주나씨 의행비

정부인 나씨는 본관이 나씨로 증 가선대부 예조참의 전주 이씨 이교영(李敎永)의 처이다.
혼례를 치르기 전에부터 규방의 법도를 단정하고 엄숙하게 따랐고, 위의가 아름다웠으며
보신(潽愼)의 절개가 있어서 숙녀의 행동거지가 있었다. 나이 19세에 이씨 가문으로
시집왔는데 가산이 자주 떨어져도 공손하게 부인의 도를 지켰고, 시부모 모시기를
친부모같이 하고, 남편 모시기를 빈객같이 하였으며, 집안의 친척에 대해서는 화락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고, 향촌의 이웃들이 모두 비석으로 전할만 하다고 칭송하였다.
시어머니께서 병이 들어 이질로 수개월 고생하는 동안 백방으로 구완하였으며,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 서령이 있어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였는데, 지금 사람들은
꺼렸을 것이지만 부인은 거리낌 없이 늘 병자의 옷을 빨아 시중을 들었으니, 아이도 코를
막을 정도였으나 ‘나는 항상 곁에 있느라 냄새를 깨닫지 못하겠다. 그러나 듣자니 병자의
변은 냄새가 심하여 혹시 다시 병이 날 수 있다고 하니, 내가 제사를 지내야겠다.’고 할
뿐이었다. 끝내 시어머니가 세상을 뜨게 되자 법도에 따라 애도하였으니, 모두 예제를 잘
따른 것이었다.
급기야 그 남편이 병에 걸려 병이 심해져 약을 써도 효험을 보지 못하고, 밤에는 하늘에
기도하기를 자신으로 대신하기를 원하면서 변의 맛을 보아 병의 차도를 시험하였고,
위독해지자 피를 내어 약으로 올렸으니, 그 남편이 다시 눈을 뜨고 보며 말하기를 우리
집안이 야윈 것은 세군(細君)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끝내 세상을
뜨자 부인이 몸부림치다 혼절하였다. 이에 깨어날 때까지 몇 사람이 물을 뿌리고
팔다리를 주물렀다. 친족들이 한결같이 걱정하며 권유하기를 “어린아이들이 슬하에
있는지라. 강보를 면할 수 없으니, 이러시면 이 집안을 누가 이을 것이며, 누가 그 임무를
감당하겠습니까? 게다가 망자가 세상을 뜨면서 의탁함이 중차대하니, 어찌 잊으시고
이처럼 허망하게 가시려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부인이 이에 후사를 전하는 대사를 마치고, 생각을 다잡고 뜻을 강직하게 품고
예제에 따라 상례를 치렀으니, 모습이 초췌하여 본 사람들이 모두 찬탄하며 “나씨의
효성스러움과 정절 있게 행동하니 옛날 이름난 부인들도 이보다 더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부인은 항상 어린 아들을 깨우치며 “내가 지금 따라가지 않고 아직도 죽지 않은 것은
네가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너는 나의 명을 어기지 말고 근신하며 씀씀이를 아껴서 우리
집안을 성공하게 하여라. 그러면 나는 마땅히 지하의 네 아버님께 보은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아아! 효도와 정절이란 마땅히 사람이 할 일이지만 또한 사람이 잘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성심을 다하고 공경스러운 마음이 지극하지 않으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향리의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행동을 선양하고자 하는 의론이 있었고 이제 비석을
세워서 잊지 않으려는 뜻을 보이게 되었으므로, 나에게 그 내용을 쓰게 하였다. 효자와
어진 사람은 그 부모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으니,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붓으로
간략하게 적어서 후세의 군자들이 말해주기를 기다린다. 교영(敎永)의 아버지는 휘가
종하(鍾河)로 경녕군(敬寧君) 비(裶)의 후손이고 나씨의 부친은 휘가 윤종(允宗)으로
수원부사를 지낸 성손(誠孫)의 후예이다. 아들로 연근, 준근이 있고, 손자로 형로가 있다.
기축 4월 상순, 전 진사 전주 이희빈 삼가 지음

貞夫人羅州羅氏懿行碑
貞夫人羅氏籍羅州 贈嘉善大夫禮曹叅議全州李敎永之妻也自未䈂前
閨範端莊婉娩之儀潽愼之節有淑女之行年十九結縭于李氏之門家道屢
空恭執婦道奉舅姑如父母待君子如賓客至於族黨親戚無不和悅鄕鄰莫
不欽誦口碑可傳矣老姑病痢累月百方救之暫不離側時方暑令大小便溷
臭今人難堪而夫人不無嫌容常滌病衣兒者募不揮鼻天人田吾常侍側不
覺其臭然聞病糞甚臭或可復甦吾以是爲祭云竟至屬纊哀毁之節哭踊之
數一遵禮制及其天敎永遘疾症㞃藥無奏效夜則禱天幷斗願以身代嘗糞
甘苦以驗病祟勢及危篤斫指以血灌口其夫復瞑目而視之曰吾家瘠存在
於細君之如何云云終至永眠夫人攀踊昏瘚遽以下從爲矢援水者三解絞
者二親族萬端勸喩曰幼穉在下禾免褓圓若此則此家承嗣誰可擔任耶且
亡人之臨終遺託重且大焉何其罔念如是妄擧耶夫人乃以傳嗣爲大事殉
從爲小鄕回念強志遵制守喪貌骨毁瘠見者莫不贊嘆曰羅氏孝烈之行古
之竇妻陳婦不過於此云夫人常戒臾子曰吾之不能下從而至今未亡者爾
曺尙幼之故也爾曺無違余命勤身節用以成吾家則吾當報汝父於地下矣
嗚乎孝與烈人所當爲而亦人所難能也非誠敬之至豈能如此自鄕遂旣有
闡揚之議而今此竪石以標不忘之義使余記其宲此孝子仁人不死其親之
心當如是也遂沘筆畧攄以俟世之立言君子敎永父諱鍾河敬寧君諱裶之
后羅氏父諱允宗水原府使諱誠孫之后子鍊根俊根孫亨魯云爾

己丑四月上浣 前進士全州李喜斌謹撰

정부인나주나씨의행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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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흠송구비가전의노고병리누월백방구 지잠불이측시방서령대소편혼
취금인난감이부인불무혐용상척병의아 자모불휘비천인전오상시측불
각기취연문병분심취혹가복소오이시위 제운경지속광애훼지절곡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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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친족만단권유왈유치재하화면보원 약차칙차가승사수가담임야차
망인지임종유탁중차대언하기망념여 시망거야부인내이전사위대사순
종위소향회념강지준제수상모골훼척견 자막불찬탄왈나씨효렬지행고
지두처진부불과어차운부인상계유자왈 오지불능하종이지금미망자이
조상유지고야이조무위여명근신절용이 성오가칙오당보여부어지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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