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의 금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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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의 금석문 신북면

가선대부 김인신 묘비

주  소
신북면 장산리 23-3(산장산길 156-74)
건립연대
경신 7월(1860년) *김인신 : 177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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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조선 가선 행 만경현령 김해김씨 김인신의 묘
정부인 영주양씨 부우(祔右, 우측 합장) 임좌(壬坐)
공은 수로왕(首露王)의 후예로 대대로 성 서쪽에 거주하였다. 성품이 본래 강직하고
엄숙하였다. 신미년(辛未年) 겨울, 공의 나이 27세로 서란(西亂,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음을 듣고,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난세의 시절에 순절함도 옳다고 여기고, 단신의
포의를 입고 홀로 서포(鼠浦)에 나아가 아뢰자 부모님이 울며 말했다. “이것은 비록
남자가 늘상 하는 일이라지만 내가 늙었으니 누구를 믿고 살겠는가?” 이때 공의 젊은
처는 울기를 멈추지 않았고, 어린아이는 엎드려 기기만 할 뿐이었다. 어찌 꼭 처자 때문에
마음을 바꿔 먹겠는가마는 자식된 자에게 있어 효보다 더 큰 것은 없으므로, 끝내 의병을
일으키지 않았다. 이름은 비록 드러나지 않았으나, 마음은 절개를 숭상하여 천추의
한이 있는 듯하였으므로 개략적인 것을 말하였다. 임진년에는 위도첨사(蝟島僉使)에
제수되었고, 임인년에는 또 만경현령(萬頃縣令)에 제수 되었다가, 무신년에 세상을 뜨자
이곳으로 돌아와 장사지냈으며, 경신년에는 이장하여 부인과 합장하였다.
경신년 7월 20일 세움. 장손 무과(武科) 필재 삼가 받듦

有明朝鮮嘉善行萬頃縣令金海金公仁臣之墓
貞夫人瀛洲梁氏附右 壬坐
公首露王後裔世居城西性本直岩辛未冬公年二十七聞西亂之起丈夫
生世殉於節可也布衣隻身運根鼠浦告由霣親嗚咽揮淚百是雖男兒
常常之事吾之而老孰恃而生乎時少妻涕泣不絶赤子葡蔔而已何必變
妻子也爲人之子者孝莫大焉故竟未倡義名雖不著心則尙節似不無干
秋之恨故槩擧云而壬辰拜蝟島僉使壬寅又拜萬頃縣令戊申歸葬
玆地庚申迕移合窆
庚申七月二十日立長孫武科弼載謹奉□□

유명조선가선행만경현령김해김공인신지묘 정부인영주양씨부우 임좌
공수로왕후예세거성서성본직암신미동공년 이십칠문서란지기장부
생세순어절가야포의척신운근서포고유운?친 오연휘누백시수남아
상상지사오지이노숙시이생호시소처체읍불 절적자포복이이하필변
처자야위인지자자효막대언고경미창의명수 불저심칙상절사불무간
추지한고개거운이임진배위도첨사임인우배 만경현령무신귀장
자지경신오이합폄
경신칠월이십일입장손무과필재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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