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의 금석문

본문 바로가기





영암의 금석문 신북면

쌍효자 하동정씨형제 정려비

주  소
신북면 월지리 382-5
건립연대
전몽작악 쾌월(을유 1945년 3월)

본문

 

1710468132.8364cxWUBpkQoI.png

1710468135.4843YOIiNQiqdz2.png



쌍효자 하동정씨 형제 정려비(旌閭碑)

정씨 가문에 두 효자가 있으니, 형은 휘가 창현(昌鉉)으로 자가 사인(士仁), 호가 금보(錦
浦)요, 동생은 휘가 복현(僕鉉)으로 자가 중삼(仲三)이니 …… 하동 사람이다. 금보 공은
문중의 아우 이희상(李熙庠), 나하집(羅夏集)과 함께 …… 그 정려(旌閭)와 비문(碑文)[碑
記]을 청하였다. 나는 일어나 공경스럽게 살피고 말했다. “애석하도다! 우리의 선왕께서는
흑도의 ……” 도시포에 이르러 3일을 머무르며 풍파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다렸다. 이때
금보 공이 배알(拜謁)하고 …… 전별금을 후하게 주었으니, 그가 어짊을 좋아하고 덕을
수상하는 성의를 살필 수 있었다.
또 소문에 금보 공은 후사를 이었을 때, 능히 선대의 훌륭함을 본받아서 훌륭하게
계승하여 쌍효가 되었다고 한다. 나이는 아직 관례를 치르지 않았지만 모친 홍씨에게
병이 생겨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청어를 먹고자 하니, 제철이 아님에도 잡아서
올렸다고 한다. 1년을 이어가라는 명을 따르지 않았다고 하니, 다음 해에 모친상을 당하여
슬픔이 정도를 넘어서 장사를 치른 후에도 비바람 부는 밤이라 하더라도 묘 아래 엎드려
절하기를 매양 폐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친이 문을 걸어 잠그고 그만두도록 해도 담장을
넘어서 시행하였다. 부친이 병이 들었을 때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약으로 올렸으나
끝내 구완하지 못하고 상을 당했고, 형은 여막을 짓고 동생은 안석을 받들어 부모의
상을 당해도 해이해지지 않았고, 대상과 기제를 봉행할 때도 살아계실 때 모셨던 것처럼
하였다.
장성할수록 덕망이 융성하였다.형은 천거로 교수가 되어 하분(河汾)의 풍속을 빛나게
하였다. …… 묘각(墓閣)을 중수하고 새로 묘갈을 건립하였다. 형의 생몰년은 철종
을묘년에서 기사년이고 동생의 생몰년은 경신년에서 정사년이다.
계해년부터 향도에 천거하려는 논의가 있었고, 을축년에는 ……원에 알려서 마침내
창덕궁까지 상달하여 정표(旌表)에 대한 특명을 받았다. 그 명에 “천정(天挺)은 현인을
귀히 여기며 그중에 으뜸가는 것은 효이므로 정려와 문을 세우도록 하여 아름다운 이름이
오래도록 가게 하라. 비단에 어필로 글을 써서 보내니 이것으로 가히 ……에 대하여
믿음을 징험할 수 있으리라.”
금보공의 문도들이 남주의 사림에게 통문을 보내어 비석을 세워 더욱 두 효자를
표창하려고 하였으니 정말이지 무엇이 중하겠는가? 다시 한 논의는 대대로 덕이 자손에게
복록을 내려 두 효자와 같은 사례가 다반사가 되었으니, 문서에 그 내용을 모두 갖추어
명문을 짓기로 논의하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하늘이 사람의 기강을
차례 잡은 것에 대하여 논하자면 때에 시절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니, …… 이와 같이 말할
뿐이다.
계미년[昭陽協洽] 10월, 월성 최원식(崔元植) 삼가 지음
을유년[旃蒙作噩] 3월 일 세움
발기인(發起人) 최순식 류인명 □□
나도기 남평 문경석 근□

雙孝子河東鄭氏兄弟旌閭碑
鄭氏有雙孝伯公諱昌鉉字士仁號錦浦季公諱僕鉉字仲三□□
隱河東人錦浦公門弟李熙庠羅夏集辛奉奎僉彦致□□□
請其旌閭碑記寶余起敬按之曰惜哉僕之先王者黑島之□
行至都豕浦留三日間以待風波之不興時錦浦公拜謁□路
次安其館宿厚贐送餞可審其好賢尙德之誠矣又承聞錦□
公胤嗣淳圭克趾先美善繼善述而雙孝年未及冠母夫人洪
氏有疾將至危濱願食生鯖非時朮得進延一年之命不事翌
年遭內艱哀毁逾制及葬後雖風雨之夜跪伏墓下每以無廢
父鎻門禁止越墻而行之父癠季裂指進血竟不救及丁憂也
伯兮廬墓季兮奉几繭梅之瘠三燧不懈祥事忌祭之奉□如
事生長益德望隆盛伯公薦爲敎授彬彬有河汾之風廣□□
田重修墓閣新竪墓碣焉距伯公生卒 哲廟乙卯與己巳□
公生卒庚申與丁巳也自癸亥有鄕道薦剡乙丑仰告于□□
院上達于 昌德宮特 命旌表曰天挺貴賢千史冠孝旌□
門閭壽芳名萬年 御筆帛書以 贈之斯可以徵信於□□
焉錦浦公門徒通告于南州士林設契竪碑愈彰其雙孝實□
何其重也更有一說世德孫錄與雙孝多般事實備載於狀文
碣銘通文中論辭今不復贅姑論其天叙人紀之不隨時變□
資有如是云 昭陽協洽小春節月城崔元植謹撰
旃蒙作噩之夬月 日 立
發起人崔郇植柳寅命□□
羅燾琪 南平文敬錫謹□

쌍효자하동정씨형제정려비
정씨유쌍효백공휘창현자사인호금포계공휘복현자중삼□□
은하동인금포공문제이희상나하집신봉규첨언치□□□
청기정려비기보여기경안지왈석재복지선왕자흑도지□
행지도시포유삼일간이대풍파지불흥시금포공배알□로
차안기관숙후신송전가심기호현상덕지성의우승문금□
공윤사순규극지선미선계선술이쌍효년미급관모부인홍
씨유질장지위빈원식생청비시출득진연일년지명불사익
년조내간애훼유제급장후수풍우지야궤복묘하매이무폐
부쇄문금지월장이행지부제계렬지진혈경불구급정우야
백혜려묘계혜봉궤견매지척삼수불해상사기제지봉□여
사생장익덕망융성백공천위교수빈빈유하분지풍광□□
전중수묘각신수묘갈언거백공생졸 철묘을묘여기사□
공생졸경신여정사야자계해유향도천섬을축앙고우□□
원상달우 창덕궁특 명정표왈천정귀현천사관효정□
문여수방명만년 어필백서이 증지사가이징신어□□
언금포공문도통고우남주사임설계수비유창기쌍효실□
하기중야갱유일열세덕손녹여쌍효다반사실비재어상문
갈명통문중론사금불복췌고론기천서인기지불수시변□
자유여시운 소양협흡소춘절월성최원식근찬
전몽작악지쾌월 일 립
발기인최순식류인명□□
나도기 남평문경석근□





방문자 집계

오늘
714
어제
1,266
최대
2,004
전체
1,030,143

영암문화원 열람실 | 대표자 : 원장 김한남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로55

TEL : 061-473-2632 | FAX : 061-473-2732 | E-mail : ycc2632@hanmail.net

Copyright © 영암문화원. All rights reserved.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