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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반재(考槃齋) • 창건시기 : 초건 미상/1783년 중건/1842년 중수/1936년 중수/1982년 중수/1999년 중건 • 위치 : 서호면 노정길 245-3 고반재는 해명재(海明齋) 또는 강명재(講明齋)라고도 불렸으며, 지금은 노동사(蘆洞祠)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반재 옆에는 밀양 김씨 신재(愼齋) 김견(金堅)을 비롯하여 송정 (松亭) 김중명(金重鳴), 이암(怡菴) 김경발(金景發) 3위를 모시는 노동사가 있다. 13 공신녹권(功臣錄券)은 선무원종 공신녹권과 진무원종 공신녹권으로 2건이 있는데, 이는 고반재와 노동사에서 제사를 지내는 김견과 김경발의 것이다. 토지 매매 문서 1건은 1628 년에 작성된 것으로 이를 통해 밀양 김씨가 정착하게 된 배경과 경제력을 볼 수 있다. 그 외남아 있는 호적 문서 7건은 모두 19세기의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蘆洞祠源今始通(노동사원금시통) 노동사 15 의 근원이 이제야 통하네 義節復明長夜月(의절복명장야월) 의로운 지조는 동짓달에 다시 밝아지고 精靈不絕碩人風(정영부절석인풍) 정령에게는 은자의 풍모가 끊이지 않네 蒸嘗歲歲衣繼掖(증상세세의계액) 해마다 지내는 제사에는 옷을 계속 걷어 올리고 講習聲聲掀碧空(강습성성흔벽공) 배우고 익히는 소리마다 창공에 올라가네 扶植綱常時態足(부식강상시태족) 법도를 부여잡고 다지니 세태에 족하고 千秋吾道一心同(천추오도일심동) 우리의 도는 만고에도 한마음일 것이라네 考槃齋出絕埃中(고반재출절애중) 고반재는 띠끌이 없는 곳에 지어졌으니 綠樹靈西一路通(녹수영서일로통) 나무가 푸르른 영암 서쪽 한길로 통하네 居常若有承先議(거상약유승선의) 항상 선대 유지를 이어가고 있으니 到此誰非仰高風(도차수비앙고풍) 이곳에 이르러 누가 우러러보지 않으리 披雲步月揩心淨(피운보월개심정) 구름을 헤치고 달밤에 거니니 마음이 맑아지고 依卓看書世慮空(의탁간서세려공) 탁자에 의지하여 글을 보며 세상 생각을 비웠구나 假使忠魂千歲在(가사충혼천세재) 충성스러운 정신이 천년을 이어지듯 應知後裔孝誠同(응지후예효성동) 응당 후손들은 효성과 함께할 것을 알리라 一齋悠久兩顏成(일재유구양안성) 유구한 고반재에는 두 인물 18 이 배향되었네 龍灣二駕勤王事(용만이가근왕사) 용만 19 으로 주상을 호종하는 일에 힘을 보탰고 鞍峴殉身報國誠(안현순신보국성) 안현 20 에서 순국해 정성으로 나라에 보답했네 忠孝余全遺世業(충효여전유세업) 충과 효 모두 지켜 대대의 가업으로 전하고 絃歌相誦振家聲(현가상송진가성) 노래하고 서로 읊으니 집안의 명성이 떨쳐지네 士林縟禮如靈假(사림욕례여영가) 사림들은 신령에게 빌듯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고 追慕孱孫曠感生(추모잔손광감생) 남은 자손들은 추모하니 만감이 크게 일어나네 蘆村窈窕一齋成(노촌요조일재성) 초막마을 고요한 곳에 한 재실 이루었네 士林縟禮如靈假(사림욕례여영가) 사림의 예의범절 신령스럽게 가깝도다 子姓仍看建立誠(자성잉간건입성) 자손들 정성들여 축성을 보게되니 當日勤勞輸節義(당일근노수절의) 당일 부지런히 노력하여 절의를 다하였네 千秋磕落樹風聲(천추개낙수풍성) 천년토록 효행하는 명성 쟁쟁하고 洋洋絃誦時盈耳(양양현송시영이) 양양하게 거문고 타며 시 읊으니 귀가 호강할 뿐이로다 行過誰無敬意生(행과수무경의생) 지나가는 나그네 그 누가 공경의 마음 없으리오 蘆山淑氣洞中明(노산숙기동중명) 여산의 맑은 기운 마을 가운데 밝도다 明義講忠實副名(명의강충실부명) 의리를 밝게하고 충성을 강학하니 실로 명성을 돕구나 三世綱常祠宇屹(삼세강상사우흘) 삼대의 기강이 영원토록 사우에 우뚝하고 一區絃誦俗塵晴(일구현송속진청) 한곳의 거문고 타며 시 읊날래가 속세의 먼지를 거두네 龍灣不朽覲王節(용만불후근왕절) 의주에서 임금에게 보인 절개 길이길이 전해지고 鞍峴況聞敵愾聲(안현황문적개성) 안현에선 하물며 적개심의 명성은 어떠했는가 風雨滿天陰且極(풍우만천음차극) 비바람 하늘에 가득차 음산함 또한 심하니 願言這裏線陽生(원언저리선양생) 이 속에서 한가닥 양기가 생기기를 바라노라 配食三賢一字成(배식삼현일자성) 삼현을 배알하니 하나의 문장 이루었고 鳴世文章遺緒業(명세문장유서업) 세상에 울림을 준 문장 서업을 남기었네
• 중건자 : 김치상(金致商)
서호면 은적산 남쪽 끝자락 깊은 계곡에 자리 잡은 노동마을이 있다. 이곳은 밀양 김씨 근무공(勤務公) 김견(金堅, 1565~1608)이 나고 자란 의리지소(衣履之所)이다. 그의 조부는 김진(金軫)이고, 부친은 판관(判官) 김광후(金光厚)이다. 아들은 인조 2년(1624) 병과(丙 科) 3위로 급제한 무인 김홍발(金弘發)이 있다. 지금은 마을 앞에 고속도로가 가로질러 가고 있지만, 과거에는 장정산을 돌아 들어가 은적산 가마봉과 고지봉 사이 깊숙이 자리 잡은 고즈넉한 마을이었다.
고반재에 대한 언급은 1937년에 편찬된 『朝鮮寰輿勝覽(조선환여승람)』에 처음 등장한다. 12
고반재는 서호면에 노동에 있으며, 노동사 강당이다.
考槃齋 在西湖面盧同卽蘆洞祠講堂(고반재 재서호면노동즉노동사강당)
고반재가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1628년 밀양 김씨 12대손 운계(雲溪) 김홍발(金弘發, 1582~1643)이 지었다는 설이 있고, 밀양 김씨 16대손 매산(海山) 김치상 (金致商, 1738~1797)이 1783년 중건해 후손들의 강학소로 사용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1842년 17대손 용암(龍岩) 김규택(金奎澤), 1936년 22대손 송와(松窩) 김병규(金炳圭)가 중수하여 노동사 강당으로 사용하다가, 23대손 지산(地山) 김재천(金在天)이 1982년에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반재는 ‘어진 사람이 거처하는 집’이란 의미이다. ≪詩經(시경)≫ <衛風(위풍)> 考槃( 고반)에 ‘考槃在阿 碩人之薖 獨寐寤歌 永矢弗過(고반재아 석인지과 독매오가 영시불과)-고반이 언덕에 있으니, 석인의 마음이 넉넉하도다. 홀로 자고 깨어 노래하나, 길이 이즐거움을 벗어나지 않기로 맹세하도다’라고 했다.
고반재 건물은 높은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골기와 팔작지붕 재실 형태로 지어졌다.
양쪽 각 1칸은 온돌방이며,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를 깐 넓은 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건물은 큼직한 자연석 초석을 둔 다음 원형 기둥을 세웠는데, 초석이 건물의 규모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큰 초석을 사용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네 귀퉁이에는 서까래를 떠받치는 활주가 세워졌는데 사각의 커다란 주초석이 받치고 있다.
고반재에 소장된 밀양 김씨의 고문서는 모두 41건으로 과거 시험 합격 증서인 홍패(紅牌) 가 3건이 있고, 서호면 청용리 노동마을에 정착한 김홍발의 후손들이 관직을 임명받은 교첩 (敎牒)과 교지(敎旨)가 27건이 있다. 그중 임진왜란 시기에 발급받은 교첩 1건이 남아있다.
고반재와 관련해서 <考槃齋事蹟記(고반재사적기)>, <考槃齋重修記(고반재중수기)>, < 野隱金公實蹟(야은김공실적)>, 김우상(金友相)의 <考槃九曲詩侖和(고반구곡시륜화)> 를 포함한 다수의 차운시가 전한다. 차운시 작자는 월성 박연조(朴淵祚), 영가 김영한(金 甯漢), 능성 구의서(具義書), 정인욱(鄭寅昱), 평택 임철주(林哲周), 천안 김종국(金鍾國), 원주 이진백(李鎭白), 김재옥(金在玉), 허주(虛舟) 오형선(吳炯善), 은진 송재직 등이다.
1936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병규(金炳圭)의 시는 다음과 같다. 14
此齋會築此山中(차재회축차산중) 이 재가 마침 이 산에 지어졌으니
1937년에 편찬된 『朝鮮寰輿勝覽(조선환여승람)』에는 정인욱(鄭寅昱)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16
고반재는 강명재(講明齋)라고도 불렸는데 이와 관련하여 <講明齋記(강명재기)>, <講 明齋事實記(강명재사실기),> 그리고 강명(講明)을 운으로 하는 제시가 있고, 10편의 근차강명재운(謹次講明齋韻) 시가 있다. 이 시들은 1970년 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밀양김씨 후손 김재권(金在權)이 쓴 <講明謹題(강명근제)>는 다음과 같다. 17
先揭考槃潑講明(선게고반발강명) 먼저 고반 이름 내걸어 활발히 이치를 강하고
장흥인 위계도(魏啓道, 1926~1990)의 차운시가 있다. 21 그는 당시에 위당(爲堂) 정인보(鄭 寅普), 현산(玄山) 이현규(李玄圭)와 함께 한말 3대 경학(經學) 문장가로 추앙받았다.
月出臨湖氣淑明(월출임호기숙명) 월출산 서호에까지 이르러 맑고도 밝도다
고반재에는 전주인 이진백(李鎮白)의 차운시가 전한다. 22
1970년대 활발히 활동했던 해주인 오형선(吳炯善)의 차운시가 있다. 23
蘆東山水照人明(노동산수조인명) 초막집 동쪽의 산수가 눈길을 끄는 것은 분명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