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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권당(思勸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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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권당(思勸堂) • 창건시기 : 1928년 • 위치 : 군서면 모정1길 28-1 구림마을에서 북쪽으로 5리 거리에 있는 모정(茅亭)마을은 월출산 주지봉에서 흘러내린 산자락이 구림마을을 지나 낮은 구릉을 형성하며 모정으로 이어져, 양장리에서 끝나고 영산강이 펼쳐진다. 평지보다 솟아오른 언덕에 조성된 모정마을에는 평산신씨와 광산 김씨가 주로 모여 산다. 400여년 전에 평산신씨 신인(申忍)이 경북 예천에서 모정으로 이주하여 사는 중에 광산김씨 김익충(金益忠, 1580~1660)이 1608년에 경기도 화성에서 영암 모정마을로 내려와 전주유씨 딸과 결혼하여 그 후손들이 번창하였다. 사권당의 건축 형태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골기와 팔작지붕이다. 기단부는 잘 다듬어진 화강석 댓돌이 삼벌대로 쌓여 있으나 맨 아랫대는 흙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계단은 한통으로 다듬어진 돌을 3단으로 쌓았으며, 전면 각 칸마다 길다란 디딤들을 잘 다듬어 놓았다. 소홀하기 쉬운 후면 2칸 쪽마루 앞에도 커다란 디딤돌을 두어 건물의 품격을 높였다. 이승욱의 <思勸堂記(사권당기)>는 다음과 같다. 있다. 이곳이 사권당(思勸堂)이다. 광산 김씨(光山金氏) 가문의 세 효자는 도의가 땅에 떨어진 지금 세상에서 보기 드문 사람들이다. 이 당에 오르는 사람은 반드시 이를 생각하여 서로 권면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봄에 비가 오고 이슬이 맺혀 축축해지면 [군자는] 슬픈 마음이 생겨 이를 생각하여 도탑고 화목한 효도와 우애의 행실로 서로 권면하니, 세 효자를 보고 그들처럼 되길 생각해야 한다. 선조를 추모하고 의리를 따르는 일로 서로 권면하니, 세 효자를 보고 그들처럼 생각하는 것은 치밀해야 합니다…생각이 치밀하면 성인이 됩니다”라고 했으니, 생각하는 것은 성인이 되는 도인 것이다. 생각하여 얻음이 있으면 서로 이끌어 주고 권면한다. 부모를 섬기는 도리로 권면하고,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는 핵심으로 권면한다. 세 사람에서 백 사람으로 나아가고 백 사람에서 천 사람, 만 사람으로 나아가서 끝임없이 독실하게 행하고 계속해서 나아가면, 어찌 세상의 후대에게 크게 빛을 더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수(大洙), 길수(吉洙), 용채(容 彩), 각수(珏洙), 영탁(永卓), 영라(永羅)는 더욱 면려해야 할 것이다. 由世顯門而入中有八牎向陽而闢者此思勸堂也光山金氏一門三孝叔世罕覩登斯堂 者必有所思而相勸者矣春雨露旣濡悽愴而思之相勸以孝友惇睦之行思齊三孝焉秋 霜露旣降怵惕而思之相勸以追先趾義之事思齊三孝焉嗚呼思勸之義大矣哉洪範曰 思曰睿睿作聖思者其作聖之道乎思而有得焉則相率而勸勸之以事親之方勸之以修 齊之要自三而之百自百而之千之萬慥慥不已蒸蒸而進豈不大有光於天下後世也哉 大洙吉洙容彩珏洙永卓永羅益加勉旃 峕著雍執徐龍戰日也通政大夫日省錄編輯官兼湖南巡按御使菊軒李承旭記 사이상권자의춘우로기유처창이사지상권이효우돈목지행사제삼효언추상로기강출척이사 지상권이추선지의지사사제삼효언오호사권지의대의재홍범왈사왈예예작성사자기작성지 도호사이유득언칙상솔이권권지이사친지방권지이수제지요자삼이지백자백이지천지만조 조불이증증이진개부대유광어천하후세야재대수길수용채각수영탁영라익가면전 바로 광산 김씨 집안에 그러한 일이 있을 줄 알고 옲은 것 같다, 김씨는 고려때에 큰 공로로 연이어서 8세(世)가 평장사(平章事)를 지냈고, 조선조에는 심성과 이기에 관한 도학(道學)으로 황강(黃岡) 김계휘(金繼輝, 1526∼1582), 사계(沙 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등 3 세(世)가 연이어서 빛냈고, 그 후로는 효행으로 또 3세 동안 사림들의 추중을 받았으니 같은 종류의 것을 갈래를 따라 모으고 떼를 가져 나누며, 마음과 뜻이 맞는 사람끼리 서로 구하고 쫓는 것 같다. 효도한 행적을 살펴보면, 첫째, 예성(禮成)이다. 호(號)는 송암(松巖)이며, 9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죽을 먹으면서 여막(廬幕)에서 지냈다. 아직 삼년상을 마치지 못하였는데 조부모의 죽음을 맞으니, 상복을 입고 시묘살이한 지 8년이나 되었다, 그럴 때에 새들이 모여들고 호랑이가 지켜주는 기이한 일들이 있었으니, 이때가 영조 때이다 둘째, 기양(箕陽)이며, 호(號)는 백헌(栢軒)이다. 아버지가 이질에 걸려 목숨이 위험할 때에 자기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입에 흘려 넣어 7년 동안이나 더 살 수 있게 하여 드렸으며,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아침저녁으로 묘소를 찾아가서 살아계실 때처럼 안부 여쭈기를 열심히 하니, 이때는 정조 임금 때이다. 셋째, 재민(在敏)이며, 호(號)는 죽곡(竹谷)이다. 계모를 잘 섬겨서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렸으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피눈물로 지냈으며, 조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묘 곁에서 시묘살이하니, 그 기간이 9년이나 되었다. 그 일은 어려운 것 같지만 할 수가 있는 일이고, 효행으로 대를 이어 이름을 드날린 것은 그 일이 쉬우면서도 해내기가 어려운 것인데도 이처럼 3세 동안을 효도로써 문중을 현달 시켰으니,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어진 스승과 벗을 얻어 학문을 강구하고 연마한다면, 훈업이나 도학을 이루어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훈업과 도학이 그 문중에서 다시 나오지 않으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더욱더 존경스럽다. 있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효자가 끊이지 않으니, 그 자손은 두고두고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事 入本朝以道學顯 黃岡 沙溪 愼齋 年三世爲淵源之祖 挽近 以孝行 又連三世爲士 林推重 方以類聚 物以群分 雲從龍 風從虎 嗚呼 可敬也己金氏之世顯也 三世孝行 可得聞欺 一日 禮聖 號 松巖 九世丁憂 粥居廬 服未 而遭王父母喪 前後廬墓爲八年 有鳥集 虎衛之異 此則英廟朝也 二日 箕陽 號 栢軒 父病痢將危 指注血 以延七年之壽親歿 朝夕定省于墓所 無異平 昔 此則正墓朝也 三日 在敏 號 竹谷 事繼母以悅父志 及丁憂 泣血三年 王父母喪亦居廬 前後凡九年 三世事行竝載三綱錄 嗚呼 勳業道學顯世達而 在上之事也 以孝行顯也 其事雖難而易 以此三世之孝若達 而 在上得賢師友 講磨德義則 其在勳業道學 亦河難之有 今此金氏門中 括忟背之 毛 立世顯之門 安知不勳業道學 復出於此門耶 尤可敬販 詩云 赫赫師尹 民具爾膽 又云 孝子不遺 永錫祚胤 吾將過金氏之門而 誦之以卜來許 歲箸雍執徐 菊秋不死臣 完山 李承旭 記. 입본조이도학현 황강 사계 신재 년삼세위연원지조 만근 이효행 우연삼세위사림추중 방이유취 물이군분 운종용 풍종호 오호 가경야기김씨지세현야 삼세효행 가득문기 일일 예성 호 송암 구세정우 죽거여 복미 이조왕부모상 전후여묘위팔년 유조집호위지이 차칙영묘조야 이일 기양 호 백헌 부병리장위 지주혈 이연칠년지수친몰 조석정성우묘소 무이평석 차칙정묘조야 삼일 재민 호 죽곡 사계모이열부지 급정우 읍혈삼년 왕부모상역거여 전후범구년 삼세사행병재삼강록 오호 훈업도학현세달이 재상지사야 이효행현야 기사수난이역 이차삼세지효약달이 재상득현사우 강마덕의칙 기재훈업도학 역하난지유 금차김씨문중 괄민배지모 입세현지문 안지불훈업도학 복출어차문야 우가경판 시운 혁혁사윤 민구이담 우운 효자불유 영석조윤 오장과김씨지문이 송지이복래허 세저옹집서 국추불사신 완산 이승욱 기) 夫日省錄編輯官兼湖南巡按御使菊軒)이었다. 그가 작성한 사권당기와 세현문기가 1928 작성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51 우리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여러 대 동안 끊이지 않고 이름난 사람과 높은 관직이 있어 곳곳에 뛰어난 명망이 있다. 사람들이 나라에서 이름난 집안이라 하면 반드시 먼저 손가락으로 꼽았다. 그중 원정공(院正公) 일파가 남쪽 영암(靈巖)에 이르러 세거하였다. 중엽(中葉) 이래로 비록 쇄하여 예전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송암공(松巖公), 백헌공(栢軒公), 죽곡공(竹谷公) 여러 공이 있어 효우로 이어져 내려와 호남의 사족이 되었다. 시대가 바뀌어 김윤현(金潤鉉), 김영필(金永弼) 두 분에 이르러서는 덕이 높은 사람이라 칭송받았다. 일찍이 평장동(平章洞) 취사당 (聚斯堂)의 뜻을 본받아 한 당을 만들고자 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김윤현의 손자 성촌(醒村)이라고 말한 이가 있었는데 그의 호이다. 그 또한 의행이 있었다. 행실이 독실하였다. 삼세를 꼭 알리고자 하여 분연(奮然)히 공사를 하였다. 재실(齋室)이 이윽고 완성되자 그 문미(門楣)를 사권당(思勸堂)이라 하였다. 생각하기에는 옛날에 집을 짓는 것은 한몸의 안위만 도모하기 위함이 아니고 위로는 선조를 계승하고 아래로는 자손에게 남기기 위함이었다. 하네. 읽고 밭을 갈았네 胸構一堂仲素志(흉구일당중소지) 앞에 건물 하나를 지으니 평소의 뜻에 버금가고 俗成宗約貯丹書(속성종약저단서) 종친의 규약은 풍속이 되어 단서 54 로 쌓였네 累仁積德光恩厚(누인적덕광은후) 인덕을 쌓고 쌓아 도타운 은택이 빛나니 此乃雲仍永不虛(차내운잉영불허) 이것이 곧 후손들 영원히 이어지게 하는 것이리 三孝舊攸居(삼효구유거) 세 명의 효자가 옛날에 산 곳이라네 風樹靜無止(풍수정무지)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그침이 없고 56 整冠追世業(정관추세업) 의관을 바로 하고 대대로 전해온 가업을 따르고 掃欄講先書(소란강선서) 난간을 쓸고 선대의 가르침 담긴 서책을 익히네 勤思相爲動(근사상위동) 부지런히 생각하고 서로 동기가 될 것이며 惕乾莫過虛(척건막과허) 종일 조심하고 힘써 58 허세 너무 부리지 않았으면 衣冠繼世文兼武(의관계세문겸무) 의관한 인재들 대대로 문무를 겸비하네 景仰一門三孝子(경앙일문삼효자) 한 가문의 세 효자를 우러러 사모하네 忠孝傳家子又孫(충효전가자우손) 충효가 집안의 아들에서 또 손자로 전하네 西湖隱迹讀生涯(서호은적독생애) 서호에 자취를 감추고 평생 책을 읽었네 開戶遙聽龍水聲(개호요청용수성) 문을 열고 멀리 용수의 소리를 듣네 捲簾長看鶴山色(권염장간학산색) 발을 걷어 올리고 학산의 풍광을 오래 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