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의 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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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의 누정

사권당(思勸堂)

설명요약
광산김씨 효도와 우애가 서린 곳

본문

 

사권당(思勸堂)


• 설립자 : 김용채(金容彩)

• 창건시기 : 1928년

• 위치 : 군서면 모정1길 28-1


구림마을에서 북쪽으로 5리 거리에 있는 모정(茅亭)마을은 월출산 주지봉에서 흘러내린 산자락이 구림마을을 지나 낮은 구릉을 형성하며 모정으로 이어져, 양장리에서 끝나고 영산강이 펼쳐진다. 평지보다 솟아오른 언덕에 조성된 모정마을에는 평산신씨와 광산 김씨가 주로 모여 산다. 400여년 전에 평산신씨 신인(申忍)이 경북 예천에서 모정으로 이주하여 사는 중에 광산김씨 김익충(金益忠, 1580~1660)이 1608년에 경기도 화성에서 영암 모정마을로 내려와 전주유씨 딸과 결혼하여 그 후손들이 번창하였다.


 마을 중앙에는 광산 김씨 문각 사권당(思勸堂)과 평산신씨(平山申氏) 종회소 돈의재(敦義 齋)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 사권당(思勸堂)은 광산 김씨 원정공파의 후예인 김용채(金容彩) 가 그의 부친인 성촌(醒村) 김현수(金顯洙)의 뜻을 받들어 제족과 힘을 합해 건립한 것으로 건립연대는 1928년이다.
 사권당 입구에는 광산김씨 삼세효자(三世孝子)를 기리는 솟을대문 형태의 세현문(世顯門) 이 있다. 여기에는 광산김씨 문중의 32세 송암(松巖) 김예성(金禮聖), 34세 김기양(金箕陽), 35세 김재민(金在敏)의 효행과 우애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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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권당의 건축 형태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골기와 팔작지붕이다. 기단부는 잘 다듬어진 화강석 댓돌이 삼벌대로 쌓여 있으나 맨 아랫대는 흙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계단은 한통으로 다듬어진 돌을 3단으로 쌓았으며, 전면 각 칸마다 길다란 디딤들을 잘 다듬어 놓았다. 소홀하기 쉬운 후면 2칸 쪽마루 앞에도 커다란 디딤돌을 두어 건물의 품격을 높였다.
가구 구조는 흔치 않은 2고주 7량 구조이다. 건물을 빙둘러 사방 툇마루가 놓여있으며, 좌우측 양쪽 툇마루는 누마루 형태로 단차를 두어 한 단 높였으며, 풍혈을 뚫은 궁판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중앙 2칸은 대청마루이고, 양 측면 2칸은 온돌이 놓인 재실이다.
재실 앞문에는 머름을 두었고, 뒷벽에는 벽장을 설치하였다. 그 때문에 후면 툇마루는 상대적으로 좁아져 겨우 한 사람이 빠져나갈 만한 공간만 남았다. 이처럼 건물 사방에 툇마루가 연결된 경우는 사권당이 유일한 예이다. 건물에 있는 모든 세살문은 비틀어 위로걸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문을 들어 올리면 집 전체의 내부가 대청형 정자와 같이 된다. 


 사권당 건물 내부에는 <思勸堂上梁文(사권당상량문)>을 비롯 <思勸堂記(사권당기)>, <思 勸堂元韻(사권당원운)>, 그리고 운차(韻次) 시 편액이 걸려 있다.
 이승욱(李承旭)이 남긴 <思勸堂記(사권당기)>는 고갑자(古甲子)로 저옹집서(著雍執徐) 즉 무진(戊辰)년 용전 묘유(龍戰 卯酉)일에 작성된 것으로 1928년에 해당한다. 사권당의 솟을대문인 세현문에 있는 <世顯門記(세현문기)> 또한 이승욱이 기록하였는데 그 시기가 1928년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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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욱의 <思勸堂記(사권당기)>는 다음과 같다.


세현문(世顯門)에서 안으로 들어오면 여덟 개의 창문이 해를 향해 열려있는 곳이

있다. 이곳이 사권당(思勸堂)이다. 광산 김씨(光山金氏) 가문의 세 효자는 도의가

땅에 떨어진 지금 세상에서 보기 드문 사람들이다. 이 당에 오르는 사람은 반드시

이를 생각하여 서로 권면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봄에 비가 오고 이슬이 맺혀

축축해지면 [군자는] 슬픈 마음이 생겨 이를 생각하여 도탑고 화목한 효도와

우애의 행실로 서로 권면하니, 세 효자를 보고 그들처럼 되길 생각해야 한다.
가을에 서리가 내리고 이슬이 맺히면 [군자는] 두려운 마음이 생겨 이를 생각하여

선조를 추모하고 의리를 따르는 일로 서로 권면하니, 세 효자를 보고 그들처럼
되길 생각해야 한다.


 아아! 이를 생각하고 권면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상서(尙書) 홍범(洪範)은“

생각하는 것은 치밀해야 합니다…생각이 치밀하면 성인이 됩니다”라고 했으니,

생각하는 것은 성인이 되는 도인 것이다. 생각하여 얻음이 있으면 서로 이끌어

주고 권면한다. 부모를 섬기는 도리로 권면하고,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는

핵심으로 권면한다. 세 사람에서 백 사람으로 나아가고 백 사람에서 천 사람, 만

사람으로 나아가서 끝임없이 독실하게 행하고 계속해서 나아가면, 어찌 세상의

후대에게 크게 빛을 더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수(大洙), 길수(吉洙), 용채(容

彩), 각수(珏洙), 영탁(永卓), 영라(永羅)는 더욱 면려해야 할 것이다.
때는 무진년(戊辰年, 1928년) 묘유일(卯酉日).
통정대부 일성록편집관겸 호남순안어사 국헌(菊軒) 이승욱(李承旭)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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由世顯門而入中有八牎向陽而闢者此思勸堂也光山金氏一門三孝叔世罕覩登斯堂

者必有所思而相勸者矣春雨露旣濡悽愴而思之相勸以孝友惇睦之行思齊三孝焉秋

霜露旣降怵惕而思之相勸以追先趾義之事思齊三孝焉嗚呼思勸之義大矣哉洪範曰

思曰睿睿作聖思者其作聖之道乎思而有得焉則相率而勸勸之以事親之方勸之以修

齊之要自三而之百自百而之千之萬慥慥不已蒸蒸而進豈不大有光於天下後世也哉

大洙吉洙容彩珏洙永卓永羅益加勉旃

峕著雍執徐龍戰日也通政大夫日省錄編輯官兼湖南巡按御使菊軒李承旭記


(유세현문이입중유팔창향양이벽자차사권당야광산김씨일문삼효숙세한도등사당자필유소

사이상권자의춘우로기유처창이사지상권이효우돈목지행사제삼효언추상로기강출척이사

지상권이추선지의지사사제삼효언오호사권지의대의재홍범왈사왈예예작성사자기작성지

도호사이유득언칙상솔이권권지이사친지방권지이수제지요자삼이지백자백이지천지만조

조불이증증이진개부대유광어천하후세야재대수길수용채각수영탁영라익가면전
시저옹집서용전일야통정대부일성록편집관겸호남순안어사국헌이승욱기)


 여기서 사권당은 세현문을 지나면 8개의 창문이 해를 향해 열려있다고 하였으니, 세현문이 만들어진 1928년 9월 이전에 이미 사권당이 완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당기(堂記)를 기술한 이승욱은 <世顯門記(세현문기)>에 삼세(三世) 효자에 관한 자세한 기록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시경에 이르기를 「주(周)나라 선비는 대(代)를 이어 크게 빛나도다」 하니,

바로 광산 김씨 집안에 그러한 일이 있을 줄 알고 옲은 것 같다, 김씨는 고려때에

큰 공로로 연이어서 8세(世)가 평장사(平章事)를 지냈고, 조선조에는 심성과

이기에 관한 도학(道學)으로 황강(黃岡) 김계휘(金繼輝, 1526∼1582), 사계(沙

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등 3

세(世)가 연이어서 빛냈고, 그 후로는 효행으로 또 3세 동안 사림들의 추중을

받았으니 같은 종류의 것을 갈래를 따라 모으고 떼를 가져 나누며, 마음과 뜻이

맞는 사람끼리 서로 구하고 쫓는 것 같다.
 오호라! 김씨 문중의 대를 이어 현달(顯達)함은 존경할 만한 일이다. 3세동안

효도한 행적을 살펴보면,

 첫째, 예성(禮成)이다. 호(號)는 송암(松巖)이며, 9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죽을

먹으면서 여막(廬幕)에서 지냈다. 아직 삼년상을 마치지 못하였는데 조부모의

죽음을 맞으니, 상복을 입고 시묘살이한 지 8년이나 되었다, 그럴 때에 새들이

모여들고 호랑이가 지켜주는 기이한 일들이 있었으니, 이때가 영조 때이다

 둘째, 기양(箕陽)이며, 호(號)는 백헌(栢軒)이다. 아버지가 이질에 걸려 목숨이

위험할 때에 자기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입에 흘려 넣어 7년 동안이나 더 살 수

있게 하여 드렸으며,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아침저녁으로 묘소를 찾아가서 살아계실

때처럼 안부 여쭈기를 열심히 하니, 이때는 정조 임금 때이다.

 셋째, 재민(在敏)이며, 호(號)는 죽곡(竹谷)이다. 계모를 잘 섬겨서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렸으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피눈물로 지냈으며,

조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묘 곁에서 시묘살이하니, 그 기간이 9년이나 되었다.
3세 동안 사정(事情)은 삼강록(三綱錄)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오호라! 큰 공로와 도학으로 온 세상에 이름을 드날린 것은 윗자리에 있는 일이되

그 일은 어려운 것 같지만 할 수가 있는 일이고, 효행으로 대를 이어 이름을

드날린 것은 그 일이 쉬우면서도 해내기가 어려운 것인데도 이처럼 3세 동안을

효도로써 문중을 현달 시켰으니,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어진 스승과 벗을 얻어

학문을 강구하고 연마한다면, 훈업이나 도학을 이루어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제 김씨 문중에서는 선대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세현문을 세우나니, 어찌

훈업과 도학이 그 문중에서 다시 나오지 않으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더욱더 존경스럽다.
시경에 이르기를, ‘훌륭한 스승이시여! 빛나고 아름다움에 모든 백성이 바라보고

있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효자가 끊이지 않으니, 그 자손은 두고두고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나는 김씨 문중을 찾아뵙고, 꼭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란 확신을 가졌다. 무진년 9월 완산 이씨 승욱(承旭)이 짓다.


詩云 凡周之士丕顯亦世 正爲光山金氏準備語也 金氏在麗朝以勳業 年八世爲平章

事 入本朝以道學顯 黃岡 沙溪 愼齋 年三世爲淵源之祖 挽近 以孝行 又連三世爲士

林推重 方以類聚 物以群分 雲從龍 風從虎 嗚呼 可敬也己金氏之世顯也 三世孝行

可得聞欺

一日 禮聖 號 松巖 九世丁憂 粥居廬 服未 而遭王父母喪 前後廬墓爲八年 有鳥集

虎衛之異 此則英廟朝也

二日 箕陽 號 栢軒 父病痢將危 指注血 以延七年之壽親歿 朝夕定省于墓所 無異平

昔 此則正墓朝也

三日 在敏 號 竹谷 事繼母以悅父志 及丁憂 泣血三年 王父母喪亦居廬 前後凡九年

三世事行竝載三綱錄

嗚呼 勳業道學顯世達而 在上之事也 以孝行顯也 其事雖難而易 以此三世之孝若達

而 在上得賢師友 講磨德義則 其在勳業道學 亦河難之有 今此金氏門中 括忟背之

毛 立世顯之門 安知不勳業道學 復出於此門耶 尤可敬販 詩云

赫赫師尹 民具爾膽 又云 孝子不遺 永錫祚胤

吾將過金氏之門而 誦之以卜來許 歲箸雍執徐 菊秋不死臣

完山 李承旭 記.
(시운 범주지사비현역세 정위광산김씨준비어야 김씨재려조이훈업 년팔세위평장사

입본조이도학현 황강 사계 신재 년삼세위연원지조 만근 이효행 우연삼세위사림추중

방이유취 물이군분 운종용 풍종호 오호 가경야기김씨지세현야 삼세효행 가득문기

일일 예성 호 송암 구세정우 죽거여 복미 이조왕부모상 전후여묘위팔년 유조집호위지이

차칙영묘조야

이일 기양 호 백헌 부병리장위 지주혈 이연칠년지수친몰 조석정성우묘소 무이평석

차칙정묘조야

삼일 재민 호 죽곡 사계모이열부지 급정우 읍혈삼년 왕부모상역거여 전후범구년

삼세사행병재삼강록

오호 훈업도학현세달이 재상지사야 이효행현야 기사수난이역 이차삼세지효약달이

재상득현사우 강마덕의칙 기재훈업도학 역하난지유 금차김씨문중 괄민배지모 입세현지문

안지불훈업도학 복출어차문야 우가경판 시운

혁혁사윤 민구이담 우운 효자불유 영석조윤

오장과김씨지문이 송지이복래허 세저옹집서 국추불사신

완산 이승욱 기)


완산인(完山人) 이승욱(李承旭)은 통정대부 일성록편집관 겸호남순안어사국헌(通政大

夫日省錄編輯官兼湖南巡按御使菊軒)이었다. 그가 작성한 사권당기와 세현문기가 1928
년에 작성된 반면에, 광산 김씨 후손 김영기(金泳冀)의 <思勸堂記(사권당기)>는 1934년에

작성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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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여러 대 동안 끊이지 않고 이름난 사람과 높은 관직이

있어 곳곳에 뛰어난 명망이 있다. 사람들이 나라에서 이름난 집안이라 하면

반드시 먼저 손가락으로 꼽았다. 그중 원정공(院正公) 일파가 남쪽 영암(靈巖)에

이르러 세거하였다. 중엽(中葉) 이래로 비록 쇄하여 예전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송암공(松巖公), 백헌공(栢軒公), 죽곡공(竹谷公) 여러 공이 있어 효우로 이어져

내려와 호남의 사족이 되었다. 시대가 바뀌어 김윤현(金潤鉉), 김영필(金永弼) 두

분에 이르러서는 덕이 높은 사람이라 칭송받았다. 일찍이 평장동(平章洞) 취사당

(聚斯堂)의 뜻을 본받아 한 당을 만들고자 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김윤현의

손자 성촌(醒村)이라고 말한 이가 있었는데 그의 호이다. 그 또한 의행이 있었다.
김대수(金大洙)와 더불어 의논하여 그 뜻을 이으려 하였으나 또 이루지 못하였다.
지금 성촌의 큰아들인 김용채(金容彩)는 성품이 효에 지극하고 학문에 힘쓰며

행실이 독실하였다. 삼세를 꼭 알리고자 하여 분연(奮然)히 공사를 하였다.
다른 가문과 더불어 협동하여 마음을 다해 그 재무를 주관하고 일을 감독하여

재실(齋室)이 이윽고 완성되자 그 문미(門楣)를 사권당(思勸堂)이라 하였다.
아마도 사모권계(思慕勸戒)의 뜻이다. 이어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옛날에 집을 짓는 것은 한몸의 안위만 도모하기 위함이 아니고

위로는 선조를 계승하고 아래로는 자손에게 남기기 위함이었다.
사간(斯干) 시에서 말하였다.
선조를 계승하여 담장이 백도나 되는 집을 지었네.
이것이 어찌 선조를 사모하는 뜻이 아니겠는가.
사정기(思亭記)에서 말하였다.
자손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것을 보면 더욱 힘쓰게 하고 나쁜 것을 보면 경계하게

하네.
이것이 어찌 자손을 권계하는 뜻이 아니겠는가.

여러 종친 가운데 이 재실은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심은 것을
보고 공경의 마음을 일으키며 지팡이와 짚신이 머문 곳을
보고 추모하는 정성을 나타낸다. 음식을 읍하고 사양하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사이에 이르러 효제의 마음이 저절로
감동하고 분발할 것이다. 부모는 명령하고 형제는 힘써
대대로 자손이 영원히 쇠퇴하지 않는다. 곧 이 재실을 사권(思
勸)이라 명명하며 깊은 고인의 뜻을 알 것이다. 삼가 바라건대
여러 종친은 재실의 이름을 돌아보고 서로 도움을 더하리라.
내 나이가 지금 여든 둘이고 재각에 필연한 지 오래되었다.
같은 조상의 후손이니 나이가 많아도 두서너 줄을 위해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시로써 기를 잇는다.
옛 언덕에 새로운 재실을 세웠으니
운영함은 한 몸의 안위가 아니라네.
오래된 가래나무와 뽕나무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
봄이 온 꽃나무가 권면의 뜻이 남네.
집집은 먹기 위해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대대로 유업으로 시경과 시경을 읽네.
후대의 구름에 응당 경사가 이어지고
뿌리가 곧으니 가지가 많다는 게 어찌 빈말일까.
갑술년 5월 2일 방계 후손 영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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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光山之金 奕世蟬聯 名公巨卿 在在相望 人之數國中名族者
指必先僂 其中院正公一派 南至靈巖 仍世居焉 中葉以來 雖衰
替不及古然 有松巖·栢軒·竹谷諸公相繼 以孝友聞亦爲南中士
族 逮至潤鉉·永弼兩氏 以碩德稱 嘗欲築一堂 以效平章洞聚斯
堂之義 而有志未就 潤鉉氏有孫曰醒村其號也 亦有懿行 與大
洙氏 同議有肯堂之意而又未就 今醒村之胤子容彩 性至孝力
學篤行 數三世未遑之事 奮然起工 與諸族協同心力 尸其財董
其役 堂旣成顔 其楣曰思勸堂 蓋思慕勸戒之義也 因徵記於余
余惟古之爲宮室者 非惟圖一身之安 欲以上承祖先 下遺子孫也
斯干詩曰 似續妣祖築室百堵 斯豈非思慕祖先乎 思亭記曰 使
子孫視其美以爲勸 視其惡以爲戒 斯豈非勸戒子孫乎 僉宗之登
斯堂者 見桑梓之植而起恭敬之心 瞻杖屨之所而寓追慕之誠 至
於起居飮食揖讓進退之間 孝悌之心 油然感發 父詔兄勖 世世
子孫 永勿替引 則斯堂之以思勸命名 深得古人之意 惟願僉宗
顧堂名而益加勉旃焉 余年今八十有二 筆硯閣之久矣 其在同祖
之誼 不可以昏耄辭 綴數行爲之記 系以詩 堂宇新成因古墟 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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營非爲一身居 梓桑歲久敬心在 花樹春回歡意餘 食力家家勤稼
穡 業儒世世讀詩書 來雲應有綿綿慶 根固枝繁語豈虛
歲甲戌五月二日 傍裔泳冀書
(오광산지김 혁세선련 명공거경 재재상망 인지수국중명족자
지필선루 기중원정공일파 남지영암 잉세거언 중엽이래
수쇠체불급고연 유송암·백헌·죽곡제공상계 이효우문역위남중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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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지윤현·영필양씨 이석덕칭 상욕축일당 이효평장동취사당지의
이유지미취 윤현씨유손왈성촌기호야 역유의행 여대수씨
동의유긍당지의이우미취 금성촌지윤자용채 성지효력학독행
수삼세미황지사 분연기공 여제족협동심력 시기재동기역
당기성안 기미왈사권당 개사모권계지의야 인징기어여
여유고지위궁실자 비유도일신지안 욕이상승조선 하유자손야
사간시왈 사속비조축실백도 사기비사모조선호 사정기왈
사자손시기미이위권 시기악이위계 사기비권계자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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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종지등사당자 견상재지식이기공경지심 첨장구지소이우추모지성
지어기거음식읍양진퇴지간 효제지심 유연감발 부조형욱
세세자손 영물체인 칙사당지이사권명명 심득고인지의 유원첨종
고당명이익가면전언 여년금팔십유이 필연각지구의 기재동조지의
불가이혼모사 철수행위지기 계이시 당우신성인고허 경영비위일신거 재상세구경심재 화수춘회환의여 식력가가근가색 업유세세독시서
래운응유면면경 근고지번어기허
세갑술오월이일 방예영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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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思勸堂記(사권당기)>는 1934년 5월 2일에 작성된 것이다.
사권당에는 두 개의 상량문이 남아있는데, 그 연대가 각각 1930 년과 1943년이다. 첫 번째 상량문은 홍순형(洪淳馨, 1858~?) 이 작성한 것으로 ‘盤古五化元始十一萬八千六百八十九年庚午( 반고오화원시십일만팔천육백팔십구년경오)’라고 하였으니 그서기연대는 1930년이다. 52 또 다른 상량문은 광산김씨 후손 김달수가 1943년에 작성한 것이 있다.


사권당을 지은 김용채의 <思勸堂原韻(사권당원운)>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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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祖會年卜此爐(오조회년복차로) 우리 선조 모이던 해 이 화로 같은 곳에 터 잡았고
至今留候輩出居(지금유후배출거) 지금까지 유후 53 같은 큰인물들이 나와서 살았네
江湖隱離漁擔伴(강호은이어담반) 강호에 숨어 고기 잡고 땔나무 지는 일을 벗 삼고
家世舊規耕讀餘(가세구규경독여) 집안 대대로 법도 지키며 책

읽고 밭을 갈았네

胸構一堂仲素志(흉구일당중소지) 앞에 건물 하나를 지으니 평소의 뜻에 버금가고

俗成宗約貯丹書(속성종약저단서) 종친의 규약은 풍속이 되어 단서 54 로 쌓였네

累仁積德光恩厚(누인적덕광은후) 인덕을 쌓고 쌓아 도타운 은택이 빛나니

此乃雲仍永不虛(차내운잉영불허) 이것이 곧 후손들 영원히 이어지게 하는 것이리


1934년 가을에 장흥의 고광선이 쓴 차운시는 다음과 같다. 55


光前庇後道(광전비후도) 앞의 빛이 뒷사람의 길을 지켜주니

三孝舊攸居(삼효구유거) 세 명의 효자가 옛날에 산 곳이라네

風樹靜無止(풍수정무지)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그침이 없고 56
陔蘭芳潔餘(해란방결여) 언덕의 난초 57 는 지극히 향기롭고 고결하네

整冠追世業(정관추세업) 의관을 바로 하고 대대로 전해온 가업을 따르고

掃欄講先書(소란강선서) 난간을 쓸고 선대의 가르침 담긴 서책을 익히네

勤思相爲動(근사상위동) 부지런히 생각하고 서로 동기가 될 것이며

惕乾莫過虛(척건막과허) 종일 조심하고 힘써 58 허세 너무 부리지 않았으면


김용채의 칠언율시를 고광선이 오언율시로 받고 있다.


사권당 기둥에는 7개의 주련이 걸려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보니 다음과 같다.


南野藏名耕事業(남야장명경사업) 남쪽 들에 이름을 감추고 사업을 일구었네

衣冠繼世文兼武(의관계세문겸무) 의관한 인재들 대대로 문무를 겸비하네

景仰一門三孝子(경앙일문삼효자) 한 가문의 세 효자를 우러러 사모하네

忠孝傳家子又孫(충효전가자우손) 충효가 집안의 아들에서 또 손자로 전하네

西湖隱迹讀生涯(서호은적독생애) 서호에 자취를 감추고 평생 책을 읽었네

開戶遙聽龍水聲(개호요청용수성) 문을 열고 멀리 용수의 소리를 듣네

捲簾長看鶴山色(권염장간학산색) 발을 걷어 올리고 학산의 풍광을 오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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