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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군서면
임구령 사위된 고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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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삼당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고죽이 구림에 뿌리 내린 이야기 할까요. 어릴 적 고죽은 나주에서 수학했어. 병조참의를 지낸 아버지가 전라도 수사로 근무할 당시 나주 인근 선비들이 교유하던 장춘정에서 공부 했는디, 이때가 대략 열 살 쯤 이어. 그랑께 아버지가 정해준 곳에서 유학한 셈이지.
 그런데 여그를 드나들던 임억령의 눈에 들었어. 아무래도 똘똘한 서울 아이가 맘에 들었던 모양이어. 당시에 이미 당나라 시를 척척 외우고, 어른들과 시를 나누고 했은께. 그 때 임억령은 고죽을 조카사위로 점찍었어. 구림에 사는 동생 임구령 목사가 고죽과 비슷한 연배의 딸이 있었거든. 그래서 임억령이 동생 임 목사에게 나주에 똘똘한 동자가 있으니 와서 보라고 얘기하고 임 목사를 나주로 불렀어.
 그래갖고 하도 총명한 사윗감이 있다는 말에 임 목사가 나주로 달려왔어. 어린 고죽을 불러서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고 보니 욕심이 생긴 거라. 그래서 어린 고죽에게 바둑내기를 제안했어. 만약 고죽이 이기면 자기가 젤로 아끼는 것을 주겠다고 했어.
 결과는 고죽이 졌어. 임 목사가 말하기를“네가 이겼으면 내 딸을 주려고 했는데 안타깝다”했어. 그러자 어린 고죽이“제가 졌으니 대신 저를 드리겠습니다.”했어. 정정당당한 임 목사가 맘에 들어서 그의 사위가 되겠다고 자처한 것이지.
 그런데 혼인을 하기로 한 해에 임 목사가 광주목사에서 파직을 당하는 일이 있었어. 그러자 모두 염려한 가운데 고죽은“한 번 약조한 것을 깰 수 없다”며 구림에서 임 목사의 딸과 혼인을 하게 된 거야. 그 정도로 곧은 절개의 사나이였어. 그 때 나이가 열네 살이었는디, 그때부터 구림이 고죽의 본가가 된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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