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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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서호면

조선 인큐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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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는 피임이라는 것을 모른께 애가 들어서는 대로 낳았는디, 딸이면 환영을 못 받았어. 우리 동네 딸부잣집이 하도 딸을 낳아싼께 질려서 애를 띨라고 일본 여자를 불렀어. 그 사람이 배를 잘 주물러서 애를 뺀다고 그랬어.
 남편 몰래 열흘을 주물렀어. 그라자 애기가 나왔는디 살아서 나왔어. 여덟 달만에 나왔는디 아들인거여. 청천병력같이 아들인거야. 그라고 지달렸던 아들인디, 인자 남편이 알면 죽어나제. 딸만 다섯을 낳다가 하도 징해서 빼버릴라고 한 것이 아들인께 다들 놀래서 쉬쉬하고, 어떻게든지 살려볼라고 애를 썼지.
 그래 갖고 달을 못 채우고 낳았어도 살린다고 미영 솜으로 애를 쌓아두더라고. 온 몸뚱아리미영 솜으로 덮어부러. 지금으로 치면 거 뭐요. 병원에서 애기 넣어두는 기계 안 있소. 쬐끔한 애기들 넣고 공기 쏘고 한 것 안 있소.
(조사자 : 인큐베이터 말씀이세요?)
 응 그것이제. 미영솜이 조선시대 인큐베이터 같은 것이지라. 근디 미영 털이 안 벗겨져. 목욕을 시킬라하는데 징하게 안 떨어지더라 합디다.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 그 애가 살아났는디 그라고 영리했어라. 네 살 된 애기가 책을 안보고 외워 버렸는디, 나중에 큼시로 사무관까지 하고 정년 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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