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죽의 무덤가에서 시묘살이를 하던 중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홍랑은 고죽의 유고집을 들고 피난을 하게 되었단 말이시. 처음엔 고죽과 함께 살았던 한양 인근의 허름한 농가 주택에서 아들, 손자와 살았던 것 같어. 근디 의병으로 명량해전에 참여한 아들이 전사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이여. 사랑하는 두 사람을 잃은 홍랑은 가슴을 치고 통곡하였다고 하지. 맴이 얼매나 아펐것어.
그래서 구림에 있는 고죽의 본가에 있는 임씨 부인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어.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을 요량으로 진도를 찾았다가 더욱 가슴만 아팠던 홍랑은 점점 악화되어가는 자신의 육신을 돌 볼 겨를이 없었지.
멀리서 바라 본 구림의 본댁 모습만 봐도 사랑하는 고죽을 대하는 것 같이 맴이 설레고,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 왜 그리 더딘지, 남루한 옷차림으로 손자와 그 집을 바라보며 서성이는 데, 차마 들어갈 수가 없더래.
임씨 부인과는 고죽이 아팠을 때 한양에서 만난 적이 있고, 따뜻하게 대해준 그 마음 씀을 평소 흠모해 왔던 터라, 한 번이라도‘형님’이라고 부르고 싶었던 거겠지. 왜 안 그렇겠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은 홍랑은 자신의 꺼져가는 생명을 의식한 듯, 손자만 문 밖에 두고 그냥 떠난거야. 손자 손에는 고죽의 유고집이 들려 있었지 아마. 그래서 오날날 우리가 고죽 할아버지의 시들을 읽을 수 있는 거여. 을매나 고마운가.
임씨 부인은 사라져 버린 홍랑을 찾기 위해 인근을 갖은 수소문을 다해 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당께. 하지만 홍랑은 몰래 몇 번 다시 찾아와 하염없이 울었다고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