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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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시종면

자라봉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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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두산 밑에 만수리에는‘비단 금’자에‘내 천’자를 쓰는 금천마을이 있어. 또 그 위에 비단 금자에 잿 성자를 쓰는 금성마을이 있었어. 근디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말이시. 여그서 베를 짜고 비단옷을 만들어서 어느 소국인지는 몰라도 여기 서민들은 입지 못하고 그 비단이 딴 데로 갔다는 것이여. 태간리는 입석부락이 있고 명산, 금성이 존재하는 곳인 거지.
 명산은‘목숨 명’자‘산 산’자인 디, 옛날 정감록에는‘피란지지’라고 써져있는 곳이여. 이건 피난하기 좋은 곳으로 목숨을 길게 보전할 수 있는 길지라는 말이제.
 그 때에 어느 시대인지 몰라도 임씨들이 살았는디, 명산 뒷산에 닭재가 있었고 닭너메가 있었고, 땅너머에는 앞으로 서당이 있었고, 건너에는 닭머리가 있었다네. 닭 형상이여. 그 앞 마을이 태산리인데 들 한 가운데 자라봉이 있었제. 자라와 닭이 이상하지 않은가.
 근디, 어느 날부터 모른 사람들이 와서 땅을 파헤치대. 거그가 뭔가 있으니 발굴이라는 것을 한디야. 발굴은 일본 사람들이 먼저 시작했어. 지금도 일본에서는 수시로 와. 찍어가고 흙조사도 해. 밤에도 찾아오고 내가 마을 이장하니까 늘 안내도 해주었고. 아마도 즈그덜 문화발달의 시점을 조사할라고 그런가봐. 일본하고 우리 마한 백제시대 사람 덜하고 통했다쟎아. 우리 영암이 왕인 박사님도 있고.
이천 년대 초인가 서울 사람덜 하고, 나주 사람덜이 와서 발굴을 해쌓트마. 태간리 앞에 저 큰 자라봉 봉우리가 고분이라드마. 그 뭐시냐, 옛사람들 중에서 높은 사람들 묻어 놓은 큰 무덤 말이제. 일본과 비슷한 무덤 형태라 뭐라나. 글먼 뭐시냐. 비단을 맨들고 어디로 수출도 하고, 옛날 높은 사람이 살았던 무덤이 있고, 사람이 살기 좋은 길지이고. 우리 동네가 참 옛날에는 유명한 곳이었당가. 그래서 일본 사람덜이 자꼬 온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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