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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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시종면

지네마을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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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에 우리 아버지한테 들은 닭머리마을 하고 지네마을 이야기여라. 닭머리마을은 딱 닭 대가리여, 그렇게 생겼어요. 지네마을은 옥야리 상촌 서촌마을인디, 지네 형국이여서 그라고 불러. 닭이 지네를 쪼사불고 싶어도 못 쪼사.
 마을 사이가 바다여서 영산강이 제 사이로 흐르고 있어서 닭머리 쪽은 상당히 깊어. 그래서 거그가 소재지까지 오는 길목이었어. 닭머리에 항구가 있었는디, 거그서‘인진호’라는 배가 목포로 다녔다 하대요.
 그라고 지네 쪽은 물이 적은께, 물이 많이 들 때만 다니고, 남해포는 정식 코스로 다니고, 일반 배들은 닭 머리에서 다니고 그랬어. 그라고 옛날에는 일제시대 때는 세곡 창고가 있어 갖고 거그서 일본 놈들이 쌀이고 뭣이고 겁나게 즈그 나라로 실어갔어. 거기서 일본 놈들이 발주를 시켜서 배에 실어서 목포로 보냈다고 했어요.
 그때는 여기서 고기가 겁나게 많이 나왔어. 어족자원이 많아서 여기 가만히 앙거 있으면 여자들이 먹을 것을 잡아서 째금씩 주면 그걸로 술 먹고 그랬제. 그라고 수채에서 낚시를 하면 운조리 같은 것이 많이 잡혀는디, 고기 맛이 참 좋았어요.
(조사자 : 옥야리란 이름은 언제쯤 생겼나요?)
 닭머리는 그전부터 닭머리고, 지네 형국이어서 지네마을이라고 했는디, 옥야리란 말은 그 뒤에 중간에 생긴 것이여. 비옥한 토지라 해서 그래. 일본 사람들이 간척사업을 한 후, 그 앞에 뻘이 겁나게 비옥하고 그래서 땅이 기름지고 좋아서 옥야리라고 했다고 하대요.
 간척사업 함시로 닭머리와 지네마을 사이를 막어부렀는디, 그래서 그 사이에 원둑이 생겼어라. 둑으로 막어서 두 마을이 이어져 붕께, 닭이 지네를 콱 쪼사 분다 하대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상하게 옥야리 그 지네마을 남자들이 많이 죽었다 하대요. 배 타고 가다가 배가 까바져서 죽기도 하고, 이상하게 지네마을 남자들이 많이 죽었다고 했어라. 그 대신에 닭머리 사람들은 더 잘 살게 됐다고 소문났어라.
(조사자 : 그로 인해서 두 마을간 다툼이나 갈등이 있었나요?)
 그런 일은 없어라, 지금 까지도 없어서 다행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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