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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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미암면

상여소리와 언목마을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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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미현 시대 얘긴디, 지금 쌍방죽에서 서쪽 저수지 부근에 언목마을 이라는 큰 마을이 있었어라. 마을이 얼마나 크냐 하면 처음 시집 온 새댁이나 객지에서 온 사람들은 집을 찾을 수 없어서 골목에다 표시를 해놓고 다녔다고 그랬어라.
 언목마을 뒷산 형세가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여서 학 형국 이라고 했어라. 학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어서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주변에 땅도 많아서 농사도 지을 수 있었고 또, 마을 앞까지 배가 들어와 고기도 잡을 수 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살기 좋았어라. 그래서 마을이 커졌제. 그라고 마을 앞에 용왕바우가 있었는디, 뱃사람들이 해마다 거그서 용왕제를 지냈다고 했어라.
 그란디 류미O이라고 하는 유명한 풍수가 당시 권세 좋은 집안의 묘 자리를 학 형국 자리에 잡아 주었는디, 그 권세가가 그 자리에다가 묘를 쓰고부터 밤중에 뒷산에서 학 울음소리가 나고, 상여 나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마을 청년들이 하나 둘씩 죽어 나가기 시작했어라.
 마을에 불행한 일들이 차코 발생해서 마을 사람들은 겁이 난께, 거기서 못 살고 이리 저리 흩어지고 말았어라. 그때 마을 아래쪽에 숲이 밀림처럼 우거진 곳에 호음곡이란 마을이 새로 생겼는디, 그 곳은 숲이 우거져서 호랭이가 내려와서 울었다고 해서‘범 호’자와‘소리 음’자를 써서 호음 곡이라고 불렀는디, 일제 때 행정구역을 정리 하면서 마을 이름이 너무 험상 궂다고 해서‘좋을 호’자 호음으로 바꿔 부렀어라.
 그라고 묘 자리를 잡아준 류미O도 그때 언목마을에서 안 살고 호음곡 부근에 있는 기동마을에 터를 잡고 살았는디, 두 마을이 큰 마을이 되었어라. 언목마을을 떠난 사람들이 두 마을을 새로 만든 것이라고 들었어라.
(조사자 : 언목마을 터는 어떻게 되었나요)
 일제 때 현준O씨가 간척사업을 하면서 큰 저수지 두 개를 만들었는디, 그게 쌍방죽이여. 그라고 언목마을 아래쪽은 저수지가 되고, 마을 위쪽은 밭이 되었어라. 그 용왕 바우는 저수지 속에 지금도 있다고 한디, 물속에 있어서 안 보여라.
 수십 년 전에 세도가 자손들이 묘를 찾으러 왔는디, 찾을 수 없어 인근 기동마을 사람들에게 수소문 했는디, 기동마을에서는 지금도 학 형국 무덤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말라는 금기사항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라. 누가 와서 물어도 얘기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무덤을 찾지 못하고 포기하고 가버렸다고 나 어렸을 때 어머님이 말해줘서 알고 있어라.
 쌍방죽 서쪽 저수지 위에 세도가 묘가 지금도 있는디, 그 곳을 학성국 이라고 불러. 그라고 류미O의 무덤도 기동 근처 어디에 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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