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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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삼호읍

미영 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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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천구백오십 년대쯤에는 우리지역에서 목화보다 미영이라고 엄청나게 재배 했잖아요. 그 때는 목포를 삼백 항구라고 했는디, 소금하고, 쌀, 미영이 흰색이여서 삼 백이라고 그만큼 미영재배를 많이 했지라.
 우리 초등학교 사학년 때까지만 해도 미영버선을 꺼만 물을 들여갖고 신고 다녔고, 바지도 미영바지로 맨들고, 미영바지는 오줌 싸기 좋게 가랭이 터지게 해갖고 입고 다녔제.
 쩌 우게 강다만 다리 건너서 학교를 다닌디, 그 다리 밑에서 문둥이가 산다고 한께, 거그만 가면 문둥이 나올까봐 무조건 달려 가불고 그랬어라.
 그때는 못살 때라 다래를 따먹고 다녔어라. 목화 꽃이 피였다가 솜 모양으로 피기 전에 열매를 다래라고 한디, 진짜 달고 맛이 있었제.
 이 다래를 학교 댕김시로 어찌나 많이 따먹고 다닌다고 학교로 민원이 늘자꼬 들어오고 그랑께, 아침 조회 때 교장선생님이 전교생 모태 놓고“느그들 미영 다래 따먹으면 문둥이 되아분께 절대 따먹지 마라”고 하시는 것이여.
 그래갖고 그날부터 몇 일간 우리들은 잠을 못 자부렀어, 문둥이 되아부까만이. 그라고 그날부터 다래 따먹고 댕긴 애들이 하나도 없드라고.
(조사자 : 많이 먹어도 탈은 없었나요?)
 암시랑 안했어라. 그때는 그런 것이 배고픈 해결책이었제. 그것이 섬유질이 많해 갖고 오히려 더 좋았을 것이여. 그때는 배고픈께 아무 생각 없이 먹었지만.
 그라고 가을되면 목화 따서 저수지 뚝에다가 말려나 그라면 아직 덜 핀 다래 따갖고 친구들끼리 멀리던지기 시합하고 놀고. 겨울에는 복갱이라고 미영 넣어서 만든 모자 쓰고 댕겼어. 딱 묶어서 그놈 쓰면 보기는 싫어도 귀때기도 안 시럽고 겁나게 따뜻하고, 그때는 뭣이든지 미영으로 만들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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