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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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삼호읍

해 먹인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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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스물두 살에 혼인하고, 아저씨는 세 살 많았어. 아저씨 얼굴도 못 보고 했는디, 혼인 후에도 일 년을 더 친정에서 살다 왔어라.
(조사자 : 혼인 후 남편이 처가살이 한 것인가요?)
 처가살이가 아니고 해 믹인당께. 혼인만 하고 신랑은 신랑 집에서 살고, 신부는 그냥 자기 집에서 살지. 형편이 안된께 떨어져 살었어. 신랑이 걸핏하면 신부하고 자고 싶어서 찾아댕기면 다음 날 그냥 못 보내고, 사위 밥 해줄라니까 성가시고 그라지라.
 제대로 보리밥도 없은께, 논밭에서 시금치 캐다가 보리 갈아서 된장 넣고 죽을 반반하게 써서 묵고 살았지. 염병하니 쫓아 다닌께, 귀찮아도 없는 밥 해줄라 눈치보인께 백년손님이라 했지라.
 우리 아저씨는 하룻밤 우리 집에서 자고 며칠 있다가 바로 군대 가 버렸어. 제대하고도 얼마동안 그라고 있다가 혼인한지 일 년 된께 시댁으로 들어왔어라. 그 시절에는 더러 있었어. 해 믹이고 온다 해. 혼인하고 친정집에서 일 년 정도 살다가 시가집으로 와. 그것을 해 믹인다 했어.
(조사자 : 해 먹인 이유가 뭐예요?)
 글쎄 잘 몰것는디, 어른들이 시킨께 했제. 당시는 많이들 해 믹인께, 당연히 그란줄 알았지. 여자 집이 좀 있는 집안에서는 해 믹이고, 없는 사람은 당일치기로 했어라.
(조사자 : 당일치기가 뭐예요?)
 신부 집에서 혼인을 치루고 거그서 첫날밤을 지내고 시댁으로 가는 것이여.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해 믹인 사람도 많았어. 해 믹이면 신랑이 여자 집에 와서 신부랑 잘라고 눈치 보제. 신부집에서 머슴처럼 일하기도 해. 잘 보여야 잘 수 있은께. 그라다가 일 년 후에 가마 타고 시집가면 떡 한 동구리에 이불 한 채 짊어지고 가도 혼수 잘 했네, 못 했네 그런 소리 안하고 잘 살어. 없는 사람들은 가마도 안타고 몰래 밤에 들어가 살기도 했어라.
 나는 신랑이 어쩌다 한 번씩 오면 무섭디다. 창구녕으로 남편인지 아닌지 몰래 보고 그랬어라. 제대로 같이 안 살아서 얼굴도 생소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합디다.
 해 믹일 때 시아버님이 고무신 한 컬레 사 갖고 왔었어라. 걸어서 서창까지 선물 줄라고 오셨더라고, 잘 있는가 볼라고 오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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