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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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영암읍

개머리 명당과 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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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지리를 공부한 황영감은 자기들의 선산에 있다고 하는 비봉포란형 명당을 찾기 위해 벌써 열흘 이상을 선산 이곳저곳을 찾고 있었어. 황씨 문중에서는 영암읍 월송정 선산에 명당 중 명당이라는 비봉포란형이 있다는 말이 전해 내려왔어.
 아무리 찾아도 찾지를 못하자 결국“우리 문중하고는 인연이 닿지 않는가 보다”라고 중얼거리며 늘 봐 두었던 개머리형 명당을 조상 묘 터로 정하여 이장을 하였는디, 그러자 후손들이 번창하고 문인보다는 무인의 급제자가 나오기 시작했어. 비록 비봉포란형 명당은 아니지만 개머리 명당으로써도 어느 명당 못지않게 만족하게 살아왔어.
 그런데 일제 강점기가 되자 일본 풍수지리 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조선 천지의 명당을 찾는 계획을 세웠고, 더 이상 조선 인물이 태어나지 못하게 하여 우리나라를 완전하게 집어 삼키려는 내선일체 정책을 추진하였던 거여.
 그 과정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주요 명당의 혈을 자르는 일이었는디, 그 과정에 황씨 선산 개머리 명당도 해당되어 일본 놈들이 개머리 명당의 목 부분을 깊게 파서 혈을 잘라버렸고, 또 논을 정리함서 개 밥그릇에 해당하는 바위도 깨서 없애 버린거여.
 그 후 일본은 패망하여 일본으로 쫓겨 갔지만 황씨 집안에는 사회주의 개혁 혁명을 주장하는 세력의 중심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어, 그러다가 육이오가 발발하여 더욱 활동을 왕성하게 하였는데 인민군이 퇴각하자, 그들은 좌익이라는 이름으로 몰려 전 가족이 몰살당하고 친척들도 거의 다 전멸하다시피 몰락해버렸어. 이를 두고 황씨 조상 개머리 명당 혈이 잘리고 밥그릇도 없어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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