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시집 장가 못 간 처녀총각이 죽으면 질 우게 묻었는디 그거 알아요.
(조사자 : 처녀총각 묘를 길 위에 썼다는 말씀이세요?)
그래, 우리 동네 회문리에 녹동서원 쪽으로 가는 길에 처녀 묘 하나, 총각 묘 하나씩 있었어. 처녀 묘는 단초라는 아가씨의 묘였고, 총각 묘는 젊은 조씨 묘였어.
(조사자 : 두 사람 묘가 무슨 관계가 있었어요?)
아니,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결혼 못한 처녀귀신과 몽달귀신이라 길에다 묻었다는 얘기여. 회문리에서 이백 보 정도 가면 단초 아가씨가 묻어져 있고, 거기서 한 오십 발자국가면 길모퉁이 돌아가는 곳에 조씨 총각이 묻어져 있었어.
(조사자 : 왜 그곳에 묻었어요?)
옛날에는 처녀총각이 죽으면 결혼 못한 한이 커서 편히 저승에 가지 못하고 몽달귀신이 돼서 사람들에게 해꼬지 한다고 믿었어. 그래서 몽달귀신이 나오지 못하게 얼개미 치로 얼굴을 덮고 질 위에 묻어.
(조사자 : 떡가루 거르는 체 말씀이세요.)
그래, 고운 떡가루 체를 뜯어서 얼굴을 게리면 귀신이 치 구녕을 세느라 나오지 못하다가, 지나는 사람이 밟으면 깜짝 놀래서 그 때까지 센 숫자를 잊어버리고, 다시 시고 또 다시 시고 하느라 밖으로 못 나오는 것이여.
사람들이 하도 밟고 다녀서 무덤 가운데는 길처럼 평편해지고 양쪽만 쏘독하게 남아 있었제. 옛날 질은 달구지도 댕기지 못할 정도로 좁디좁은 오솔길이었은께, 양쪽 무덤 귀퉁이가 남아서 쬐그만 둔덕처럼 남았당께. 오래되면 평편해지겠지만 자세히 보면 질 우게 묘 흔적을 금방 찾을 수 있었어요.
(조사자 : 옛날 사람들은 남의 무덤이라도 소중하게 다루지 않았나요?)
보통 다른 묘를 올라가는 것은 어른들께 혼꾸녕이 나지만, 처녀총각 묘는 누구나 밟고 댕겼어. 나도 어렸을 때 친구들이 그냥 가면 불러서“처녀귀신, 몽달귀신이 못 나오게 다시 밟고 가라”고 장난치고 그랬당께.
(조사자 : 길 위에 묘를 썼다가 없어져 버리면 어떻게 성묘해요?)
옛날에는 애를 많이 낳아서 어릴 때도 많이 죽고 결혼하기 전에도 많이 죽었는디, 그렇게 결혼하기 전에 죽은 사람들은 제사지내는 것이 아닌 법이여. 제사도 안 지내고 성묘도 안한께 묘를 기억할 필요도 없제.
(조사자 : 혹시 처녀 총각 묘가 있었던 곳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어요?)
그림을 잘 못 그린디, 이렇게 생겼어. 회의촌 쪽에 이렇게 단초묘가 있었고, 그 우게 한 참 가서 총각묘가 이렇게 있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