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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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군서면

도선국사의 초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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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한테 들은 전설에 의하면 도선 국사가 최초로 출가한 절이 월산사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고, 절터 옆에“도선국사 낙발지지”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어. 언제 새긴 건지는 모르 것는데, 암튼 한글로 음각한 글씨가 지금도 선명해요.
 우리 어렸을 때 그 절터에 가보면 기와장이 많이 나왔어. 주황색도 있고 검은색도 있고, 여러 가지 색깔이 있었어. 기와 크기도 다 다르고. 어떤 수키와는 어린 애들이 들지 못 할 정도로 크고 무건 것도 있었고요.
 그라고 그 터 주변에 야생 녹차도 많이 있고, 또 배롱나무가 무지하게 큰 것이 있었는디, 지금 가보면 없대요. 녹차나무는 아직 있는 것을 보면 월산사 절터가 맞는 것 같아요.
 그란디 도선국사 출가 당시에는 먹을 물이 없어서 어려움이 징상스럽게 많았다고 하드라고요. 그래서 도선국사께서 백일기도를 했어. 어느 날 기도하다 깜빡 잠이 들었는디, 관세음보살께서 나타나서“절 옆 골짜기 절벽 밑을 파보라, 너희가 구하는 물이 있을 것이다”하고 사라져 부렀는데 깨어나서 본께 꿈이었어.
 그래서 꿈속에서 본 절벽 밑을 파 본께, 절벽에서 진짜 물이 나왔어. 그 물이 겨울인데도 아주 따뜻한 물이 나왔어. 물맛도 기가 막히고 해서 그 후로 그곳 지명을‘초수동’이라고 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지요.
 그 물로 육칠십 년대 까지만 해도 가뭄이 심할 때는 기우제를 초수동 골짜기에 있는 물구덩 앞에서 지냈고. 영산호 물이 오기 전에는 월산마을 앞 칠십여 마지기 논을 초수동 물로 농사를 지었어. 영산강 물이 온 후로는 월산마을 식수로 활용 했제.
 그라고 그 물이 수질이 얼마나 좋은가 하면, 마을에 양학O이란 친구가 모 심을 때 페트병에 초수동 물을 담아서 논머리에 묻었다가, 그 이듬에 모심을 때 파서 마셔 본께,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하드라고.
 초수동은‘풀 초’자에‘물 수’자 인디, 기상에서는 초상 온도가 초수동 물이 젤로 높다고 하드라고. 최저 온도보다 더 낮은 온도가 초상 온도라고 한디, 물이 얼마나 찼으면 초수동 이라고 했것어.
 인자 지금은 마을에 상수도가 들어온께 사용하지 않은디. 그 물로 비누질해서 세수하면 계속 미끄러워 짜증 날 정도여.
 그라고 어렸을 때 땀띠 나면, 거그 들어갔다 나오면 땀띠가 딱 없어져 부러. 겨울에는 따뜻한께, 옛날에 목욕탕이 없을 때 정월 보름에 거그 가서 목욕하고 그랬어.
 초수동은 하여튼 보물이여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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