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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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덕진면

신우대 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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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동네에서 나하고 거지반 같은 연령댄디 나보다 쪼끔 덜 먹었제. 그란데 처녀가 인자 강씨여. 그 양반이 아주 시방 혼기가 되었단 말이여. 그런디 옛날에는, 옛날에는 말이여 잉, 결혼하게 되면은 살림이 궁해 가지고 바로 집을 짓거나 사거나 하들 못하고 하면은 넘의 집 작은 방에서 많이 살았어.
 내가 결혼해가지고는 그 강씨 처녀네 집 작은방에서 살았어. 그랑께 잘 알고 그란디, 그 처녀가 저녁에 밥을 먹고 있는디, 그 윗집 처녀가 이 강씨 처녀 이름을 부름시로 자기 집으로 오거덩. 그랑께는 강씨 처녀가“어, 친구가 오구나”그라고는 밥을 거지반 다 먹었던가 인자 문을 열고 나갔어. 나가니까는 뭣이 막 밀드레. 뒤에서 막 밀어. 그래서 막 밀려가는거여, 밀려가는데 마치 밀린다 할 때 까지는 아는데 그 이후로는 몰라부러.
 그란디 막 밀려가지고는, 그 집 뒤에가 마치 신우대 밭이 한 대 평정도 잉, 신우대 밭이 있어. 그랑께 거가 집 뒤에라나서 모두 그릇 깨진 것이나, 병 깨진 것이나 있으면은 흔히 그 신우대 밭에다 내 땡겨버리지. 그랑께 거그가 말하자면 으슥하니 고약해. 아, 그란데 말이여 나갔는디, 친구가 찾아와서 따라 나갔는디, 오도 가도 안하거든, 오도 가도 안 해.
 그랑께 인자, 아무리 동네 이웃에다가는“여 우리 딸 안 왔냐”고 하닝께, 안 왔다 하거든. 다 그랑께“워~메 뭔 일 났네”그라고는 아주 동네 청년들이랑 모두 심께나 쓰는 남자들이 모두 간지대도 갖고 나오고, 모두 후라시도 갖고 나오고, 몽뎅이도 갖고 나오고, 모두 말이여 모두 찾을라고 밤에 모두 나간거여. 그래가지고는 모두 찾는다고 인자 등불을 잡고 모두 난리였어요.
 그란디, 저그 강씨 처녀 어머니 하는 말이“짐작이 가는 데가 있다”면서,“다른데 갈 것 없이 우리 집 뒤에 신우대 밭을 한번 뒤져봐 줬으면 쓰것다”고 그라거덩. 그랑께 동네 사람들이 모두 불을 쓰고 간짓대를 들고, 소스랑 들고, 몽둥이든 사람들이 모두 그 신우대 밭을 들어갈라고 하는디, 무서워서 얼른 들어갈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라.
 그란디 청년 하나가 제일 힘도 쌔고, 용기도 있고, 패기가 왕성한 청년 하나가 딱 들어가서 보더니“야 여가 있다”고 그라거등. 그랑께는 사람들이 깜짝 놀래갖고는 이제 신우대밭을 헤치고 들어가 본께는 거그가 딱 무릎 꿀코 앙겄어. 그래갖고 안졌는디, 이제 일어나서 띠어갖고 올라고 아무리 띠어봤자 안 떨어져, 땅에가 붙어갖고 안 떨어지는 거여.
 그랑께는 즈그 어머니가 와서, 인자 송경을 하는 거여. 경을 읽듯이 막 뭣을 외와뒤겨.“우리 딸 몇 살 먹은 자식 죄도 없는 자식이옵니다. 현명한 신들이여 놓아주면 감사하겠습니다”하고 말여 잉, 송경을 해. 그라고는 딸한테 침을 서너 번 뱉었단 말이여. 즈그 어매가 그라고는 띠니께, 머리카락을 잡고 든께 떨어져. 그래가지고는 즈그 집으로 뜸고 와갖고는 눕혀놨어. 눕혀 논께는 말도 못하고 눈만 떠갔고, 눈이 아무 총기도 없이 죽은 상태의 눈만 떠갔고 그라고 있어.
 오래 지나서 새벽이 된께, 닭이 운께는 말이여, 말을 딱 하기 시작해. 닭이 운께는 말을 하기 시작하더니만 회복이 되았어. 회복이 되았는디, 인자 동네서 회복이 된 뒤로 들은 얘기가 있기를“귀신한테 홀린 사람들은 오래는 못산다”고 해.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오래는 못 산다고 삼사 년 살아봐야 알지 모른다고 했어. 그랑께는 이제 시집을 가야할 처녀로서는 결정적인 하나의 흠이 된 거야. 그란디 똑같은 흠을 가진 청년하고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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