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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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도포면

딸 부잣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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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마을 아랫동네에 박모 씨가 살고 있었어라. 이웃 마을 처녀와 결혼해서 얼마 있다가 첫 딸을 낳자‘제일’라고 이름 지었어. 그라고 얼마 후 또 딸을 낳자 연이어서 딸을 낳다는 뜻으로‘연이’라 하였고, 다음에도 또 딸을 낳자 딸이 셋이나 생기다니 하고는 조금 과도하다는 불평스러운 심정으로‘과삼’이라 이름 짓고, 네 번째도 또 딸이 생기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굶어 죽어부라는 뜻으로‘아사’라고 하였지.
 그런데 또 다섯 번째도 딸이 태어나자 이상스런 생각이 들어‘교오’라 했고, 연거푸 반갑지 않은 딸이 다섯이나 생기다니 교묘한 일이었어. 기가 막혔지. 그런데 얼마 후 여섯 번째 딸이 또 생기자 진짜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박씨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이 분하다는 뜻으로‘분육’이라 이름 지었어. 딸이 여섯이라니 분할 일이었던 것이지라. 그러나 또다시 일곱 번째의 딸이 태어났을 때는“하늘도 무심하다! 이제 나는 망했구나!”하고 실의에 빠진 끝에 그 이름을‘망칠’이라 했던 거야.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여덟 번째 또 다시 딸이 생겨나자 분하고 원통한 심정도 도를 넘어 헛웃음이 절로 나와‘소팔’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지라. 연이어 딸 여덟을 얻은 박씨는 화가 치밀어 오르면 딸 여덟을 향해“너희들 한꺼번에 죽으면 한 구덩이에 묻어 주마”그러고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고 딸들은 무서운 아버지의 호통에 벌벌 떨면서 자랐다고 해라.
 그란디 아홉 번째로 아들을 얻게 되자,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그 이름을‘귀남’이라고 지었다고 하드만. 제일, 연이, 과삼, 아사, 교오, 분육, 망칠, 소팔, 귀남이 같은 이름은 남존여비의 옛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지라. 하지만 이 박씨는 아들 장가보내고 아들에게 덕을 보지 못하고 여덟 딸 덕분에 말년에 잘 살았다고 전해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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