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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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덕진면

정직한 보리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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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목포에서 망호리 연적봉까지 배가 드나들었어. 그 당시에 거기가 포구였고 황실이배도 들어오고 해서 그곳에 상권이 형성되었다고 봐야제. 그 부근에 옹기 굽는 가마터도 있어서 옹기를 만들었고, 옹기장사를 하는 배도 왔다갔다 했제.
 그 때 우리 아버지가 거기에서 옹기를 사가지고 그 안에다가 보리를 채워가지고 배에다 싣고 섬에까지 나가서 장사를 했어. 그 당시 사람들은 가마니에다가 보리를 담아가지고 됫박으로 되어서 팔았는디, 우리 아버지는 옹기에다가 보리를 담아 뚜가리를 덮어가지고 가서 보리도 폴고 옹기도 거야. 그야말로 대인기였제. 섬사람들은 웬만하면 기다렸다가 우리 아버지한테 보리를 샀응께 말여.
 왜 그러냐면 당시에 물건을 실어 나르던 배가 돛단배로, 바람을 이용해서 댕기던 풍선이었어. 다행히 바람을 잘 타면 히딱 갈 수 있는디, 바람이 잦으면 닻을 내려놓고 바람이 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람이 불면 움직이고 했어. 그란디 강가 마을에만 물건을 판 게 아니라 목포 앞바다를 빠져나가서 남해안 섬들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이 다 팔릴 때까지 장사를 한 거여. 그러니 어쩔 때면 한 번 나가면 한 달이 넘게 걸릴 때도 있어.
 문제는 돌아다니는 동안 비바람을 만난다는 거여. 아무리 단속을 해도 비가 들치고 습기가 차면 가마니에 있는 보리가 불어나고 심하면 싹까지 트고 그랬어. 습기를 먹으면 보리 무게나 양이 늘어나서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는 거지.
 그란디, 우리 아버지는 옹기에다가 보리를 담아서 다니기 때문에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어. 그래서 정직한 장사를 한다고 소문이 나서 대인기였지. 아주 장사가 잘 되었어.
 그라고 섬에 나가 보리와 옹기를 생선과 바꾸거나 다 팔고 나면 섬에서 가지고 온 생선을 배에서 염장을 해서 가마니에다가 담아가지고 와서 영암에서 판 거야. 돛단배 한 척 끌고 다닌다고 해서 보따리 장사를 한 게 아니라 당시에는 대상인이었제.
 그라고 우리 아버지는 고숙하고 동업을 했어. 망호리 이구는 강씨가 사는 마을인디, 그곳으로 고모가 시집을 갔어. 그란디 고숙은 배우지를 못해서 글자를 몰라. 그래도 총기가 있어서 고숙이 아버지와 팀이 되어서 고숙이 보리를 수집을 하면 아버지는 그것을 내다가 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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