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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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덕진면
한석봉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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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봉이 영암에 오게 된 것은 영계 신희O 선생 때문이여. 영암에서 태어난 신희O 선생은 진사에 급제하고도 구년이 되도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학업에 매진하셨어. 이 때 석봉과 어머니는 신희O 선생을 따라 영암으로 내려왔어. 영암에 내려온 석봉은 영암읍 농덕리 일구에 있는 둔덕 동네 앞산에 있는 절(서당)인 죽림정사에 머무르면서 신희O 선생으로부터 글씨를 배웠어.
 그리고, 석봉 어머니 백씨는 어린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하여 죽림정사에서 삼십리 밖에 있는 한씨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학산면 용산리에 거처를 정한 후에 당시 아천포라는 항구 위 다릿거리 장터에 나가 떡장사를 했어. 오직 하나 뿐인 아들에게 희망을 걸고 사는 석봉의 어머니는 영암에서 양반 신분을 개의치 않고 떡장사에 나선 거여. 석봉 어머니 백씨부인에게는 개성에서 천리 밖 떨어진 영암으로 내려온 것이 천만 다행이었어.
 한석봉을 얘기하는 설화책에서는 개성에서 장사를 했다고 하지만 석봉할아버지가 정랑벼슬까지 했는데 신분사회의 율례가 엄격한 당시의 형편으로 석봉의 고향에서 떡장사를 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여.
 석봉 어머니는 아들을 죽림정사에 아들을 남겨놓고 십년 동안 오직 학업에 정진할 것을 당부했어. 무너진 가계를 일으키기 위해서 아들과 함께 그렇게 독한 마음을 먹었어.
 석봉이 죽림정사에서 공부를 시작한지 삼년쯤 되는 어느 날, 스승 신희O선생이 문과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게 되었어. 스승이 떠난 뒤 산속에 있는 집에 홀로 남은 어린 석봉은 마음 따뜻한 어머니가 너무도 보고 싶었어. 어느 날 밤 석봉은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삼십 리 달빛을 따라 밤길을 더듬어 어머니 곁으로 달려갔지.
 석봉을 만난 어머니의 얼굴이 한동안 빛이 난가 싶더니 이내 차갑게 변했어. 어머니는 석봉에게“이 밤중에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어. 석봉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이젠 글 쓰는 솜씨도 많이 늘었습니다.”고 말하며 어머니를 안심시켰어. 어머니는“그러면 어디 그 솜씨를 한번 보자.”함시로 아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은 붓, 벼루, 먹과 종이를 꺼내놓고“나와 솜씨를 한번 겨루어 이기면 오늘 나랑 지내고 그렇지 않으면 당장 돌아가거라.”고 얘기했어. 석봉은 자신이 있었어. 그래서“네. 어머니!”하고 당당하게 대답했지.
 어머니는 내일 시장에 나가 팔 떡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불을 껐어. 그리고 석봉에게“어디 그간 배운 글을 한번 써 보거라.”하고 나서 칠흑같이 깜깜한 방에서 떡을 썰기 시작했어. 대화가 끊긴 방안에는 떡 써는 소리와 종이 위를 스치는 붓놀림소리만 침묵을 깨고 있었지.
 그리고 한참 후 어머니는 불을 켰어.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머니가 썬 떡은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석봉이 쓴 글씨는 삐뚤빼뚤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었어. 어머니는 석봉에게 차갑게 말했어.“당장에 돌아가거라!”얼굴이 창백해진 석봉은 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어.“어머니 부디 몸 건강하세요.”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죽림정사로 돌아오는 석봉은 눈물이 앞을 가렸어. 그리고 속으로 정신을 차려 붓을 들겠노라고 다짐했어.
 영암의 군서면 구림마을 대동계사 곁에 있는 육우당의 상량문에는 당에 걸린 액자글씨가 한석봉이 쓴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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