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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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시종면

땅골과 지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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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내려다보인 곳이 땅골이라고 한디, 옛날에 거가 큰 고을이 있었다고 했어. 그라고 그 앞을 속내라고 한디 거가 성내여. 큰 고을이 있었을 때 성이 있었고 그 성 안이라 해서 성내여.
 그라고 구전으로 내려오는 말로는 옛날에 거그 땅골 고을에서 어뜬 추장이 살었다는 얘기도 있어. 지금은 다 개간해 부렀는디 거그서 확독도 나오고 그랬어.
 그라고 여그보다 바우재라고 해. 바우가 세 개 있는디, 이 바우에서 장군이 앉아서 오줌 쌌다고 해서 장군바우여.
 그란디 이 바우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여. 이 근방 사 키로 안에는 바우가 하나도 없거든. 그전에 서울서 문화재 한 사람이 왔는디, 장군바우보다 지석묜가 뭔가 기라고 하든만. 그랑께 이 지역에서 큰 세력이 살았고, 그분의 무덤이였지 안나 생각하제.
 이런 큰 돌은 요 근방에는 없어. 그랑께 쩌그 월출산에서 큰 나무를 짤라 받쳐갖고 돌을 올려서 앞에서는 줄잡고 끌고 뒤에서는 이렇게 밀고 해서 몇 년을 해서 옮긴다고 하든만.
 그라고 쩌가 객사등이 있었어. 지금 같으면 여관이나 호텔이제. 이 고을에서 사람이 많이 살았은께 객사 등이 있었제. 거가 주막도 있었을 것이고, 그 옆에 본촌은 아전들이 살았다고 하드라고.
 이 땅골에서 백제시대 때 기와장이 많이 나왔어. 그라고 백제 때 최초로 구웠던 기와도 출토 되었는디, 그 기와를 굴 때는 삼베를 밑에다 놓고 우게는 짚으로 덮어갖고 기와를 구었다고 하든만. 지금도 파면 기왓장이 나오제.
 그라고 전에는 사대문 흔적이 다 있었는디, 지금은 없어져 부렀어. 그 지대를 보면 요리 이렇게 파지고 덩실하니 꼴창이 네 반데가 있었는디, 요쪽으로는 없고 요 골창, 요리 가는 골창, 요 골창은 지금 희미하게 남아있어. 성 안으로 통하는 통로 문이었다고 봐야제.
 그랑께 땅골 근방에 고을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고 백제시대 보다는 마한시대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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