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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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영암읍

아기 끄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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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전까지만 해도 회의촌 마을 안쪽에는 오래된 아름드리 솔낭구들이 빼곡히 있었어. 기찬랜드 하천 흐르는 주변으로 축 늘어진 솔낭구 가지가 한 폭의 그림 같았지. 또 하천에서 마을 안쪽으로 쭉 솔낭구 숲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어릴 적 그 곳에는 나뭇가지에 아기 끄렁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어.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프고 병원이 많지 않아서 죽어나간 아이들이 수두룩 했지. 한 마을에서도 매년 죽어나가는 애들이 한 둘이 아니었는데, 죽은 아이들을 볏짚에 싸서 솔낭구에 매달아 놓았는데, 아기를 싼 볏짚 가마니를 짚끄렁지라고 했어.
 우리 마을에는 천변을 따라 길고 넓게 거송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는데, 그 나뭇가지에는 어린 아그 시신을 달은 꾸러미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예사였어. 자식이 에래서 죽으면 전생에 원수가 앙갚음을 위해 태어 났다가 부모보다 먼저 죽은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짚으로 꾸러미를 만들어 그 속에 애기 시신을 넣어 매달아 놓았다가 썩어서 땅에 떨어지면, 떨어진 자리에 흙으로 덮어 놓았어. 그랑께 소나무 숲에 가면 작은 뫼똥이 즐비했어.
 죽은 아이를 그냥 땅에 묻는 것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나무에 매달아 놓으면 뼈만 남게 되는데 그때 뼈만 골라 흙에 묻었어. 시신을 이엉으로 엮은 초분에 넣어두었다가 탈골 후 뼈만 묻었던 옛날 전통의 하나인 것 같아.
 그라제, 지금도 인근 섬 지역에서는 풍장을 하는 곳이 있다고 하던데. 그쪽에서도 끄렁지에 넣어 나무에 묶어두는지는 모르겠네. 하여튼 우리 마을에는 아기 끄렁지가 항상 데롱데롱 매달려 있었어. 누가 와서 매달아 놓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곳이 기운이 좋아서 그랬는지, 많을 때는 대여섯 개가 매달려 있었어. 특이한 것은 볏짚은 엮어 묶을 때는 일곱 가닥으로 묶었어라.
 이 년쯤 지나 볏짚이 썩어 내릴 때면 자연스레 탈골도 완성되어 뼈를 모아서 옴싹하게 땅에 묻어 주었어. 회문리 안쪽에는 잔솔밭이 쭉 있었는데 그 곳에는 뼈를 묻은 작은 아기 뫼똥이 천지였어.
 해방 전에 일본놈들이 배 만든다고 아름드리 소나무를 다 베어 가버려서 옛날의 아름다운 풍경은 사라져 버렸어. 육이오 이후에 그 곳에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과거 아기 뫼똥이 있었던 곳에 집을 지은 집안은 각종 우한이 끊이지 않더라구. 어떤 집은 다 큰 아들이 두 사람이나 죽어나가고, 그 옆집은 자살하고, 어떤 집은 정신 병자가 생기고, 어떤 집은 교통 사고로 죽고, 어떤 집은 계속 환자가 이어지고, 정말이지 성한 사람이 없었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치고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이 아무래도 아기 혼들이 장난을 치지 않나 싶기도 하고.
(조사자 : 혹시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아기 끄렁지가 있었나요?)
 금메 말이오, 장성에서는 바위에 초분을 만들어 놓고 나중에 풍장하는 것을 봤는디, 우리 동네처럼 솔낭구에 매달아 놓은 애기 끄렁지는 못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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