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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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해설
가세
가위

쪼깐
조금
거까지
거기까지
시방
지금
맹그러
만들어
엄껏도
아무것도

우그로
위로
발태죽
발자국
땜시
때문에
한나
하나
기뚝
굴뚝
냉갈
연기
아적
아직

매깨
맡겨
데꼬
데리고
거짐
거의
머단디
무엇 하는데
야그
이야기
에랬을
어렸을
인자
이제
포도시
겨우
그랑갑다
그런 모양이다



옛 이야기 군서면

장수 발자국 바위


본문

  쩌그 저것이 월대바우여. 그라고 쩌쪽에 가세 같이 생긴 바우가 가세바우여. 근디 가세바우 뒤로 을 잘 다듬어서 쌓은 성이 쬐깐 있어. 옛날에는 그 성이 쩌그 오른쪽에 보이는 산이 죽순봉인디 거까지 쭉 싸져있었다고 하드만. 그랑께 가세바우서부터 쭉 내려와서 시방은 수리조합에서 보를 맹그러 썩은 물이 돼야있는 어사방죽을 거쳐 죽순봉까지 으로 싼 성이 있었다는 거여.
 근디 박정O 정권 말기에 수리조합에서 어사방죽에 보를 쳐 맹그면서 허물어 불고, 들이 빤듯빤듯한께 고것들을 싹 딴 공사장, 지남방조제 공사 한디로 다 갖고 가불었다고 하든만. 그랑께 지금은 가세바우 뒤만 빼놓고 암껏도 없어. 미친 짓거리 아녀?
 뭔 이유로 이 성을 맹글었는지 아직도 몰라. 쩌그 도갑저수지가 맹그러지기 전에는 요 냇깔을 따라 도갑사 가는 이 있었제. 그때는 월대바우하고 가세바우 우그로 솔갱이가 상긋 날았제.
 (장수발자국을 가리키며) 요 발테죽 좀 봐봐. 영락없이 열 살짜리 발테죽이 아닌가? 이 발테죽 땜시 저 도갑산성 하고 생긴 이야기가 세 개가 있어. 표지판에는 두개라고 되야있지만 세 개여.
 그 한나는 도선국사가 열 살이 되얏을 때 이야기여. 그랑께 도선국사가 열 살이 되었을 무렵, 엄니가 시합을 하자고 했어. 엄니는 아침밥을 짓고 도선국사는 도갑산성을 쌓는 시합을 말이제. 그래서 도선국사가 요 성을 팔랑개비처럼 거짐 쌓고는 내려다 봉께, 기뚝에서 냉갈아적도 나고 있드람만시. 그랑께 맘이 풀리면서 월대바우에서 졸아부렀제. 밥을 다 지은 엄니가 도선국사를 부릉께 아차 하고 깬 도선국사가 진 성로 월대바우에서 요리 뛰어내려 생긴 발테죽이라고 하기도 해.
 또 한나이 겁나 장사라고 전해온 범연이란 사람 이야기여. 누구는 동차진이라고도 한디, 사람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닝께, 영특하기로도 소문이 나서 못 읽은 책이 없었다고도 하고, 근디 어느 날 스님이 범연이 집 앞을 가다가 범연이가 화를 당할 운명이니 삼 년만 자기한테 매깨주라고 데꼬갔는디, 일년도 못 되야서 집이 와분 거여.
 엄니가“머단디 이렇게 빨리 왔냐”하니까,“더 배울 것이 없어서 그랬소야”해서 그람 시험이나 해 보자 그럼시로 엄니가 나는 밥 짓을 탱께 너는 성을 싸라이 했는디 엄니가 이게부렀제. 그래서 범연이가 엄니한테 미안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월대바우서 요리 뛰어내려 생겼다 하기도 하고.
 또 한나는 (표지판을 가리키며) 여그도 써 있는디, 임진왜란 때 화소 사람이었던 김완 장군 이야기제. 여그 표지판에도 써 있네만, 도선국사 야그랑 비슷혀. 여그는 김완 장군 누나가 밥 짓기를 하고 김장군이 성을 쌓는다는 것으로 되야있는 것 빼고는 똑 같아.
 그란디 이 발태죽이 누가 월대바우서 뛰쳐내려 생겼을까마는 옛날보다 겁나 닳아졌어야. 에랬을 때는 꼭 애기 발태죽 같이 보였는디, 인자는 이것이 발테죽이다 하고 봐야 포도시 그랑갑다 하제 그라고 안 하면 몰라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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