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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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학산면

저수지 만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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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는 영암 춘양리에 살았어요, 지금 영암여고 자리지라, 일곱 살 먹어서 나와서 그때 할머니 사시던 이곳 상사부락에 왔지라, 지금은 저수지가 되어서 집터가 물속에 있는디, 그때는 아홉 가구가 살았지라, 그란디 유격대들이 집들을 싹 불질러가지고 이곳 원부락으로 내려와서 살았지라.
 그란디 내가 명이 길긴 긴 것이여, 거그서 안 죽고 산 것 보면, 저수지 제방을 할라면은 바닥을 깊이 파, 그래갖고는 바위가 나도록 파더만, 바우가 우리 한 길 이상이 되게 밑으로 내려가. 그래야만이 그 속에서 딱딱한 돌이 나오도록 딱 파고는 그 속을 소재를 해 내고, 발파를 하더만. 발파를 해가지고 바우를 싹 띠어내고 걱서 물이 나. 물이 나가지고 그때 당시에는 경운기 양수기로 물을 퍼낸다 말이요.
 그란디 쪼금씩 남은 물을 물지게로 져날려. 그라고 져 날릴라면 지하로 내려가야 해. 그래가지고 그놈을 져 날르려고 사다리 식으로 나무로 발판을 맨들어 갖고 지고 올라오는디, 한쪽은 낭떨어지고 한쪽은 벽인디, 그라고 올라오는디 양철통에 있는 고리가 딱 떨어져 부렀어. 그라고는 기울어지는디, 마치 내가 살라고 그랬던가 낭떠러지 쪽 고리가 떨어짐시로 벽 쪽으로 넘어져서 살았제.
 그랑께 사람들이“아따 충성이는 어따가 묏자리를 좋은 것을 써부렀다”고 그랬제. 대처 내가 생각해도 사첩했어, 반대로 떨어졌으면 그 자리에서 죽었지. 그래갖고도 먹고 살라니까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나하고 일하러 다녔어요. 그때 하루 일당이 이백팔십 원 했어라. 사람들도 사고로 많이 죽고 그런 얼척없는 공사였는디, 이백팔십 원 받고 있했어요. 그나마 그 저수지 덕에 얼마간은 벌어먹고 살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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