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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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미암면

사라진 봉고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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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고지 마을 하고 흑암마을은 한마을인디, 그 때는 봉고지 마을이 백여 호가 훨씬 넘었는께 겁나게 컷제.
 그란디 어느 도승이 봉고지 마을 앞을 지나가다 사람들한테“저 방죽으로 소가 들어가면 마을이 폐쇄 된다”고 그런 식으로 말한께, 인자 마을 사람들이 그 도승한테 뭔 말이냐고 꼬치꼬치 물어 보니까,“앞으로 마을에 재난이 있을 것인께, 빨리 조치를 해서 방죽 이 안 없어지게 하라”고 하고는 가부렀어라.
(조사자 : 마을 앞에 저수지가 있었어요)
 그랬제. 지금 흑암으로 가는 길이 그때는 방죽 이었제. 그라고 그 도로 위에 있는 논들이 방죽 이었어라. 그라고 그 방죽 안에 용시암이 들어 있었거든. 거기서 용이 승천을 하고, 그 방죽 밑에서 봉황새가 살었는디, 그래서‘봉황새 봉’자 에다가‘살 거’자를 써서 봉거지라고 했어라. 그란디 언재부터인지는 모르 것는디,‘거지’란 말이 이상하다고 해서‘높을 고’자를 써서 봉고지로 부르제.
 그때 그 도승이“방죽 이 없어지면 소가 들어가서 마을이 망한께 안 없어지게 하라”고 했는디, 지금 사람들 같으면 신경을 써서 할 것인디, 그때 사람들은 그대로 나둬 부렀제. 그랑께 그 방죽이 폐쇄가 되고, 그 후로 산정저수지 그 자리로 올라가 불고, 그 방죽은 논이 되아분께, 자연적으로 소가 쟁기질할려고 들어가서 그때부터 차츰 차츰 서당도 없어지고 마을이 페쇄가 되아불고 그랬제.
(조사자 : 마을에 서당이 있었어요)
 서당이 있었제. 봉고지 마을이 상당히 큰께 서당도 있었고. 서당에서 구학을 공부하고 이룬 사람들은 전부다 과거에 합격해 부렀다고 했어. 서당이 유명해서 공부하러 댕긴 사람들도 많고 과거 보러 가는 사람들이 봉고지에서 먹고, 자고 흥성흥성 하고 댕기는 사람들도 많았제. 그랑께 부락이 커졌어라.
 저수지 없어지기 전에는 그래가지고 인자 저수지 그 방죽이 없어진께, 서당꾼들도 안 오고 그랑께 서당도 폐쇄되고, 마을도 폐쇄되고, 인자 다섯 가구만 남었제. 그라고 그 서당 터 자리에 지금도 그때 사용한 옹달샘이 있는디, 물이 마르지 않고 지금은 명당자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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