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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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미암면

신랑 상여 따라 시집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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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전주 최씨 할아버지 얘긴디, 그 할아버지가 장가갈 나이가 되어서 열다섯 살 때 정혼을 했다고 했어라. 부모가 정해놓은 혼처인 쩌그 해남 계곡 비슬안 마을 처녀와 정혼 했어라.
 그란디 그 함마니가 정혼만하고 있다가 신랑이 갑자기 죽어갖고, 혼자 시댁에 와서 수절 함시로 혼자 삼스로 죽는 날까지 친정에를 한 번도 안 갔다고 하든만. 그 함마니 얘기를 우리 어머님이 말해주어서 잘 알제.
 그 함마니가 김씨 할머닌디, 열다섯 살 먹은 신랑한테 정혼만 하고. 신랑은 집에가 있고, 신부도 나이가 어린께 친정으로 가서 친정에서 일 년 동안 삼스로 해미기를 했제.
 그라고 일 년 살다가 근행 간다고 간디, 가서 일 년 살다가 친정에 와서 또 해미기를 해. 그때는 나이가 어려서 결혼을 한께, 신부가 집에 일 년간 있다가는 그런 풍습이 있었다고 해.
 그란디 그 할아버지가 정혼만 해 놓고 갑자기 죽어부럿어라. 그 할아버지가 열다섯 살 때 색시를 보러 비슬안 처갓집에 갔는디, 동산에 있는 벚나무에 올라가서 버찌를 따 먹다가 떨어져 죽어 부렀어라.
 그래서 색시인 김씨 할머니는 어쩌지도 못하고 죽은 사람 상여를 앞세우고, 가마를 타고 울면서 시댁인 미촌 마을로 혼자 시집을 왔어라. 그 할머니가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제. 지금 같으면 누가 오것는가, 안 오제.
 그 함마니는 신랑도 없는 시댁에서 혼자 삼스로 밤낮으로 길쌈을 해서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논을 사고, 또 모아서 논을 사고 계속 사갖고, 그때는 미촌에서 한두 번째 갈 정도로 살림이 짱짱했다고 그랬어라.
 그라고 그 할아버지 형제가 삼형제 였는디, 밑으로 동생이 둘 있었고, 큰 동생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서 살고, 막둥이 동생은 그 마을에서 살았어라.
 그 막둥이 동생이 결혼해서도 그 형수를 지킨다고 집에도 안 가고, 형수 사랑채서 서당을 열었어라. 그람시로 밤마다 형수를 지키고 보살피고 그랬다고 했어라.
 그랑께 형수 지킨다고 계속 사랑방에 있다가 집에도 못 가고 그래서 그 막둥이 할아버지 자식이 아들 하나 밖에 없어라.
 그래서 그 김씨 함마니 제삿날은 한 가지라도 더 올리고 정성을 드리제.
(조사자 : 김씨 할머니 손은 없나요?)
 청상과부 독신으로 살아서 자식이 없어라. 그래서 대를 이어 갈라고 큰 동생 장남이 이리 양자로 왔제. 그라고 그 후손들이 지금도 다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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