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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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영암읍

거저 독립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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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말기에 공출 낼 때 이야긴디, 그때 먹을 것이 부족해서 어려운 때였어. 우리 아버지가 본께, 동네에 어떤 집에 공출 낼라고 나락 한 가마니를 깡깡 쨈매 놔뒀더래.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근디 언제 공출 낼 거냐”고 한께,“다음 판에 공출 낼란다”고 하더래. 그래서“먹을 건 있냐”고 물응께,“없다”고 하더래. 그래서 아버지가 내가 책임진다고 함서“흙만 담아내면 너무 무겁고 그랑께 풀하고 흙하고 섞어서 근량 맞춰 담아내라”고 하셨어.“아무 염려 말고 공출 낼 나락은 찧어서 식구들 밥해 먹어라”고 해서 그렇게 했디야.
 그때 한 동네 공출은 이장이 책임지고 했는데 아버지 친구가 이장이었어. 아버지는 친구한테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했데. 그란디 나중에 요것이 발각이 되어 부렀어. 난리가 난 거지. 이 일을 책임져야 할 이장은 무서워서 산으로 피신 했는디, 얼마 못 가서 할 수 없이 이장이 자수했어.
 이장이 대구까지 가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디, 당시에 고등법원이 서울하고 대구에 있었어. 그때 교통이 불편하고 버스비가 어떻게 비싸든지 아예 자전거를 한 대 맞춰가지고 대구까지 타고 갔디야. 물론 별것도 아닝께, 재판 끝나고 금방 풀려날 거라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거지. 근디 못 돌아오고 형무소 살이를 하게 된 거야.
 해방 후에 나라에서 독립유공자 선정을 하는데 기록을 본께, 대구에서 형무소 살이를 했거덩. 그래서 이장은 독립유공자로 선정이 된 거야.
 당시에 이장은 광주로 이사가 살았는디, 대문에 떡하니 독립유공자 문패를 달고 나라에서 주는 보상금을 타 먹고 살았어. 그 걸 보고 우리 아버지가 죽는다고 웃었어.“내 덕에 형무소 석 달 살고 독립운동가 유공자 되았네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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