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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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영암읍

만주인이 될 뻔한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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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마을에서 함께 사셨던 작은 아버지 댁은 오남일녀의 자식을, 우리 집하고 똑 같이 두셨는디, 한바터면 작은집 식구들이 만주, 그러니까 지금은 중국 국적이 될 뻔 하셨어라. 작은 아버지가 자꼬 그 이야기를 하시곤 했는디, 우리 마을에서 이남일녀로 태어나신 작은 아버지는 일제 때 만주로 무명옷을 검정물로 물들인 천을 파는 장사를 하셨어요.
 몇 차례 장사를 하셔서 꽤 많은 돈을 벌어서 만주 땅으로 이사를 갈라고 준비했어. 먼저 그곳 만주로 가서 자리를 잡은 외삼촌께 돈을 번대로 맡기시고, 이번 한번만 더 장사를 갔다 오면 만주로 떠나려고 준비를 다 하셨다는디, 그 마지막 장삿길에 국경을 넘다가 일본 경찰에 잡혀서 그만 형무소에 감금돼 부렀어.
 벌금형을 받았기에 벌금을 보내달라고 만주에 계시는, 그러니까 돈 맡겨둔 외삼촌에게 아무리 기별을 해도 벌금을 보내주지 않아서 형무소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구만.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 청소를 하는디, 연필심 쪼가리가 떨어진 것을 주워서 이빨 사이에 끼워서 감추고 몸수색을 피해 잠자리에 숨겨놓고 종이를 구해야 하는디, 못 구하던 참에 노역을 하고 있는데, 바람에 따라 날아오는 종이를 얼른 발로 볼봐서, 아무도 모르게 그것을 접어 이빨 사이에 숨겨다가, 그것으로 이곳 주소를 적어 출소 하는 사람 편에 보내서 우리 친척 중에 공부를 하신 분이 벌금을 갖고 와서, 출소를 해서 집으로 오다 보니 세월이 많이 지나 그만 해방이 되어서 만주로 이사를 못 가게 되어 부렀어.
 벌금을 못 내서 이곳에서 계속 살게 되었다는 얘기인디, 만약 작은아버지께서 형무소에 안 갇히고 장사를 무사히 하셨더라면 작은집 동생들과는 해외 동포가 되었을 것이어. 그라고 해방될 때까지 출소를 못 했다면, 중국에서 못 돌아올 뻔 한것이제. 그랑께 세상일은 한 치 앞도 분간 못하는 것이여. 안 좋은 일이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되는디, 잘못된 생각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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