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광산
광산마을
우리 외할머니한테 들었는데, 기동에 광산김씨가 터를 잡은 얘기여. 내 증조 외할아버지가 나주 공산에서 동학군을 조직해갖고 나와서 장흥 석회들에서 전면전을 벌이는데, 그때 그 석회들 전투는 말이 전투제 학살이어라, 학살. 왜냐하면 그 당시 병영에만 해도 총을 쏘는 소총수가 열아홉 명이나 있었고, 일본군들이 최신 미군 미제 자동 기관총을 걸어놓고 갈겨부렀어라. 그래갖고 들판에서 싸우는데 그 당시 동학군은 기껏해야 장총이나 칼 창 그런 것 밖에 없었잖아요. 들판에서 자동 기관총으로 갈겨분께, 그대로 걱서 다 죽어 부렀어라. 그야말로…
우리마을은 반촌이라 처녀들이 마을에 함부로 나오들 못 해. 새각시가 시집오면 삼년 동안 바깥출입을 못하고, 십년 가찹게 독천장에 못 나갔어. 밭에도 못 나가고, 타성 집에는 아예 못 가. 여그는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동서로 양지마을 음지마을이 갈라져 있는디, 양지마을에서 음지마을로 시집와도 친정에 못가. 여그는 삼백 년 된 집영제 규율에 따라 엄격하게 했어. 잘 못하면 꾸짖고 그래. 여자는 집에서 밥이나 했지. 동네장에는 시어머니가 가지. 시어머니가 안계시면 시아버지가 가고 그랬어. 영산강 막기 전에는 독천하고 광산은 부촌이었고…
최근 십여 년간 영암에서 케이블카 설치할라고 고생들 하지라. 그런데 영암에 본래 케이블카가 있었다는 것을 안 사람이 거의 없어라. (조사자 : 영암에 케이블카가 있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인데 어디에 있었어요?) 여기 독천 우시장에서 장정산 중턱 팔부능선 정도까지 케이블카가 있었어. 일본 사람들이 만든 것인디, 광부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맨든 것이어. 당시 요기 낭주중학교 위에가 다 함바집이여. 양철지붕으로 된 광산촌이 꽉 찼어. 장쟁이산에서 일한 인부들이 거그서 살고 그랬지. 한 때는 광산에서 채굴했던 인부가 이천 명이 넘었다 해.…
장쟁이산은 여그 사람들한테는 명산이고 영험한 산이라고 해라. 옛날에는 비가 안 오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제. 가뭄이 들면 하늘만 쳐다보던 주민들이 장쟁산에다 기우제를 지냄시로 산에다 불을 피우고 그랬는디, 특별한 것은 여자들이 호맹이로 묘를 판다는 거여. 남자들이 하면 살이 난께 여자들이 했어. 비가 짠뜩 안 오면“누군가 장쟁이산에 묘를 써서 하늘이 노해서 날이 가문다”고 했어. 그래서 장쟁이산에 누가 몰래 생묘를 쓰믄 이 근방 동네에서 누군가“가자”그라면 너도나도 호맹이를 갖고 산에 올라가. 여자들이 올라가지. 수도 없이 많은…
지금부터 한 백년 쯤 되았나. 독천에 광산마을이 있는디, 언제가 여름에 가뭄이 너무 심해서 그 동네 시암물이 다 말라 부렀디야. 시암물을 질러다 묵다가 안 나와서 보니까, 짱어같이 생긴 것이 시암 속에 있드랴. 그래서 고놈을 잡아다가 삶아 부렀는디, 누구는 그 국을 묵고 누구는 안 묵었어. 고 놈을 묵음시로 이것이 이무기다 아니다, 짱어다 아니다 실갱이를 했다는구먼. 그란디 그 뒤로 장어탕을 묵은 사람들이 하나 씩 픽픽 쓰러지더니만, 그만 서너 사람이 죽어 불었디야. 우리 엄니 말씀인디 그놈이 이무기도 아니고 짱어도 아니고 …
이조 말기였제. 우리 광산김씨 동네에 학문이 뛰어나고 문장이 기가 막힌 선비가 있었어. 이 분이 과거시험을 보러 가게 되었는디, 동문수학하던 이웃마을 선비 두 분하고 함께 동행을 하게 되었어. 세 분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간 것이제. 그런데 그날 밤 문중 어른 한 분이 기묘한 꿈을 꾼 것이여. 꿈속에서 보니까 소나무 위로 세 마리 학이 날아와 앉더라는 것이여. 큰 소나무 위에서 한참을 놀다가 날아가는디, 두 마리만 훨훨 날아가고 한 마리는 나무 아래로 톡 떨어져불더라는 것이여. 그래서 이 어르신이 얼른 문중회의를 열어서 자초지…
독천 광산이 내 친정이어라우. 걱서 에랬을 때 들은 이야기지라. 광산 시암청 뒷동네 산 밑에 거기 사는 돈 많은 양반이 있었는디, 그 양반이 폐병이 걸려가지고 집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쓰고, 좋다는 것은 다 해 보았는디, 그래도 안 나았지라. 그래서 마누라가 환장해가지 돌아다니다가 어뜬 사람들이 애기 시체를 푹 삶아 먹으면 낳는다는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걸리지만 어쩌겠어, 자기 영감 살리려면. 그래서 애기를 꺼내다가 먹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그전에는 짐승들이 애기들 묻으면 파먹는다고 해서, 독에 넣어서 묻었는디, …
우리 영암군에는 군서면 모정, 덕진면 강정, 도포면 회호정을 합쳐 삼정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는데 모두가 광산 김씨 집성촌이지요. 우리 마을은 회호정이라는 이름이여.‘돌아올 회’자에‘호수 호’,‘정자 정’을 써서 회호정이라고 하는디, 아주 오랜 옛날 우리 마을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진 곳이었어. 그런데 왜 호수가 되돌아온다는 회호정이란 이름이 되었을까. 전해 내려온 애기를 보면 어느 풍수지리에 밝은 도인이 마을에 나타나 이곳은 장차 바다가 없어지는 형국으로 물이 물러가고 없어져서 새로운 땅이 생기리라 라고 예언을 하였다는 것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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