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마을
남산리 마봉고분
남산1리 영선마을
그때 당시에는 영암군에서 군서에 있는 문수암 서당이 제일 큰 서당이고 그 다음에 우리 동네 춘동 열락재가 두 번째여라. 그라면 몽학이 있고 몽학선생은 애기들을 갈치는 선생이고. 큰 선생이 와서 큰 공부를 갈치면 자연히 대학교여라. 지금도 대학교 교수들이 학식이 넉넉한 교수가 갈쳐야. 이럴 태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차근차근 실력이 올라 가제라. 이 서당 열락재서 그전에 무송 현OO씨도 여그와서 공부했다고 하고. 낭산 김준연 씨도 여그서 글을 읽었다고 한디. 그 자료나 유래가 기록으로 쭉 내려왔으면 역사가 되고 그란디 그…
도청 소재지가 생길 때 풍수지리학적으로 유불선을 이루는 삼각지 그 중간지점에 자리 잡았다고 했어라. 유불선이 무슨 말이냐 하면, 목포에 유달산, 무안 승달산, 그라고 우리 마을 선황산 해서 세 산을 말하제라. 그리고 우리 마을도 이 선황산 맥을 받아서 자리 잡았어라. 옛날에는 선황산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했는디, 호랑이 굴도 있었어라. 옛날부터 비가 안 오면 거그다가 불을 피우고 기우제를 지냈어라. 선황산에서 기우제를 지냈제라. 내 친구가 젊은 시절에 제관으로 추천이 되었는디, 그때 당시 산고 달이라고 제외되어 부렀어라. 아주 깨…
일제때 우리 아버님이 괜찮게 살았는디, 그 당시 무역업을 함시로 인천에서 함경도 원산으로도 가고 그랬어라. 지금 같으면 이북이제. 부산으로 갔다가 일본으로 가서 오사카에다 도매상을 차리고 큰 장사를 하고 그랬어라. 아버님이 무역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제. 그 때 쩌기 남산포 원둑을 막다가 인자 돈이 부족한께, 쪼금 덜 막고 다시 일본으로 돈 벌로 들어 갔제. (조사자 : 원둑은 일본 사람이 막지 않았나요?) 아버님이 그 당시에는 무역업을 한께 돈 잘 벌었는 모양이제. 돈이 있은께 원둑을 막었는디, 막다가 인자 돈이 부족한께,…
춘동리 용흥 뒷산 봉우리가 천마봉인디, 거기서 말이 하늘을 날랐다 해서 그라고 부르고, 그 산이 천마산이어라. 그랑께 정확히는 모르것는디, 마한 시대인지 백제 시대인지 그때쯤 될 거여. 옛날에 그 당시 말을 탄 한 장수가 적군에게 쫓겨서 천마산에 이르렀는디, 삼면이 다 시퍼런 바닷물이 넘실대는 막다른 지경까지 쫓겨 왔는디, 장군은 인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장수는 인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에게 사정 했어라. “나를 살리려면 제발 저 건너편 산으로 뛰어 넘어다오”라고 말하자마자, 말이 진짜로 폴딱 뛰어서 하늘을 …
육이오 때 있었던 일인디, 우리 마을 사람들이 남산 뒷산 아래 계곡으로 갔는디, 마을 사람들 전부 갔어라. 그란디 그때 얘기 듣기로는 전부 죽여불라고 그랬다고 한 것 같아라. 그란디 죽이지는 않고 그때 다 살아왔어라. 윤씨라고 마을 위쪽에 좋은 집 지어갖고 살었어라. 그란디 그날 저녁에 마을 사람들이 그 사람을 죽여부렀네. 그 사람이 좌익인디, 마을 사람들 다 죽여 불라고 우익 머리 쓴다고, 그라고 집도 불 질러불고, 즈그 아버지는 불에 타져서 죽고 그랬어라. 나도 피난 갔었어라. 그때 철모르고 따라 갔었제. 죽을지 모르고, 인…
우리 집 양반이 소를 키운다고 첨에 쩌그 남산에서 송아지 한 마리를 십팔만원을 주고 사갖고 왔어. 그래갖고 늘리고 늘리고 해서 칠팔 마리까지 늘렸제. 그때가 소 파동이 나갖고 겁나게 비쌀 때였어. 그래서 안 폴고 새끼를 나서 키고 키고 했었제. 집에서 키움시로 소가 늘어난께, 냄새 난다고 누가 면사무소에 민원을 넣고 징했제. 그랑께 면직원이 집에도 오고 그랬지라우. 근디 어미 소가 이상하게 아픈가 밥도 안 먹고, 힘도 없고 그냥 눈만 껌벅 껌벅 하고 있은께, 나도 잠도 안자고 옆에가 같이 있었제. 한 십년을 내 새끼처럼 키웠은께…
시종면 송산마을 앞에서 남쪽으로 칠백 미터 앞에 위치해 있는 장사바위라는 바우가 있어. 그것은 태산봉과 남산봉의 중턱에 있는 디, 삼백 키로 이상 된다고 전해 져. 근디 옛날에 우리 마을에 네 성받이가 살았다고 해. 그 네 성씨들이 서로 자기 들이 잘났다고 평상시에도 쫌 알력이 있었다드마. 그래 어느 날 힘깨나 쓴다는 각 성씨 장정 네명이 내기를 하였다네. 저 멀리 태산봉을 가리키며 장사바위를 지게를 가지고 가 든 사람을 최고로 인정해주자는 내기였어. 김씨 김만호, 강씨 강달서, 백씨 백항내, 최씨 최두환 네 명이 나섰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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