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남해포
남해포
옥야리 상촌 마을의 북쪽에 동서로 뻗어 마을을 감싸고 있는 구릉에 있는 무덤들로, 남해포로 가는 옛도로 양쪽에 분포한다. 모두 28기인데 4기의 독무덤(옹관묘)과 후대의 무덤 2기, 그리고 1개의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봉분의 형태는 긴 타원형이고, 영산강 유역 독무덤의 일반적인 양식으로, 봉분 자락에 도랑이 둘러져 있다. 14호 무덤은 흙을 파고 하나의 독무덤을 안치한 후, 봉토를 쌓은 단독장으로 소형 무덤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암 옥야리 무덤들은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옥야리 상촌 마…
쩌그 보이는 저 들이 석회들이고 건너편이 나주 석회마을이여. 그전에 나주 목사가 여그 남해포 신당에 제를 모시로 올라면 저 들을 건너서 왔제. 나주 목사가 지금 같으면 도지사라고 하드만. 그라면 국가 안정을 빌기 위해서 남해 신에게 제를 모시로 옴시로 말 타고 가마 타고 횃불을 들고 왔다고 했어. 그때는 저쪽에서 나주 목사가 이리 배내골로 건너오는 길이 흙으로 딱 되어갖고 뚝이 있었어. 그라고 석회 거그는 다리가 없고 그란께 큰 돌로 다리식으로 만들어 놨어, 그리 건너오라고. 지금은 하천을 준설함시로 다리가 없어져 부렀제. …
중계마을 주변을 다래기라고 불렀어. 마을 앞에 저 넓은 들이 석회들이고, 그 가운데로 삼포강이 흐르고 있는디, 요쪽은 시종이고 저쪽은 나주 공산이여. 옛날부터 양쪽 사람들이 다님시로 농사를 함께 짓고 살았었어. 옛날에 교통수단이 없을 때, 걸어서 다닐 때 들판을 건너 면은 삼포 강물이 흐르는 좁은 데가 큰 돌다리가 있었어요. 거그를 시종 사람들이 건너가지고 삼쟁이라고 진 산길을 걸어서 댕겼지라. 광주나 서울로 가려면 그리해서 영산포역을 가고 장에도 가고, 오다가다 심들면 주막에서 탁백이도 마시고 그랬지요. 그 돌다리가 강폭이…
들은 얘긴 디, 남해포가 목포로 가는 교통 요지여서 옛날에는 나락 공판을 여그다가 쟁여 났다고 합디다. 그란디 반란군들이 밤에 와서 기름 쳐갖고 불질러 부렀어. 그때는 남해포가 해상교통이 컸었제. 창고가 없슨께, 바닥을 시멘트로 만들어서, 시종면 일대 쌀을 노적해서 마람으로 둘러갖고 쟁여 났었제. 군인은 낮에 활동하고 북한 사람들, 반란군은 밤에만 활동한께 밤손님이라고 불렀다고 합디다. 그랑께 육이오 전에 일 인디, 공출 공판을 여그서 봤어. 농지세도, 세금도 나락으로 받았고. 농지 개혁 되아갖고 분배해서 연부로 받었어. 그런…
남해포가 항구였는디, 목포까지 여객선이 다녔어. 디젤 통통선인 발동선이 다녔제. 나도 목포로 학교를 나감시로 그리 집에를 왔다 갔다 했어. 목포로 감시로 영산강을 쭉 따라 가제. 그래서 중간에 가다가 울득목 이라고 있었는디. 거그는 째간하니 좁아서 물이 무지하게 쎄. 그리 지나서 목포로 다녔어. 가다가 보면 상괭이라고 있었어. 꺼먼이 돌고래처럼 생겼는디. 배타고 가믄 폭 나왔다 들어가고, 막 달려가고 그라드라고. 여그 남해포가 교통 요지여서 목포로 많이 댕겼는디, 진도나 완도는 원거리여서 안 댕겼어. 그라고 종선이라고 뗏마가 …
어릴 적에 우리 아버지한테 들은 닭머리마을 하고 지네마을 이야기여라. 닭머리마을은 딱 닭 대가리여, 그렇게 생겼어요. 지네마을은 옥야리 상촌 서촌마을인디, 지네 형국이여서 그라고 불러. 닭이 지네를 쪼사불고 싶어도 못 쪼사. 마을 사이가 바다여서 영산강이 제 사이로 흐르고 있어서 닭머리 쪽은 상당히 깊어. 그래서 거그가 소재지까지 오는 길목이었어. 닭머리에 항구가 있었는디, 거그서‘인진호’라는 배가 목포로 다녔다 하대요. 그라고 지네 쪽은 물이 적은께, 물이 많이 들 때만 다니고, 남해포는 정식 코스로 다니고, 일반 배들은 닭 …
남해용신이 왕건을 도와서 몽탄으로 피신한 얘기는 많이들 알고 있고, 현종이 남해용신을 찾은 얘기는 잘 모른 것 같아요.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그 여덟 번째 왕으로 현종이 등극했어. 그란디 만주에 있던 오랑캐들이 왕이 정통성이 있네 없네 함시로 괜히 트집 잡아서 개성에 쳐들어왔어. 그때 힘알태기 없는 현종은 몇몇 식솔만 데리고 기막힌 피난길에 올랐는디, 여그 나주까지 피신해 왔어요. 나주까지 내려온 것은 전설이 아니고 실화여. 다 기록이 되아 있어. 그때가 일천십일년 초겨울이었는디, 나주에서 태조 왕건이 남해용신의 도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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