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주중학교
낭주농협 상공
영암 낭주 농협 광장
낭주골의 옛노래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큰 권력을 가지는 것으로 여겨지잖아. 그런디 예전에는 대동계에 들어가는 것이 큰 것이였제.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사성받이라고 해주최씨, 낭주최씨, 조씨, 박씨 만 들어갔지. 쌍놈이나 돈 없으면 들어갈 생각도 못했제. 그리고 들어가려면 지금의 국회 청문회 하듯이 사람을 앉혀두고 심사를 봤제. 그래가지고 합격되면 투표를 했어. 흑백 바둑돌을 가지고 주머니에 넣었어. 돈도 많이 썼제. 흑돌은 떨어지는 것이고, 백돌은 들어가는 것이지. 그곳에 들어가고 싶어서 아주 난리였어요. 꼭 지금…
최근 십여 년간 영암에서 케이블카 설치할라고 고생들 하지라. 그런데 영암에 본래 케이블카가 있었다는 것을 안 사람이 거의 없어라. (조사자 : 영암에 케이블카가 있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인데 어디에 있었어요?) 여기 독천 우시장에서 장정산 중턱 팔부능선 정도까지 케이블카가 있었어. 일본 사람들이 만든 것인디, 광부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맨든 것이어. 당시 요기 낭주중학교 위에가 다 함바집이여. 양철지붕으로 된 광산촌이 꽉 찼어. 장쟁이산에서 일한 인부들이 거그서 살고 그랬지. 한 때는 광산에서 채굴했던 인부가 이천 명이 넘었다 해.…
고죽의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구림에서 살았는데 임진왜란 때 아무래도 외갓집이 든든할 것 같아 그리로 가기로 했어. 외갓집은 서호에 있는 임 목사의 본가라 거기에는 많은 장정을 거느리고 있으니 훨씬 안전했겠지. 거기가 어디냐면 지금 낭주 최씨 문각, 서호정 국사암 옆이 임 목사 집이였어. 임씨 어머니를 모시고 배를 타고 갔는데, 가는 도중에 왜구한테 들켜버렸어. 당시 고죽의 아드님은 사십 중반이고 어머니는 육십 중반이었는디, 왜구가‘가진 것 모두 내놓으라’고 함시로, 검열하다 발견되면 죽인다 했어. 할 수 없이 가진 것 다 내놓았…
나는 낭주 최가인디, 신랑 얼굴도 안 보고 나주 임씨 집안으로 시집갔어라. 나는 개띠고 우리 아저씨는 말띠였는디, 그렇게 만나면 좋다고 우리 작부님이 혼인해라 한디, 싫지 않습디다. 다른 사람은 다 싫다 했는디, 얼굴도 보지 않고 그냥 하란대로 했어라. 그것이 다 인연 갑습디다. 시부모 없이 동서 밑으로 들어 갔는디, 시집살이 안 시켰어. 몇 년 살다가 새집 지어서 잭임 났어. 산에 솔낭구 많은께, 목수 불러서 비어다가 집 좋게 지어서 나왔어라. 그란디 영감이 그 동네에서 유명한 한량이여. 내 애간장 많이 녹였어. 걸핏하면 어디 …
가선대부 공조참판 해주오공 신도비명유명조선국 가선대부 행 공조참판 겸 동의금부사 춘추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 통훈대부 사간원 헌납 해주오씨 신도비명 병서통훈대부 전 현릉참봉 월성 최영조(崔永祚)가 짓고, 성산 현재승이 쓰고, 자헌대부 행 종경원(從卿院) 정(正) 완산 이재량(李載亮)이 비액(碑額)의 전서를 썼다.선황제 즉위 10년 계유년, 우리 아버님이 동부승지(同副承旨)로 계실 때 소를 올려 시폐 (時弊)에 대해 진언하였는데 말이 매우 얌전하면서도 강직하였으니, 임금께서 깊이 치하하고 받아들였다. 이에 뭇 권간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
증 가선대부 한성좌윤 밀성 박동윤 묘 배위(配位) 정부인 선산임씨낭주 치소 서쪽의 경계 고을에 있는 천봉(川逢) 초등(草嶝) 간좌는 곧 한성좌윤 (漢城左尹)을 역임한 박공의 의관이 묻힌 곳이다. 공의 휘는 동윤(東尹), 자는 은경(殷卿)이며, 고휘당(顧諱堂)은 그 호이다. 밀성군 척(陟)의 후예로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윤문(允文)은 공의 13대조가 된다. 9대조 갱(賡)은 정종(定宗)의 부마로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가 되었다. 8대조 서창(徐昌)은 함경감사로 성화 (成化) 정해년에 정난공신이 되었다. 5대조 종(宗)은 호가 월교(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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