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누릿재
월출산 누릿재에서 본 전경
누릿재
지금부터 천년도 더 된 야그여. 월출산 고을에 원님이 젊은 나이에 죽어 부렀는디, 염라대왕 앞에 간 원님은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한 것이 하도 억울해서“기회가 된다면 그간 하지 못한 착한 일을 하고 싶다”고 간청 했다네. 염라대왕은 젊은 원님에게 목숨 회생의 기회를 주는 대신에 이승으로 돌아가는 조건으로 삼백 냥이라는 큰돈을 요구했어요. “지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없습니다.”라고 원님이 말하자, 저승사자는“저승에는 덕을 쌓은 만큼 채워지는 곳간이 있으니 그곳에서 가져오너라”고 명령했어. 원님이 자신의 저승곳간에 가본께, 거그에…
옛날에 사람들이 자신의 땅을 구하기가 힘들었지라, 특히 일반 서민들은 돈도 없고 그렁께 지게에다 관을 지고 장례치를 곳을 찾았는디, 부모 장례를 치르기 위해 오복 더위에 누릿재를 넘어 가는 사람들이 하도 더운께, 계곡에서 목욕하고 시신을 돌무덤으로 묻어는가봐, 그렇게 돌로 쌓은 곳이 많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산에 도로를 내면서 없어져 버렸어요. 그 계곡이 송장물 물통거리라고 유명 했지라. 사방에서 몸이 아파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겁나게 많았지라, 그래서 지금은 덜하지만 옛날에는 그곳에서 물 마시려고 엄청 야단법석이었어라, 헌디 지금은…
영암읍 학송리와 강진군 성전면 신월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은 흔히 초령 즉, 풀치재로 말을 하는디, 그것은 아조 잘못 알려졌당께요. 우덜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영암군과 강진군의 경계는 월출산 동쪽 누릿재이고, 이 길은 삼남길로 알려져서 이른바 신작로가 생기고 국도 십삼 번이 지나면서 풀치재가 지금은 버스 등 많은 차량이 이용하는 길이 되었단 말이여. 이 풀치재는 오래 전에는 불치재라고 불렀는디 그 이유가 아주 재미있지라. 옛날에 월출산 근처에 효성이 깊은 사람이 살고 있었는디, 그 어머니가 병에 걸리고 말았어. 그래서 효성이 …
옛날 해남이나 강진에서 한양으로 갈라믄, 월출산 옆탕구리 누릿재를 넘어가야 했지라. 정약용 선생님이 유배갈 때도 이 질을 넘어서 강진 다산 초당으로 갔고, 소장수들이 소를 사고팔고 할 때도 이 질을 넘어 댕겼어라. 옛날 꼰날에 여그 누릿재 아래에 주막 하나가 있었는디, 어느 날 고개 아래 주막집으로 시집온 며느리가 밤중에 시아버지가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을 봤어. 주막집에는 고갯길이 높고 멀고 인적이 없어서 오후 늦게 도착한 행인들은 그 주막에서 자고 아침 일찍 떠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디, 어느 날 주막집 주인 임씨가 소를 폴…
어느 무더운 날씨에 등이 굽은 김씨는 아버지 시신을 지게에 지고 누릿재을 넘어 물통거리에 다다랐어. 옆 나무에 아버지 시신을 받쳐 놓고 흐르는 땀을 씻기 위해 물이 떨어지는 물통거리 폭포에 발을 담갔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폭포 아래로 빠져 버린 거야. 물에 빠져 버린 꼽추 김씨는 그 폭포수 물의 시원함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는데,“아~ 세상에 이런 일이”꼽추인 자기 몸이 쭉 펴진 거야, 놀란 김씨는 정신을 바짝 채리고 봐도 자기 몸의 변화를 믿을 수 없어 그만 그 자리에서 기절한 거야. 수염을 질게 길은 노인이 나타나“너의 조상…
지금은 어쩐가 모르지만 옛날에는‘황칠이 금보다 비싸다’고 했어요. 그 만큼 황칠이 비싸다는 얘기지라. 근디 황칠이 어디서나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아주 일부 남쪽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유식한 사람들이 황칠나무는 저쪽 완도랑 해남 아래쪽에서만 자란다고 하던디, 그것이 전부 사실은 아니오. 모르긴 해도, 적어도 저기 월출산 누릿재까지는 분명히 있었소. 그것도 많이 자생한 황칠나무가 빼곡하게 있었는디, 어째 모른다요. 황칠나무가 누렇게 있는 곳이라 해서 이름도 누릿재라 했당께라. 참 거기를 황치고개라고도 하고 황칫재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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