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매월대흥차등
[영상] 매월마을 일대
매월마을 일대
매월대흥차등
학산 매월리 뒤에 산에가 김완 장군 아버지 산소가 있는디, 그 묘에 대한 이야기거든. 김완 장군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제. 이괄의 난 때나 정유재란 때 크게 활약한 양반 아닌가. 김완 장군이 어렸을 때여. 열대여섯 살 먹었는디, 아버지가 역적으로 모함을 당해갖고 옥살이를 하게 되었는디, 그때 역적은 엄청나게 고문을 한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하다가 억울하게 돌아가셨어. 그래갖고 한양에 올라가서는 아버지 시신을 모시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질에 은적산 밑에까지 왔는디, 날이 저물어 발길을 재촉하여 집으로 향하고 있었제, 근디 어디서 뭔…
우리 매월마을에서 저기 서호로 넘어가는 길에 금굴이라고 있어라. 겁나 질어. 박쥐도 살고 그란디 그 앞을 지나오다가 도깨비불을 봤는디 혼자 본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봤어요. 광주에서 서호면 성재리로 오는 버스 타고 오는디 사람들이 겁나 있어. 옛날 버스 안내원 있던 시절이여. 표받고“오라이”하고 소리치던 안내원이 있었는디, 빡빡하게 타고 온께, 누가 같이 탔는지도 알 수 없어라. 성재리에 도착하면 해가 져. 거그서 내려서 이 산골짜기를 넘어오는 길이 있어. 다들 그렇게 산을 넘어 댕겼어라. 깜깜한 고개를 넘어오는디, 앞에서…
우리마을은 반촌이라 처녀들이 마을에 함부로 나오들 못 해. 새각시가 시집오면 삼년 동안 바깥출입을 못하고, 십년 가찹게 독천장에 못 나갔어. 밭에도 못 나가고, 타성 집에는 아예 못 가. 여그는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동서로 양지마을 음지마을이 갈라져 있는디, 양지마을에서 음지마을로 시집와도 친정에 못가. 여그는 삼백 년 된 집영제 규율에 따라 엄격하게 했어. 잘 못하면 꾸짖고 그래. 여자는 집에서 밥이나 했지. 동네장에는 시어머니가 가지. 시어머니가 안계시면 시아버지가 가고 그랬어. 영산강 막기 전에는 독천하고 광산은 부촌이었고…
여그 부치개산 능선을 넘어가면 집채만한 바우가 있어. 얼매나 큰지 둘레가 이 우산각 만 해. 근디 이상하게 그 바우를 보면 한 가운데가 딱 금가 있어. 그 내력을 보면, 영암군 원님 아들이 여기까지 사냥하러 왔는디, 큰 애기들이 산에 나물을 하러 왔는디, 그 중에 여그 매월리 처녀를 보고 한 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졌어. 원님 아들이 사냥을 마치고 집에 돌아 왔는디, 잠을 자도 꿈속에서 처녀가 보이고, 사물을 봐도 처녀가 보이고, 책을 봐도 처녀가 보이고,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해도 처녀만 보인 것이여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원님이 아…
옛날에는 사람들이 요 앞에서 배타고 멀리 댕겼어요. 해방 후에도 돛배가 많이 다녔는디 그것 타고 목포까지 댕겼지라. 앞에 작은 돛이 있고 중간에 엄청 큰 돛이 달렸고 뒤에 젤 작은 돛이 하나 더 있었는디 그것을 치라고 그래어요. 바람이 잘 불면 잘 가요. 짐도 솔찬이 많이 싣고 댕겼지라. 나락가마니도 가득 싣고, 사람도 태고 댕겼지. 바람으로 간 것도 있고, 기계 달아서 통통통 가기도 하고 그랬어요. 배 탈라면 배싹 줘야한디, 성게라고 했어요. 목선 타면“성게를 내놓고 가시오”그랬어라. 여그 해창 앞까지‘영암호’가 다녔는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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