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바우
월악리 바우재
굴바우 현대호텔
마을 뒤에 높은 산이 있는디, 봉우리가 세 개 있어라. 꼭대기가에 큰 바우가 입을 떡 벌리고 있는디, 그것이 입바우여라우. 그라고 바우가 입을 떡 벌리고 있응께, 앙 하고 입을 떡 벌리고 있응께, 우리 마을에는 아픈 사람이 하나도 없어라우. 그때는 홍역 같은 것이 와갖고 겁나게 죽었는디, 바우 입이 무성께 병이 무서워서 우리 마을에는 못 들어왔어라. 그라고 다른 데는 전염병도 많이 왔는디, 우리 마을은 하나도 안 죽었어라. 우리 마을에는 동네 아그들이 해마다 올라가서 떡을 준께 입바우가 은혜 갚은 것이여라. 그랑께 아픈 사람도 …
아걸이 장수가 우리 마을 부암 태생인디, 여그 김 씨들 집안이여 김아걸 이라고 있었어라. 그 사람이 전에 그렇게 힘이 좋고, 용맹이 있고 아조 날쌘 장수였어라. 말 들리기로는 아걸이가 쩌그 북 바우 산 꼬작에서 백목 이십 자짜리, 그랑께 배 짜갖고 한 필이 이십 자고, 한 자가 육십 센틴디, 상당히 길제. 여그서 저 집까지는 되었것어라. 그것을 머리에다 두르고 북 바우 산 꼬작에서 여그 말메뚱 있는 대로 뛰어서 날아서 이쪽으로 떨어지면 볼만했다고 했어라. 백목이 나를 것 아닌가, 그라고 도구통을 메고 담장도 뛰어넘어 댕기고 그렇…
우리 마을 쩌그 위쪽에 중산리에. 어렸을 때 들은 말인디, 조선시댄가 언젠가 벼슬을 지내고 내려와서 큰 기와집에 살었어라. 그 사람을 곽 사간이라고 불렀는디. 그 사람 부자가 벼슬을 끝내고 우리 동네서 살았다고 했어라. 그 사람 부자가 벼슬을 끝내고 내려와서 살 때 여가 충효정인 부암서원이랑 거시기 곽 사간 부암영당도 있어갖고 마을 이름을 부암이라고 불렀다고 했어라. 임진왜란 때 다 불타불고 지금은 터만 남었제. 그 사람이 중산리쪽에서 살 땐디, 함평 이씨 조상 묘를 이장할라고 한디, 지관이 쩌그 북바우산 꼭대기에 묘를 써야 …
그 전에 옛날 어른들한테 말만 들었제. 그랑께 문수포 마을인디. 처음에는 우리 마을이 여그 여끝 형국이 물소 형국인디. 무소형국 이라고 무수개 라고 불렀다고 했어라. 그라고 지금은 바다가 막어져부렀는디, 쩌그 한 일 키로 쯤 된 곳에 큰 안이라고 작은 돌섬이 하나 있는디. 물이 허벌나게 들어도 거그 꼭대기는 물이 안 차. 거가 소 말뚝이여, 소를 메는 말뚝 섬. 그라고 중간에 작은 안이 가 있었는디 없어졌어라. 그라고 여 끝에 큰 당소나무 두 개가 있는디 그것이 소뿔이여. 그라고 그 아래 바위가 소 핑갱 바우고. 지금은 잡목들도…
마을 앞에 장수부락에서 우리 마을로 오는 길가에 선바우가 있는디. 그 돌이 요쪽을 보고 있을 때는 우리 부락 사람들이 잘 되었는디. 저쪽 장수 쪽으로 저절로 돌아가 부러 갖고, 그 운이 그쪽으로 가 부러서 지금은 장수마을하고 학평 사람들이 잘 되고 잘 살아 부러요. 동네가 부자가 되고, 그라고 면장도 나오고, 선생도 나오고, 조합장도 나오고 그랬어라. 그쪽 동네도 그런 선돌이 있는디, 그 돌을 볼라고 돌아가 부렀는지도 모르것어라. 그란께 선바위가 어느 날 혼자 돌아 부렀당께. 그 마을에서는 선돌에다 제사도 지내고 그라든만, 요새는…
선황산 호랭이 굴에 부처가 있는디, 옛날에는 부처가 없었어도 그래도 거그서 공을 드렸어라. 그란디 절에서 먼 행사를 해갖고 돈을 얼마씩 걷어서 부처를 만들었어라. 보살님이 거그다가 이름 성을 써 놓으면 잘된다고 그랬어라. 그래서 돈 내고 자석들 이름 쓰고 공 드리고 그랬제라. 언젠가 밭에서 일하고 있는디, 어떤 늙은 스님이 가다가 이 마을 형세가 새가 날개를 펴고 나는 형세라고. 그라고 저 꼭대기 바우가 머리라면서 마을이 참 좋다고 하든만요. 그란디 그 굴에가 산신 부처가 있어야 쓴디, 돌부처가 있은께 별로 안 좋다고, 산…
우리 동네 이름이 사기골이라고도 했어라. 저쪽 골창에서 옛날에 사기를 구워서 만들어서 여기서 배로 싣고 나가고 그랬다고 했어라. 그전에 거기가면 가마터가 있었는디, 너무 오래 되야서 없어져 부렀어라. 지금은 어디가 있었는지도 모르것드라고. 사기골을 사래골이라고 발음해서 부르기도 했는디, 본래는 마을 이름이 화암이라고 해. 왜 화암이라고 해야 하냐면 마을 뒤에가 큰 바우가 있는디, 검정 바우라 물기가 있어서 반짝거려. 그래서‘빛날 화’자‘바위 암’자를 써서 화암이어요. 아주 옛날부터 그‘바우가 빛을 내서 마을에 비추면 마을이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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