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밤재
밤재
우리 동네에 심이 엄청 씬 머슴이 있었는디, 동네 박길동 씨 처 외숙이어. 체력은 작아도 장사여 장사. 넘의 집 머슴 삼시로도 성질머리가 고약하고 그래. 소를 잡고 쟁기질을 해도 사나운 소를 줘야 해. 온순한 소는 심 없다고 싫어하고 사나운 뿌사리를 데려다 억시게 일 시켜. 말 안 들으면 콧등에다 간대를 심어서 끌고 다녀. 한번 수틀리면 방에서 나오덜 안 해. 방에 틀어 앙거서 꿈쩍도 안하고 탁백이만 먹어. 몇 날 며칠을 통파고 있다가 기분이 누구러지면 산에 가서 솔낭구 가지를 쳐 와. 밤재 묵동까지 가서 나무를 해도 어마어마하…
전에는 독천장이 이 일대에서 젤 큰 장이었어. 삼호 용당에서 여까지 장보러 오고, 저기 성전에서 밤재 넘어오고, 계곡에서 민재, 가래재 넘어서 여그 까지 몇십 리를 걸어왔어. 엄청 큰 장이었어. 아무리 많은 물건을 갖다 놔도 다 팔려버려. 사람들이 허천 나게 사 간다고 그래서 허천장이라 했어. 영암에서는 젤 컸어. 독천장에는 일대 바닷가에서 잡힌 해산물이 많고, 소시장이 풍성했어. 문수포에서 낙지, 운조리 많이 나오고, 성재리 쪽에서 맛이랑 기, 대갱이 랑 무지하게 나왔어. 소팔러 해남에서 여기까지 가래재 넘어 와서 안 팔리면 도…
여기 밤재는 독천하고 성전을 잇는 유일한 길이어. 산이 깊어 아흔아홉 구비를 넘어야 했는디, 지금도 그 길이 있어. 이 밤재를 넘을라면 산적도 조심해야하고 들짐승도 조심해야 한디, 이 밤재 길을 삼호 사람, 독천 사람들이 많이 넘어 다녔어. 아흔아홉 구비를 다 돌라믄 해가 저문께, 저 아래 지금 저수지 자리에 여각이 있었는디, 거그서 잠을 자고 아침에 넘어가. 여럿이 모여서 넘어가야 해. 열 명 정도 모태서 넘어야 안전한께, 성전에서 올 때나 여그서 갈 때 그라고 떼지어 가. 밤재를 넘기 전에 길초에서 바위에다“퉤”하고 침을 뱉고…
내가 본 것은 아니고 들은 얘기여. 저기 강진 넘어가는데 신작로가 처음 생기고 트럭이 간혹 다닐 적 얘긴디, 그 때는 트럭에 짐만 싣고 댕긴 것이 아니고 사람도 막 타고 다녔어. 언덕 올라갈 때는 사람들이 내려서 밀고 내려갈 때는 타고 그랬제. 밤재를 올라가는디, 갑자기 집체만한 호랭이가 나타서서 질을 가로 막더래. 트럭 기사가 사람들을 하나씩 내리라 했어. 호랭이가 해꼬지 한다고, 호랭이가 원하는 사람 골라 먹으라고 그랬어. 거기에 쬐그만 삼대독자 아그가 무서워 안 내리고 있은께, 할머니가“아가 여기서 내리자”하고 손을 잡고 …
우리 동네서 최씨 성을 가진 총각이 하나 있었어, 그 총각은 어떤 총각이냐 그라면은 그 사람도 당혼이 되아갖고 결혼을 해야 할 연영인디, 낮이나 밤이나 정신이 안 좋아갖고 깨랑을 벗어부러. 그냥 나체로 옷을 벗어불고 나댕길라고 그래. 그랑께 붙들어 놓지도 못하고, 이거 한참 때 젊은 놈이라서 어찌게 뭉끄기도 어렵고 말이여, 동네 그라고 댕긴게 그 집안에서 얼매나 우세겠어요. 본인은 부끄러운지 어쩐지 모르지만은 여자들이 보면은 낮에 길거리에서 보면은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자기 집안에서 어떻게 하면 이 병을 치료할까 했는디…
증 이조참판 행 함평현감 전공 신도비명(전액)유명조선 증 통정대부 병조참의 증가선대부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 행 통훈대부 함평현감 나주진관 병마절제도위 전공 신도비명 병서 덕은 송환기 글을 짓고, 해주 최병손 글씨 씀공의 휘는 몽성이요, 자는 응상이시니, 먼 옛날 조선조 숙종 11년 을축년(1685)에 호남의 유림들이 공의 순절 사실을 도백에게 호소하여 도백이 이를 받아 드려 임금에게 소를 올리니 임금으로부터 상전이 내려졌다. 그 교지 가운데에 특별히 국란에 임하여 의로서 항거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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