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서창 일대
삼호읍 망산 서창
서창 일대
서창리 일원
나 결혼하기 전에 우리 아버님한태 들은 얘긴디요, 우리 가문 산소가 성전에서 강진 쪽으로 가다보면 좌측으로 있어요. 옛날에 따라가서 봤는데 산소 두 개가 있고, 우리 정씨들 산인데, 그 산에가 명당이 있다고 가르쳐 줬어라. 그란디 병영 원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산소 위에 명당자리에 몰래 원님이 묘를 쓴다고 했어요. 원님이라서 얼마나 장례식이 휘황찬란했겠어요. 인자 사람들이 관을 뜸어서 그 높은 데까지 올라가서 묘를 쓸라고 했는디, 그때 우리 정씨들이 알고는 모여서 먼 연장들을 들고 올라가서 작대기로 밀고 해서, 관을 아래로…
옛날에는 우리 마을 앞까지 바다 였는디, 아래쪽은 서창 위쪽은 월창이어라. 두 마을 다 배가 들어오는 선창이었대요. 배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선창가에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그 중간 마을인 우리 마을에서 잠을 자고 갔다고 그랬어요. 그라고 요 앞에가 독천장이 있어서 섬사람들도 여그까지 배로 소, 대야지를 싣고 와서 팔아서 저쪽 이쪽 선창가는 시끄러운께, 이곳에서 자다가 도둑 당한 사람도 많았다고 했어요. 그라고 지금 보용상회 자리가 그때는 저작거리 주막집이고요. 그리고 선창가 마을에서 살기가 뭐 하니까, 여기 우리 마을에서…
독천을 가다가 보면 서창이라는 곳이 있어라. 거그 가면 옛날에 발동기라고 지금으로 말하면 뭣이냐 손님들 싣고 다니는 배가 있었는디, 모두 걸어서 거그까지 가서 배를 탔제. 뭐냐면, 그 배 타고 농산물 같은 것 가져다 목포 가서 팔아먹었지. 우리 에래서는 이 앞이 다 바다여서 친구들하고 망둥이 낚시 가서, 고추 된장에 찍어먹고, 물놀이도 많이 했재, 그전에는 게도 잡고, 낙지도 잡고, 운저리도 잡고, 괴기 많이 잡아서 폴기도 했제. 그란디 영산강 막아불고는 농토는 늘었는디, 그런 소득이 없지. 그런데 하루는 여그 가면 석포란 곳이…
삼호 오복마을에 엄청나게 큰 팽나무가 있어라. 오백 년도 더 산 나문디, 그 나무의 유래가 희한해라. 그 옛날 엄청 큰 나무가 바다 건너 해남에서 떠밀려 왔다 해. 지금은 거그가 간척사업 한다고 막혀서 호수가 돼 버렸지라. 전에는 거그가 바다였어라. 낙지도 많이 나고 해우도 많이 하고 순 뻘밭이었어라. 바다로 나무가 떠 밀려와 있은께, 죽은 나무라고 생각하고 그냥 놔뒀지라. 그런데 그것이 바닷가에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났어라. 바다를 건너왔는데도 싹이 난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희한하다 생각해서 마을 가운데로 옮겨 심었어라. …
이것은 참말로 있었던 이야긴디, 여기 미자네 큰아부지가 실지로 겪은 이야기여라. 옛날에는 차가 없던 시절이라 어지간한 곳은 다 걸어다녔지라. 하루는 정월 나흔 날 미자네 큰아부지가 독천장에 갔다 돌아오는디 해가 저물었다고 합디다. 미자네 큰아부지 얘기로는 여그 서창 고개를 넘어오는디, 갑자기 미자네 아부지가 나타나서 “성님, 업읍시다” 하더래. “내가 걸어가도 된디, 뭐 하러 엎자하냐”고 하고는 그냥 갔는데, 고개 하나를 넘는데 “성님, 업히시오” 하더래. 영낙 없이 미자네 아부지 목소리더래. 그랑께 틀림없이 동생이 한 말이라고 …
내가 살던 서창 망산에는 목화밭이 천지였어라. 그걸로 솜 타서 이불하고 미영베 만들었은께 여자들은 모다 그 일을 했고, 나는 열두 살부터 목화 타는 것 도왔당께. 구시월이 되면 밭에서 목화를 따와. 이른 아침 이슬에 따야 티가 안 들어가고 좋은께, 새벽부터 일하러 나가. 낮에 가면 까실 까실하니 징하게 안 좋아. 한 낮에 따면 티가 있어서 고를라면 더 힘들어. 그 놈을 까갖고 씨앗이에다 돌리면 씨는 씨대로, 목화는 목화대로 나와. 뻑뻑한 씨아로 하루 종일 씨앗을 앗아도 많이 안 돼. 씨를 뺀 목화를 방바닥에다 놓고 활실을 튕기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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