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리 일대 가을
일본인‘출정’이는 지금 군농협 앞쪽에서 버스 정류소를 했네. 여객버스 여섯 대에 트럭도 있었는디,‘전남자동차’라는 회사를 했어.‘남철’은 광주, 순천을 댕기고,‘신호대’는 목포, 영광을 댕겼네. 또 신문도 취급했는디‘대판조일’‘대교매일’‘경성일보’‘광주신보’‘목포일보’등 미제 그러고 잡화상도 하고, 면화사업도 하고,‘남방’이는 쌍정리에서 정미소를 하고, 지금 오거리 정신약국 자리에서 쌀장사, 석유장사를 했고,‘지상’이는 잡화상을 크게 하면서 상권을 잡았네. 또‘소리’도 정미소를 했네. 해방 후에 하남O 씨가 인수 했어‘평전’이도 …
해방직전에 영암경찰서가 지금 자리로 옮겨 왔제. 그 전에는 장둑골 시암 옆에 있다가 이쪽 좀 높고 널찍한 곳으로 옮겼어. 집도 두세 채 있었는디 경찰서가 고리 온 것이여. 그라고 지금 서남리 중앙교회 자리에‘동유원’이라는 기생음식점이 있었어. 가야금, 북, 창소리가 들리고 한량들이 거기서 놀았어. 일본기녀들이 있는 곳은 일본인 아니면 최고 부자들만 들어 다녔어. 그 골목에‘대문안집’도 있고 농사짓는 일본인‘우지’네가 살았고, 골목 입구에 선씨가 살았제. 그 집에서 일본사관학교 출신 별자리까지 나왔다네. 그랑께 그쪽 경찰서 앞이 …
영암 참빗은 없어서 못 팔았어. 모다 잘 만든께 전국적으로 유명했지. 저기 담양에서 만든 챔빗은 우리것 따라했지. 심지어 영암산이라고 써서 팔기도 했어. 그란디 그쪽 것은 얼멍얼멍하고 이라고 빗으면 뻑뻑해. 영암 챔빗은 빽빽하면서도 부드럽게 나가. 그것이 기술이지. 하도 잘 폴린께, 망호정뿐만 아니고 저기 송평리, 평장리, 후정리, 배날리 사람들도 만들었어. 돈이 된께 너도나도 기술을 배워갔는디, 그래도 품질은 망호정 것만 못해. 그래도 모다 영암 참빗이라고 해서 팔려나갔어. 원체 인기가 좋아서 전국 장사치들이 선불을 주고 참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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