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신덕
[영상] 신덕마을 투구바위
신덕 선왕산 전경
대초지 신덕마을
신덕마을 투구바위
신덕정마을
우리 시누가 스물세 살 때였는디, 우리 막둥이 뱃을 때, 사람들하고 신덕으로 맛을 잡으로 가고 우리 시누는 안집 방에가 있었어라. 인자 맛을 잡어서 여그 봇 둠벙있는 데까지 옹께, 사람들이“집이 시누가 약 먹고 죽어 부렀다”고 그래서, 어뜨게 내가 놀렸는가, 이 뱃속 애기가 모닥모닥 해가고 배꾸리에가 딱 멈쳐 불든만. 그래갖고 한참 있응께, 배가 풀어집디다. 그래갖고 안집에 온께, 밤에 묻을 라고 한담 시로 나보고, 임신까지 한 사람한테 아니 죽은 사람을 화장을 시키라고 하드란께, 얼굴에다. 내가 스물일곱 살 먹어서 이 막둥이를…
옛날에는 이 동네가 삼십오 가구가 살았는데, 지금은 객지로 다 떠나불고, 돌아가시고 나니까 열한 집밖에 안살아. 옛날에는 신덕리를 해미라 했어,‘바다 해’자‘쌀 미’자를 써서 바다에서 쌀이 난다고 그래가지고 해미라 했어라. 그란디 영산강을 막은 뒤로는 신덕리라고‘새로 신’자‘큰 덕’자를 썼지. 왜 해미였냐면, 옛날에 크네기들이 태어나가지고 시집가도록 백미 서 말을 못 먹고 같다고 했어. 원래 영산강 막기 전에는 여가 없이 산 데여. 농토가 없어 갖고, 밭만 있고 그랑께, 백미 서 말을 못 먹고 결혼을 했단 그 말이여. 옛날 사람…
우리마을은 반촌이라 처녀들이 마을에 함부로 나오들 못 해. 새각시가 시집오면 삼년 동안 바깥출입을 못하고, 십년 가찹게 독천장에 못 나갔어. 밭에도 못 나가고, 타성 집에는 아예 못 가. 여그는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동서로 양지마을 음지마을이 갈라져 있는디, 양지마을에서 음지마을로 시집와도 친정에 못가. 여그는 삼백 년 된 집영제 규율에 따라 엄격하게 했어. 잘 못하면 꾸짖고 그래. 여자는 집에서 밥이나 했지. 동네장에는 시어머니가 가지. 시어머니가 안계시면 시아버지가 가고 그랬어. 영산강 막기 전에는 독천하고 광산은 부촌이었고…
최근 십여 년간 영암에서 케이블카 설치할라고 고생들 하지라. 그런데 영암에 본래 케이블카가 있었다는 것을 안 사람이 거의 없어라. (조사자 : 영암에 케이블카가 있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인데 어디에 있었어요?) 여기 독천 우시장에서 장정산 중턱 팔부능선 정도까지 케이블카가 있었어. 일본 사람들이 만든 것인디, 광부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맨든 것이어. 당시 요기 낭주중학교 위에가 다 함바집이여. 양철지붕으로 된 광산촌이 꽉 찼어. 장쟁이산에서 일한 인부들이 거그서 살고 그랬지. 한 때는 광산에서 채굴했던 인부가 이천 명이 넘었다 해.…
영암문화원 열람실 | 대표자 : 원장 김한남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로55
TEL : 061-473-2632 | FAX : 061-473-2732 | E-mail : ycc2632@hanmail.net
Copyright © 영암문화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