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정제
쌍정마을
일본인‘출정’이는 지금 군농협 앞쪽에서 버스 정류소를 했네. 여객버스 여섯 대에 트럭도 있었는디,‘전남자동차’라는 회사를 했어.‘남철’은 광주, 순천을 댕기고,‘신호대’는 목포, 영광을 댕겼네. 또 신문도 취급했는디‘대판조일’‘대교매일’‘경성일보’‘광주신보’‘목포일보’등 미제 그러고 잡화상도 하고, 면화사업도 하고,‘남방’이는 쌍정리에서 정미소를 하고, 지금 오거리 정신약국 자리에서 쌀장사, 석유장사를 했고,‘지상’이는 잡화상을 크게 하면서 상권을 잡았네. 또‘소리’도 정미소를 했네. 해방 후에 하남O 씨가 인수 했어‘평전’이도 …
나는 사십구 년생으로 태어 난지 돌도 지나지 않아서 육이오가 일어났어라. 우리 동네는 월비마을이었는디, 경찰가족과 군인 가족이 많이 사는 곳이고, 그 옆 쌍정마을과 사자마을은 농사만을 짓고 사는 가난하고 살기 힘든 마을이었어라. 인민군이 점령하고 우리 월비사람들에게는 비참한 시절이었어. 평소 감정이 안 좋던 우리 마을 사람들이 경찰가족과 공무원가족 그리고 군인가족들을 괴롭히고 잡아가고 죽이고 그랬어. 그라고 못 살 것는께, 우리 엄니도 군서 쪽으로 피신하기 위해 나를 업고 마흔데미라는 고개를 넘는디, 걱서 지키던 사람이“어디 가냐…
육이오 때 영암이 피해가 많고 많은 사람이 죽고 그랬는데, 그중에서도 장암과 율산, 쌍정리 그리고 금정면 등이 더 심했는데, 인민군이 퇴각하고 밤손님들과 토벌대가 낮과 밤을 번갈아 감시로 사람을 죽이는 불법 세상이 이어졌어라. 군인들이 진주하여 동네마다 수색하고 여러 사람들이 트럭에 태워져 어디론가 끌려갔는디, 문씨도 역시 잡혀 트럭에 실려 막 출발하려는 순간, 옆을 보니 젊은 경찰이 눈에 보여서 냅다 뛰어 내렸다 그래. 그라고 그 경찰에게 다가가서“아이구 조카, 오랜만이시. 진짜 반갑네”함시로 악수를 청하니까, 그 경찰도 어리둥…
우리 마을 뒤 야산은 그리 높지도 않지만 다소 외진 지역으로 소나무와 잡나무 그라고 신우대가 많고 묘가 많은 산이었는디, 그 소유는 우리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달몰 양반 산이었어. 그 산을 어찌게 샀는지 물어본께 깊은 내력이 있었드라고. 그 달몰 양반이 어릴 적 어머니는 여섯 살에, 아버지는 열세 살 때 돌아기시고 밥이라도 얻어 먹을라고, 부자로 살고 있는 큰댁에서 소 깔이나 비어다 주고, 마당이나 쓸고 하는 머슴처럼 살았어. 그란디 그 큰어머니가 독하고 꼬곱해서 밥 먹을 시간에 쬐금만 늦으면 밥도 치워버리고, 먹을 것도 안 …
우리 마을은 물이 솟아나는 샘이 두 개 있어서 쌍정마을이라고 했당께. 그런디 샘이 두 개라서 아주 좋은거라. 왜냐하면 한 샘은 먹을 물만 질러다 묵고, 다른 하나는 빨래나 허드렛물로 쓰고, 여름이면 여자들 목욕하구, 정말 징하게 좋아라. 그라고 대밭 밑에서 물이 솟아나온께 시원하고 맛도 엄청나게 좋아라. 우리 동네 살다가 광주나 다른 곳으로 이사 간 사람들도 이 물 맛을 못 잊어 지금까지도 갖다 먹는 사람들이 많단께. 그라고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잘 나와서 내 생전에 물 보타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우리 엄니도 한 번도 없었다고 …
원래 예부터 우리 마을은 쌍정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다섯 개의 작은 소마을이 있었는디, 그 이름이 쌍정, 미럭굴, 수박굴, 앵개 그리고 갱변이란 마을이어. 우리가 어릴 적에 왜 마을이 이렇게 불리었는지 궁금해서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그라고 불렀던 거라고만 어른들이 말씀하셨어. 그랑께 그란갑다 하고 그렇게 부르면서 살았는디, 한 오십 년 전에 쌍정제 저수지가 생긴거라. 그제서야 우리동네 사람들은 마을 이름 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안거라. 다섯 개 마을 중에서 수박굴이라고 부리는 동네가 냉중에 저수지 속에 잠긴 것을 …
인공 때 얘긴디, 별로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여. 이름 대고 말할 수는 없고, 인공 일어난 가을에 후퇴했던 토벌대들이 저기 강진에서 풀치재를 넘어 들어왔어. 거그서 빨치산들하고 총을 쏘며 싸웠어. 그때는 월출산에서 활성산으로 이어지는 풀치재 주변에 숨어 있었어. 밤이면 내려와 젊은이들 데려가고 곡식 거둬가고 그랬어. 총소리 난 다음날 새벽에 토벌대들이 여그까지 와서 근방에 있는 마을 사람들을 나오라고 해서 쌍정마을에 모았어. 새복부터 놀란 사람들이 머리에 손을 얹고 잡혀갔어. 여그 저그 마을에서 잽혀온 사람들이 쌍정마을에 도착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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