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맥반석 계곡풀장에서 시원한 여름나기. 영암 월출산 기찬랜드
[영상] 월출산 여름
월출산 여름
그 전에 옛날 어른들한테 말만 들었제. 그랑께 문수포 마을인디. 처음에는 우리 마을이 여그 여끝 형국이 물소 형국인디. 무소형국 이라고 무수개 라고 불렀다고 했어라. 그라고 지금은 바다가 막어져부렀는디, 쩌그 한 일 키로 쯤 된 곳에 큰 안이라고 작은 돌섬이 하나 있는디. 물이 허벌나게 들어도 거그 꼭대기는 물이 안 차. 거가 소 말뚝이여, 소를 메는 말뚝 섬. 그라고 중간에 작은 안이 가 있었는디 없어졌어라. 그라고 여 끝에 큰 당소나무 두 개가 있는디 그것이 소뿔이여. 그라고 그 아래 바위가 소 핑갱 바우고. 지금은 잡목들도…
그때 당시에는 영암군에서 군서에 있는 문수암 서당이 제일 큰 서당이고 그 다음에 우리 동네 춘동 열락재가 두 번째여라. 그라면 몽학이 있고 몽학선생은 애기들을 갈치는 선생이고. 큰 선생이 와서 큰 공부를 갈치면 자연히 대학교여라. 지금도 대학교 교수들이 학식이 넉넉한 교수가 갈쳐야. 이럴 태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차근차근 실력이 올라 가제라. 이 서당 열락재서 그전에 무송 현OO씨도 여그와서 공부했다고 하고. 낭산 김준연 씨도 여그서 글을 읽었다고 한디. 그 자료나 유래가 기록으로 쭉 내려왔으면 역사가 되고 그란디 그…
여름에 여그서 마을 친목 모임이 있었어라. 자꾸 배타고 놀러 가자고 해서 신포리 이장한테 말해서 배를 빌려갖고 일곱이서 배를 타고 문수포 앞바다로 구경을 가기로 했어라. 그란디 백중날에는 뱃놀이를 안 한다고 그런 말이있는디, 백중날인지 모르고 갔제. 그래갖고 사고가 나서 전부 죽는 줄 알었어라. (조사자 : 무슨 사고가 났습니까?) 바다 건너편 산이면에 우리 고모가 계신디, 그래서 고모님한테 먹을 것 얻으러 가자고 갔어라. 그때는 탁백이 한말을 가지고 갔는데 모다 마셔갖고, 다 술이 취했제. 가다가 친구란 놈이 삿대를 타고 올…
우리 마을 앞 쩌그 하천가에 오백 년도 더 된 영암에서도 엄청 큰 느티나무, 사장나무가 있어라. 군에서 영양제도 주고, 보호도 하고 그랬는디, 그 나무가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였는디, 자빠져 부러갖고, 부락에 안 좋은 일이 생기고 그랬어요. 나무 그늘이 좋아서 마을 사람들도 여름에 걱서 놀기도 하고, 여름에 쉬기도 하고, 그라고 독천장에 온 사람들도 쉬고 그랬는디, 어느참에 바람도 안 불었는디 쓰러져 부렀어라. (조사자 : 왜 쓰러지고,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겼습니까?) 저쪽은 내깔인께 뿌리가 요쪽으로만 뻗었는디, 여기 도로 넓이…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긴디, 바구니가 바닷가에 떠밀려 와서 그것을 열어 보니까 아그가 들어 있었다 그 말이여. 바다 우게로 떠밀려온 아그를 주서갖고 와서 누군지 모르니까 해씨라고 했어라. 바다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바다 해씨 시조가 되았제. 그 사람이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그 후손들이 여그서 큰 부자가 되었어라. 우리 마을 건너편 쩌그 지쟁이 앞에 신기마을 잔등에서 대궐 같은 열 두 대문을 달고 살았는디, 언제부턴가 모른지, 아침에 일어나서 거그서 요쪽을 보면, 그랑께 화암 마을 뒤 선황산 아래 돈박산 밑으로 거그서 금을 캐…
요즘 시상은 있으나 없으나 다 배부르게 먹고 못 먹고 산 사람은 하나도 없는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우리 새끼들 생각하면 짠해 죽것어라. 자석들은 많고 배가 고픈디 셋젖도 못 주고 어떻게 칠 남매 자식들을 키웠는지 모르것어라. (조사자 : 셋젖이 무슨 말입니까?) 여름에 밭 메다가 세참 때, 그랑께 세 때 애기 젖 미기로 가야 쓴지 못 간께, 애기들이 얼마나 배 고파겄소, 옛날에는 죽석 자리라고 대나무 엮어서 만든 자리에다 눕혀 놓고 밭 메로 가제. 애기들 셋젖도 못주고 있다가 점심때 밥 먹으로 가면 애기가 얼마나 배가 고프면 …
일제때 우리 아버님이 괜찮게 살았는디, 그 당시 무역업을 함시로 인천에서 함경도 원산으로도 가고 그랬어라. 지금 같으면 이북이제. 부산으로 갔다가 일본으로 가서 오사카에다 도매상을 차리고 큰 장사를 하고 그랬어라. 아버님이 무역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제. 그 때 쩌기 남산포 원둑을 막다가 인자 돈이 부족한께, 쪼금 덜 막고 다시 일본으로 돈 벌로 들어 갔제. (조사자 : 원둑은 일본 사람이 막지 않았나요?) 아버님이 그 당시에는 무역업을 한께 돈 잘 벌었는 모양이제. 돈이 있은께 원둑을 막었는디, 막다가 인자 돈이 부족한께,…
영암문화원 열람실 | 대표자 : 원장 김한남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로55
TEL : 061-473-2632 | FAX : 061-473-2732 | E-mail : ycc2632@hanmail.net
Copyright © 영암문화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