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마을(마산리) 가을
주암하고 오산은 신작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마을 아닌가. 근디 주암에는 닭바우가 있고 오산에는 지네바우가 있어요. 오산에 있었던 지네바우만 땅에 묻어부렀다고 하든만. 그랑께 지금은 안 보여. 지네바우를 지키는 칼바우 몇 개만 있다네. 지네하고 닭은 서로 상극이 아닌가. 달구새끼는 지네만 보먼 환장하고 달려가 쪼아서 묵어불고 지네는 닭 빽다구만 보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밤에는 겁나게 많이 몰려와 닭빽다구를 뽈아 묵어불지. 근디 겁나 옛날에 오산에 있는 지네들이 달구새끼들이 자신들이 사는 곳까지 찾아와 자기들을 잡어 묵어붕…
오산마을 뒤쪽이 성뫼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하나 있는디, 그 꼭대기에 성터가 있어라.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성터 돌들이 많이 있었는디, 사람들이 돌을 다 주어다 집을 짓는 바람에 지금은 성 흔적이 없어져 부렀지라. 여가 봉화대가 있었던 곳인디, 어른들 말 들어보면, 여기 봉화대에서 불을 피우면 쩌그 완도까지도 연기가 보였다고 합디다. 그 성터 꼭대기에 샘이 하나 있었는디, 그것이 묘하게도 암만 가물어도 샘물이 마른 적이 없었지라. 이 산꼭대기에서 어떻게 물이 나와서 안마를 수 있는 지 희한한 일이지라. 나중에 샘을 더 좋게 만든…
어르신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오산이 왜 지네 오자를 썼는가요?’여쭸더니, 마을에 지네 전설이 있어서 그랬다 해요. 아 그래서 오산에 지네가 많은갑다 생각하지라. 오산 뒷산에 봉화를 올린 성터가 있는디, 거기에 지네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라. 지금 눈으로는 안 보여라, 흙으로 덮어서 외부에서 못 보게 해서 그래라. 왜냐하면 오산하고 주암이 대보름에 기 싸움을 하곤 했는디, 오산이 지네형국이고, 주암은 닭머리 바위가 있어라. 지네바위가 잘 보이지 않도록 흙을 살짝 덮어서 가려 놓았기 때문이지라. 지네는 닭한테 꼼짝 못하니까 말이여. …
스물두 살에 나 시집오니까, 이곳은 모두 바다에서 맛 캐는 일들을 겁나게 많이 했어라. 그런디 마산으로 시집갈 아가씨랑, 오산 처녀랑 선이서 빠져 나오지 못해서 빠져 죽는 일이 있었지. 욕심에 맛을 많이 잡아 가지고 올라다, 무거운께 못나오고 빠져 죽었지. 그런디 신덕정 거기 가면 회창가는 데에 월석정 소나무 아래에서 허건 옷을 입은 아가씨 이야기가 많았지라. 그 처녀들이 떠도는 것이제. 처녀가 바다에 빠져죽었으니 오죽 원이 크것어. 한번은 우리 집 아저씨도 목아정에 술 먹으러 갔다가 술에 체서 오다가 걱서 귀신 만나가지고 저녁…
오산마을 성묘산 꼭대기에 봉화대가 있어. 봉화대 주변에 성이 있어. 옛날에는 성 아래에서 사람들이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았었지. 이 성을 쌓은 남매 전설이 전해오제. 이 남매가 성묘산에 성을 쌓기로 했는데 서로 내기를 했어. 누나는 밥을 해서 차리기로 하고, 동생은 돌을 주어 성을 쌓기로 했는디 누가 먼저 하는가 내기를 한 것이제. 누나가 부지런히 밥을 짓는 동안에 동생은 돌을 주어서 싼디, 그 양반이 축지법을 써서 작대기로 돌을 때려 올려서 성을 쌓았어. 봉화대 주변을 빙 둘러서 쌓았는디 눈 깜짝할 사이에 완공해 부렀다는 것이제.…
경은 박공 묘갈명(전액)내가《동한사(東漢史)》를 읽다가 주섭(周燮), 강현(姜胘), 서지(徐穉), 신도반( 申屠蟠)이 어쩌다 동강(東岡)을 지키기도 하고, 해변에 은거하기도 하며 몸소 농사지으며 먹고 살기도 하고, 나무숲을 집으로 삼기도 하며, 끝내 당고(黨錮) 의 화를 면했다는 사실을 보았다. 100대가 지난 뒤에라도 오히려 그 맑은 기풍을 떨치고, 그 높은 표시가 유행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며 법을 바꾸고 숙연히 경건함을 일으키게 한다. 경은(耕隱) 박공 같은 사람이 어찌 그런 사람이 아니겠는가?공은 함양 사람으로 휘…
통정대부 참봉 박율의 묘배위(配位) 숙부인 홍주송씨, 부좌(祔左, 왼쪽 합장)공의 휘는 율(栗), 성은 박, 본관은 함양이다. 시조의 휘는 선(善)으로 고려 조에서 벼슬하여 관직이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이르렀다. 그 후대도 상서를 역임하였는데 휘 신유(臣蕤)의 대에 이르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가 되었고, 응천군(凝川君)에 책봉되었다. 신유 공은 휘 빈(彬) 공을 낳았으니 시호가 문원공 (文元公)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조청대부(朝請大夫)가 되었으니 이 분들이 각기 공의 6 대조, 5대조가 된다. 고조는 …
유명조선 통훈대부 행 제주교수 함양박씨 박영건의 묘 숙인 남양홍씨 동원(同原)공의 성은 박씨이고 휘는 영건(英建), 자가 수부(秀夫)이며, 월은(月隱)은 그 호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이니, 고려 때 예부상서를 지낸 휘 선(善) 공이 그 시조가 된다. 대대로 빛나는 가문이라 공경(公卿)을 여러 명 냈다. 우리 조정에서는 휘 언(彦) 공이 계시니 문과에 급제하여 판서가 되었고, 휘 성건(成乾)공은 문과에 급제하여 현감이 되었으며, 호를 오근이라 하였는데, 처음 영암 구림(鳩林) 에 기거하기 시작하여 항촌 사람들이 그 덕을 사모해 제기…
경암처사 강검수의 묘배위(配位) 유인 경주김씨 합장 경암처사 묘갈명 병서예부터 군자는 조정에 들어가 임금을 진작시키고 백성에게 은택을 이르게 하였고, 조정에 들어가지 못하면 수신하며 의를 실천하였다. 그 행적의 세세한 부분은 비록 갖지 않은 부분이 있더라도 도, 덕이 유명무실하면 더벅머리가 되어 살게 된다. 그래서 높은 벼슬과 지위는 세상을 논하기에 부족하고 곤궁함에 빠졌다고 하여 간단히 그 사람을 말하기도 충분한 것이 아니다. 경암처사 강공은 남쪽 향리의 선배 유학자이다.해산 남쪽에 은거하며 도를 즐기고 덕을 닦아 고금의 성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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