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마을
우리 마을 이름이 유천인지는 아유? 유자는‘버들 유’에‘샘 천’자를 쓰지라. 긍께 마을에 있는 샘 주위에 버드나무가 큰 게 있었단 말이여. 예전에는 마을이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작은 산 너메 뒤쪽으로 호리병 모냥으로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 있었고, 그 마을 사람들은 그 샘땜시 생활도 하고 농사도 짓고 했제. 어느 날 도통 외지인들이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아주 험한 그지꼴의 남정네가 나타난거여. 걷지도 못하는 그 남정네를 누군가 샘가에 던져놓고 가버린 거지. 사연인 즉 어릴 때부터 걷지를 못한 앉은뱅이 불구인 탓에 동냥을 해가며 포도시…
자리뜻 한다는 말 아요. 사람이 죽을 때 자리뜻 하거든. 사람이고 짐승이고 호흡이 끊어질라고 할 때 허덕여. 심장 먼 곳부터 차근차근 죽어 들어가는디 마지막 심장이 뛰다가 덜덜 떨리다가 죽어. 그것을 자리뜻 한다고 해. 그란디, 자리뜻까지 하고 숨이 멎은 사람이 한참 후에 요하게 살아난 사람이 있어. 저기 유천 옆에가 그 사람 묏이 있는디. 그 사람이 본래 이 년 전에 한 번 죽은 적이 있었어. 자리뜻하고 숨이 멎은께 큰 아들이 초상칠 준비를 하고 손발을 묶을라 하는디, 갑자기 살아났어. 긴 숨을 쉬더니 돌아왔어. 깜짝 놀래서 부…
증 이조참판 행 함평현감 전공 신도비명(전액)유명조선 증 통정대부 병조참의 증가선대부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 행 통훈대부 함평현감 나주진관 병마절제도위 전공 신도비명 병서 덕은 송환기 글을 짓고, 해주 최병손 글씨 씀공의 휘는 몽성이요, 자는 응상이시니, 먼 옛날 조선조 숙종 11년 을축년(1685)에 호남의 유림들이 공의 순절 사실을 도백에게 호소하여 도백이 이를 받아 드려 임금에게 소를 올리니 임금으로부터 상전이 내려졌다. 그 교지 가운데에 특별히 국란에 임하여 의로서 항거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유명조선국 증 가의대부 이조참판 행 순안현령 하홍수의 묘 증 가의대부 이조참판 행 순안현령 하공 묘갈명공이 막 조정을 나아갈 때, 나라의 사대부들이 도성 문에 조장(祖帳)을 치고 전별하며 떠나감을 안타까워하고 애석해하였으니, 돌아가는 길이 혹여 늦어질까 걱정하였다. 그가 얼굴빛을 단정히 하고 조정에 서서 왕정(王廷)을 보필하였으니, 공이 아니면 곤직(袞職)을 누구라서 보필하랴? 그가 수레에서 내리게 되어 관하(管下)를 다스림에 백성과 이속(吏屬) 이 그 덕과 의로움을 노래하며, 항상 은퇴하여 돌아감이 혹시나 빠를까 걱정하였다. 그는…
월출산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대선사비명(전액) 월출산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대선사비명 병서(幷序)무릇 금산에 사찰을 건립함으로써 번뇌를 털고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수행처로 이름을 길이 남겼으며, 강물에 뜬 잔은 도선국사의 이름을 널리 전하게 하였다. 하물며 묘한 이치의 법문을 열어 그 조화로 신묘함에 통하였으며, 사원을 장엄하고 도장을 개신하니 아름답고 상서로운 복이 흐르도다. 이와 같은 업적은 마땅히 고운 옥돌에 새겨서 후대에 전하여 알게 하여야 하므로 감히 기존에 있던 마멸된 비를 다시 세우게 되었다. 국사의 휘는 도선이니 신라의…
효자 김시혁 제민불망비공은 어려서부터 타고나 성품이 남달라서 부모를 모실 때는 효도가 지극하여 사림이 여러 번 천거하였으나 백성을 구제하고 폐단을 혁파하였으니, 그 정으로 다들 덕을 노래하였다. 잊지 않으려는 뜻으로 백성들이 관청에 아뢰었고, 관청에서는 감영에 알렸더니 특별히 가상하게 생각하여 그대로 위와 같이 새겼다. 실제 사적과 제현들이 찬술한 글이 이루 다 할 수 없이 많이 실렸다.통정대부 행 진도도호부사 겸 호남수군방어사 조존흥 지음 통덕랑 선공감가감역 박제완 명을 씀진사 나원석 발을 씀 순상국존문견이본부호장 김계구 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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