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은곡
은곡마을
은곡
은곡대동계지
우리마을은 반촌이라 처녀들이 마을에 함부로 나오들 못 해. 새각시가 시집오면 삼년 동안 바깥출입을 못하고, 십년 가찹게 독천장에 못 나갔어. 밭에도 못 나가고, 타성 집에는 아예 못 가. 여그는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동서로 양지마을 음지마을이 갈라져 있는디, 양지마을에서 음지마을로 시집와도 친정에 못가. 여그는 삼백 년 된 집영제 규율에 따라 엄격하게 했어. 잘 못하면 꾸짖고 그래. 여자는 집에서 밥이나 했지. 동네장에는 시어머니가 가지. 시어머니가 안계시면 시아버지가 가고 그랬어. 영산강 막기 전에는 독천하고 광산은 부촌이었고…
옛날에는 참말로 어렵게 살았어라. 여그 가마골 처녀들이 시집갈 때까지 백미 서말을 못 먹을 정도로 가난했지라. 여그는 논이 없고 밭만 쬐금 있고, 앞에는 바다였는디, 하구둑 막은 뒤로 여 앞에 논이 생긴 것이어라. (조사자 : 가마골이라면 무슨 도자기나 기와 굽는 골자기가 있었어요?) 여그 은곡마을을 가마골이라 불러. 본래는 갈마골이었는디 그냥 가마골이라 해. 옛날에 어떤 사람이 여그서 말 물을 먹일라 했는데 물이 없어서“말에게 먹일 물도 없는 곳”이라 해서 갈마골이라고 했다해. 여그는 뒤에 은적산이 있는데도 희한하게 물이 귀해…
최근 십여 년간 영암에서 케이블카 설치할라고 고생들 하지라. 그런데 영암에 본래 케이블카가 있었다는 것을 안 사람이 거의 없어라. (조사자 : 영암에 케이블카가 있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인데 어디에 있었어요?) 여기 독천 우시장에서 장정산 중턱 팔부능선 정도까지 케이블카가 있었어. 일본 사람들이 만든 것인디, 광부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맨든 것이어. 당시 요기 낭주중학교 위에가 다 함바집이여. 양철지붕으로 된 광산촌이 꽉 찼어. 장쟁이산에서 일한 인부들이 거그서 살고 그랬지. 한 때는 광산에서 채굴했던 인부가 이천 명이 넘었다 해.…
가선대부 공조참판 해주오공 신도비명유명조선국 가선대부 행 공조참판 겸 동의금부사 춘추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 통훈대부 사간원 헌납 해주오씨 신도비명 병서통훈대부 전 현릉참봉 월성 최영조(崔永祚)가 짓고, 성산 현재승이 쓰고, 자헌대부 행 종경원(從卿院) 정(正) 완산 이재량(李載亮)이 비액(碑額)의 전서를 썼다.선황제 즉위 10년 계유년, 우리 아버님이 동부승지(同副承旨)로 계실 때 소를 올려 시폐 (時弊)에 대해 진언하였는데 말이 매우 얌전하면서도 강직하였으니, 임금께서 깊이 치하하고 받아들였다. 이에 뭇 권간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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