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진경수셰프의 쿠킹쇼-무화과클럽샌드위치&쌈장수육&프랑스식스테이크 [올댓 레시피]
장수
아걸이 장수가 우리 마을 부암 태생인디, 여그 김 씨들 집안이여 김아걸 이라고 있었어라. 그 사람이 전에 그렇게 힘이 좋고, 용맹이 있고 아조 날쌘 장수였어라. 말 들리기로는 아걸이가 쩌그 북 바우 산 꼬작에서 백목 이십 자짜리, 그랑께 배 짜갖고 한 필이 이십 자고, 한 자가 육십 센틴디, 상당히 길제. 여그서 저 집까지는 되었것어라. 그것을 머리에다 두르고 북 바우 산 꼬작에서 여그 말메뚱 있는 대로 뛰어서 날아서 이쪽으로 떨어지면 볼만했다고 했어라. 백목이 나를 것 아닌가, 그라고 도구통을 메고 담장도 뛰어넘어 댕기고 그렇…
나 결혼하기 전에 우리 아버님한태 들은 얘긴디요, 우리 가문 산소가 성전에서 강진 쪽으로 가다보면 좌측으로 있어요. 옛날에 따라가서 봤는데 산소 두 개가 있고, 우리 정씨들 산인데, 그 산에가 명당이 있다고 가르쳐 줬어라. 그란디 병영 원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산소 위에 명당자리에 몰래 원님이 묘를 쓴다고 했어요. 원님이라서 얼마나 장례식이 휘황찬란했겠어요. 인자 사람들이 관을 뜸어서 그 높은 데까지 올라가서 묘를 쓸라고 했는디, 그때 우리 정씨들이 알고는 모여서 먼 연장들을 들고 올라가서 작대기로 밀고 해서, 관을 아래로…
마을 앞에 장수부락에서 우리 마을로 오는 길가에 선바우가 있는디. 그 돌이 요쪽을 보고 있을 때는 우리 부락 사람들이 잘 되었는디. 저쪽 장수 쪽으로 저절로 돌아가 부러 갖고, 그 운이 그쪽으로 가 부러서 지금은 장수마을하고 학평 사람들이 잘 되고 잘 살아 부러요. 동네가 부자가 되고, 그라고 면장도 나오고, 선생도 나오고, 조합장도 나오고 그랬어라. 그쪽 동네도 그런 선돌이 있는디, 그 돌을 볼라고 돌아가 부렀는지도 모르것어라. 그란께 선바위가 어느 날 혼자 돌아 부렀당께. 그 마을에서는 선돌에다 제사도 지내고 그라든만, 요새는…
두억산 산세를 보면 좌측으로 가리재가 있고, 우측으로는 미암쪽으로 흘러가고, 두억봉 아래 혈은 성메산에서 이렇게 내려오고, 요쪽으로 자세골 혈이 내려와서 만나는 지점에 용이 승천 했다는 용방죽이 있었어라. 그라고 용방죽 아래 오른쪽에 지금 말하자면, 기미산 저수지 우게가 옛날 수산마을 터여. 거기에 그 전에는 홍 씨 마을이 있었는디, 재산도 많고 권세도 꽤나 부리고 살았다고 하드라고. 그란디 옛날 어느 날 노승이 동냥을 왔는디, 동냥은 적게 주나 많이 주나 후한이 좋아야 쓴디, 마음으로 주어야 된디, 안 그랬어. 옛날에 소매…
우리 동네 이름이 사기골이라고도 했어라. 저쪽 골창에서 옛날에 사기를 구워서 만들어서 여기서 배로 싣고 나가고 그랬다고 했어라. 그전에 거기가면 가마터가 있었는디, 너무 오래 되야서 없어져 부렀어라. 지금은 어디가 있었는지도 모르것드라고. 사기골을 사래골이라고 발음해서 부르기도 했는디, 본래는 마을 이름이 화암이라고 해. 왜 화암이라고 해야 하냐면 마을 뒤에가 큰 바우가 있는디, 검정 바우라 물기가 있어서 반짝거려. 그래서‘빛날 화’자‘바위 암’자를 써서 화암이어요. 아주 옛날부터 그‘바우가 빛을 내서 마을에 비추면 마을이 망…
춘동리 용흥 뒷산 봉우리가 천마봉인디, 거기서 말이 하늘을 날랐다 해서 그라고 부르고, 그 산이 천마산이어라. 그랑께 정확히는 모르것는디, 마한 시대인지 백제 시대인지 그때쯤 될 거여. 옛날에 그 당시 말을 탄 한 장수가 적군에게 쫓겨서 천마산에 이르렀는디, 삼면이 다 시퍼런 바닷물이 넘실대는 막다른 지경까지 쫓겨 왔는디, 장군은 인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장수는 인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에게 사정 했어라. “나를 살리려면 제발 저 건너편 산으로 뛰어 넘어다오”라고 말하자마자, 말이 진짜로 폴딱 뛰어서 하늘을 …
지금 여그 아천수퍼 앞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다리 앞까지 옛날에는 바닷물이 들어왔지라. 마치 저기 구림의 상대포구까지 배가 들어와 과거 왕인박사가 일본에 문물을 전해주러 갔다는 거 맹키로. 좌우간 저 아천포구 앞에 장이 열리곤 했는데, 걱서 한석봉엄마가 떡장수를 했다는 것이지. 거 뭐시냐 글씨를 허벌나게 잘 쓴다는 한석봉이 말여. 원래 한석봉이는 여기서 태어난 게 아니고 저기 개성지역의 높은 벼슬을 한 집안 자제였다는 구만. 근디 석봉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찍 죽어서 가계가 기울고 홀어머니 밑에서 겁나 가난했다는구먼. 아들이…
우리 마을 이름이 유천인지는 아유? 유자는‘버들 유’에‘샘 천’자를 쓰지라. 긍께 마을에 있는 샘 주위에 버드나무가 큰 게 있었단 말이여. 예전에는 마을이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작은 산 너메 뒤쪽으로 호리병 모냥으로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 있었고, 그 마을 사람들은 그 샘땜시 생활도 하고 농사도 짓고 했제. 어느 날 도통 외지인들이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아주 험한 그지꼴의 남정네가 나타난거여. 걷지도 못하는 그 남정네를 누군가 샘가에 던져놓고 가버린 거지. 사연인 즉 어릴 때부터 걷지를 못한 앉은뱅이 불구인 탓에 동냥을 해가며 포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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