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구림전통 한옥마을 애니메이션
내 고장 전통 가꾸기
우리 마을에는 당산이 두 분인 것이 특이하제. 그런데 할아버지 당산보다 할머니 당산이 기운이 더 쎄당께. 다들 할머니 당산을 먼저 모시고 나중에 할아버지 당산한테 간당께. 할머니 당산은 마을 안 쪽 탐진 최씨 문각인 오돈재 마당가에 있는데, 사백년 넘은 느릅나무로서 당산지신이라 모시고, 할아버지 당산은 동네 바깥쪽, 바닷가 방향에 있는 네모난 입석을 서호지신이라 부르제. 다른 말로는 할머니 당산을 윗당산, 할아버지 당산을 아랫당산이라고도 부르제. 보통 할아버지, 할머니 같이 부부는 같은 모양인 것이 흔한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
대략 삼백년 전에 양 장군 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해요. 적군이 쳐들어오니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을 하게 되었는디, 전쟁에서 승리를 거듭함시로 곧 적군을 완전히 몰아 낼 것 같은 상황이 되었는디, 갑자기 전세가 역전이 되는 느낌이 들어서 보니 아군이 막 쓰러지는 것이어. 양 장군은 전쟁터에서 아군이 목이 타서 쓰러지는 것을 보고는 부하들을 불러서“여기를 파면 분명히 물이 있을 것이니 파라”해서 부하들이 파보니 정말로 물이 나와서 아군이 그 물을 먹고 전쟁에서 승리를 했다고 하지라. 그래서 마을에 공동 샘이 있었지라…
각시바우는 흥리에 있어. 본래는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디, 지금 것은 그냥 보통 돌이여. 여그 와서 들은 얘기로는 어른신들이 그래“저그 각시바우를 땅 주인이 없애 버렸는디, 그 후로 계속 젊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총각도 비명횡사하고, 처녀도 갑자기 죽어 나갔다”하더라고. 그래서 이것이“각시바우가 없어져서 그란다”하고 난리가 났제. 이것저것 해가 많으니까 안 되것다 싶어서 촌장이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서 바위를 새로 갖다 놓고, 제를 지냈제. 신기하게도 그 후에는 마을에 우환이 없어졌다고 그래. 정월 보름이면 동네 사람들이 다 가서…
모를 심고 초벌 김매기, 두벌 매기, 만들이가 끝나면서 논농사는 일이 거자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어라. 그래서 만들이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놈시러 음식과 술을 마셨지라우. 이날 지주들은 음식을 장만해서 일꾼들을 대접하는 것이 전통적인 풍습이었다고 하지라. 그런디 어느 해 만들이 하고나서 놀 때 일이지라. 쟁기질꾼이 동묏대 바위에 걸터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디, 마을에서 꽤나 잘 사는 김노인이 쟁기질꾼을 걷어차면서“너 이놈 금년 모심을 때 쟁기질을 안 해 줘서 늦모를 심고 말았다”고 밀었당께요. 그 바람에 바위…
우리 해주 오씨 영암 입도조 제각이 있는 선산은 금오탁시형 명당인디, 구렁골이라는 지명은 깊은 골짜기라는 말로 옛날에는 그곳이 아주 깊은 산중이었는디, 선산 앞으로 한양 가는 소로길이 있었어. 그 제각에 산지기 집이 있고, 산지기가 해주 오씨 부인과 결혼해서 딸내미 하나를 낳고 살았구만. 어느 해 가을 시제를 모시기 위해 준비하던 산지기 부인이 딸에게 물을 길러오라고 시켰는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기다리다 못해 가본께, 딸이 물을 들고 오다 언덕길에 자뿌라져 울고 있는거야. 엄마가“뭐하다 이제 오면서 넘어졌냐”고 하니, …
장암리는 옛날부터 열 두 동네라 부를 만큼 역사가 있고 전통이 있는 큰 마을이야. 그란디 장암리는 또 다른 이름이 있는디, 무덕정 마을이라고도 하고, 대치동이라고도 했어. 장암리는 임진왜란을 호되게 겪었어. 장암 문 씨 가문에서는 이 같은 낭패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 대비책을 마련했어. 여러 가지 무기를 맨들어서 마을 창고에 비치했는디, 그중에서 오인궁이란 활이 있었어. 오인궁이란 활대를 큰 나무에 매달고 다섯 사람이 활시위를 당기어 쏘아대면 먼 거리에 있는 적들도 살상할 수 있도록 만든 무기여. 이동성은 없지만 당시로는 머…
해방 전까지만 해도 회의촌 마을 안쪽에는 오래된 아름드리 솔낭구들이 빼곡히 있었어. 기찬랜드 하천 흐르는 주변으로 축 늘어진 솔낭구 가지가 한 폭의 그림 같았지. 또 하천에서 마을 안쪽으로 쭉 솔낭구 숲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어릴 적 그 곳에는 나뭇가지에 아기 끄렁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어.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프고 병원이 많지 않아서 죽어나간 아이들이 수두룩 했지. 한 마을에서도 매년 죽어나가는 애들이 한 둘이 아니었는데, 죽은 아이들을 볏짚에 싸서 솔낭구에 매달아 놓았는데, 아기를 싼 볏짚 가마니를 짚끄렁지라고 했어.…
효자 평산신씨 대유의 비일전에 영암의 사문 신동씨가 그의 증조 조부의 효행에 대한 전후의 문서두루마리를 등에 짊어지고, 울면서 나의 깊은 산 속 집에서 알려 말씀하시길,세상이 평안함이 이어지는 때는 만나 공식적인 포상의 사다리가 없으니, 이 선세의유적이 장차 없어져 전하지 못하는 통한의 위치가 없으니 엎드려 원하건대 글로써실마리를 잡아서 영원히 쇠하지 않게 도모함에 나는 그 선조를 추모하는 정성에감탄하여 그 문서와 대략을 삼가 열람하니, 왕상은 얼음의 잉어가 튀어 오르고서릉의 개구리가 솥으로 튀어 옴이니, 과연 효를 헤아려 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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